타고난 요소와 촉진적 환경, 그리고 공격성
탐구자 : 이제야 청소년의 성장과 발달의 문제를 다루게 되는군요. 위니캇은 사람의 ‘성장’의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다루고 있나요?
분석가 : 위니캇은 인간의 성장 요소를 ‘개인의 타고난 요소’와 ‘촉진적 환경’, 이 둘로 나눕니다.
탐구자 : 아무래도 위니캇은 돌보는 어머니를 가리키는 ‘촉진적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겠군요. 개인의 타고난 요소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분석가 : 위니캇이 그 부분은 분명하게 밝히지 않지만, 내가 나름대로 종합해 보면 이렇습니다. 먼저, 사람이 태어나면서 집단무의식으로 가지고 오는 원형과 본능,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요소, 그리고 태중에 있을 때 유전적 요소와 더불어 태중 환경과 어우러지면서 형성되는 기질적 요소 등이라고 볼 수 있겠죠. 이 장에서는 청소년을 다루기 때문에 나는 그 개체가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격성’을 성장의 동력으로 보는 위니캇의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이 ‘공격성’ 은 인간이 태어나면서 타고난 중요한 속성입니다. 이 공격성을 프로이트는 죽음본능에 속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지만, 위니캇은 생명본능에 속한 것으로 봅니다.
탐구자 : 그렇다면 위니캇 입장에서 볼 때, 성장에 필요한 촉진적 환경(어머니)이 아이의 타고난 요소들의 잠재력을 활성화시켜 주지만, 아이의 내면에서 모든 것을 종합하여 활성화시키는 요인은 ‘공격성’이겠군요.
분석가 : 바로 봤습니다. ‘충분히 좋은 촉진적 환경’이란 아이가 자신의 공격성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모환경이라고 보면 됩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공격성과 사랑의 리비도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 둘은 서로 섞여 있어서 공격성을 우선적으로 투사함으로써 자기 존재를 알리고 자신의 리비도를 끌어올려서 잠재력을 활성화시키면서 꾸준히 성장해 나가게 됩니다.
탐구자 : 사랑의 리비도란 성적 에너지를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분석가 : 물리적으로 보면 사랑의 리비도는 성적 에너지를 의미하죠. 그러나 사랑의 리비도는 성적 에너지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자라는 과정에서 아이는 어머니의 돌봄과 아버지의 양육에 힘입어 공격성의 활성화에 힘입어 자기 존재 욕망을 드러내면서 참자기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는 자녀의 공격성을 잘 받아주고 맞서 줘야 합니다.
탐구자 : 부모는 아이의 공격성을 언제까지 받아 줘야 하나요?
분석가 : 최소한 성인이 될 때까지이지만, 우리 한국은 독특한 입시문화 때문에 그 기간은 연장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특수성을 감안하자면 자녀가 결혼하기 전까지로 봐야 되겠죠.
탐구자 :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아니, 그때까지 자녀의 공격에 살아남을 부모가 있을까요?
분석가 : 중요한 것은 공격성은 리비도와 섞여 있는데, 그것을 분화시키기 위해서는 부모가 그 공격성을 받아주고 맞서주는 역할을 해 줘야 합니다.
탐구자 : 공격성을 그렇게 받아주면 그 결과 어떻게 되나요?
분석가 : 공격성과 리비도가 분화된다는 것은, 이제 공격성은 건강한 자기주장으로 바뀌게 되고 사랑의 리비도는 타자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탐구자 : 성경에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엡 6:1)는 말씀이 있잖습니까? 부모는 자녀를 어릴 때부터 순종하도록 가르쳐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리고 잠언 22장 15절에서는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23장 14절에는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라는 말씀도 있고요.
신학자 : 부모들이 다른 말씀은 잘 안 지키면서 꼭 잠언서에 나오는 ‘채찍’에 관한 말씀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자녀들에게 체벌을 가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채찍이라는 것이 꼭 손에 든 회초리만이 채찍이 아닙니다. 말로 훈계하는 것도 채찍입니다. 사랑의 리비도를 꼭 성적 에너지만으로 봐서는 안 되듯이, 채찍도 물리적인 회초리만으로 국한해서는 안 됩니다.
채찍을 드는 부모의 성품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참 교훈을 따끔하게 주기 위해 손에 사랑의 회초리를 들 수도 있지만, 그것은 최대한 자제해야 합니다. 채찍을 들라고 하니까, 부모들 중에는 자녀를 마구 때려도 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만일 부모가 자신 안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상처나 해결되지 않은 분노가 남아 있거나 또는 자신에게 폭력을 가한 부모에 대한 증오가 남아 있는 상태일 때, 그 부모는 그 회초리를 드는 순간, 교육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때 아이는 무방비상태로 부모의 폭력에 노출됩니다.
교육적 한계를 넘어서는 만큼 자녀는 억울하게 되고 그것이 쌓이고 쌓이면 ‘원한 감정’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그나마 회초리는 나은 편입니다. 어떤 부모는 자녀의 뺨을 때린다거나 주먹질 또는 발길질을 해 버린다면 이것은 명백히 자녀의 존재와 인격에 상처를 남기고, 모독을 주는 폭력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님께 공경하는 것을 가르치기 이전에 부모가 자녀에 대해 먼저 인식해야 하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