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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고자 하는 욕망과 예정론, 그리고 태몽

존재하고자 하는 욕망


율곡의 탄생 이야기


율곡 이이(1536-1584)의 탄생 이야기는 전설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흥미로운 일화이다. 

이이는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유학자이자 정치가로, 그의 출생과 관련된 이야기도 독특한 상징성을 띠고 있다.


이 이야기의 주요한 내용은 율곡의 아버지, 이원수와 관련된 일화이다. 

한날, 이원수는 기생의 유혹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기생은 이원수와 관계를 맺고 아기를 갖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원수는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대신 그날 밤 자신의 부인인 신사임당과 관계를 맺었고, 그 결과로 율곡 이이가 태어났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일화에서 율곡의 아버지가 나중에 그 기생을 찾아가 성관계를 요구했으나, 그때는 오히려 기생이 이를 거절했다는 대목이다. 

이 이야기는 율곡의 탄생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하늘의 뜻에 의해 예정된 운명적인 사건처럼 그려지기도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단순히 율곡 개인의 삶을 넘어서, 조선 시대 유학자로서의 운명과도 관련되어 해석되곤 한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의 존재가 특별하다는 암시로, 후일 그가 조선 사회에 미친 영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를 통해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기생은 장차 태어날 위대한 인물이 이원수의 몸 안에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점이다. 

율곡의 입장에서 보면, 스스로 태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기생을 통해 실현되기를 거절하고 아버지의 정실부인인 신사임당을 통해 실현되기를 바랐다는 점이다. 

이원수가 기생을 거절한 것은, 바로 장차 태어날 율곡이 거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동의 예언자 칼 지브란의 말


 “당신 자녀는 당신 자녀가 아닙니다.

그들은 스스로 갈망하여 태어난 생명의 아들딸입니다. 

그들은 당신에게서 태어나지 않고 당신을 거쳐서 태어났습니다.    

그들은 당신과 함께 있을 뿐 당신의 분신이 아닙니다.” 


Your children are not your children.

They are the sons and daughters of Life’s longing for itself.

They come through you but not from you.

And though they are with you yet they belong not to you.



예레미야의 탄생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할 때 다음과 같은 소명을 들었다.


  "내가 모태에서 '예레미야' 너를 만들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거룩하게 구별하였고 너를 이방 나라, 민족들의 선지자로 정하였노라 하시기로"(렘 1:5, 임원순 번역) 


예레미야가 잉태되기 전에 여호와는 이미 그를 알고 있었다.



모든 존재는 태어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철학적, 신학적, 심리학적으로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주제입니다. 예레미야의 탄생 이야기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예입니다. 예레미야서 1장 5절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를 알고, 이방 민족의 선지자로 정했다고 하십니다. 이 이야기는 인간의 존재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합니다. 인간의 탄생과 존재는 이미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태어나고자 하는 욕망”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존재는 그저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나아가고자 하는 강한 욕망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는 심리학적으로도 설명될 수 있는데, 프랑수아즈 돌토와 같은 정신분석학자들은 생명체가 태어나기 전부터 생명의 본질에 대한 강한 욕망과 열망을 지닌다고 보았습니다. 돌토는 인간의 존재가 생물학적인 우연이 아닌, 내재된 욕망과 의지에 의해 형성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태어나기 이전부터 존재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우리 모두가 생명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살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예레미야의 소명 이야기는 이러한 인간의 욕망이 단지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더 큰 사명과 목적을 향해 움직이는 힘임을 보여줍니다. 즉, 예레미야는 단순히 태어난 것 이상으로, 하나님에 의해 특별한 역할로 구별되었으며, 그 존재는 그 자체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와 같은 관점은 우리 각자의 존재도 결코 우연이 아니며,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게 된 이유와 목적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이와 더불어, 생명을 얻기 위해 투쟁하고 태어나고자 하는 욕망은 우리가 직면하는 모든 시련을 견디게 하는 근본적인 힘이 됩니다. 인간은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자 하는 욕망을 통해 계속해서 성장하며,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여정을 떠납니다. 예레미야의 삶처럼, 우리 모두는 자신의 존재를 탐구하며 그 속에서 발견되는 목적을 찾아가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연히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모든 인간은 그 존재 자체로부터 의미를 찾고, 그 의미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예정론


예레미야의 소명 이야기는 예정론과 깊은 연관이 있다. 

여호와의 말씀에 따르면, 예레미야는 모태에서 잉태되기 전부터 이미 하나님의 계획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사람이 태어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또한 예정론과 연결된다. 

예정론이란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의미를 찾고, 이 세상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목적을 지니고 세상에 태어난다는 주장이다. 

이는 인간의 존재가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각 개인을 위해 정하신 특별한 목적과 사명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예레미야의 소명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더 큰 사명과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힘을 보여준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탐구하며 그 속에서 발견되는 목적을 찾아가는 여정을 떠나야 할 사명이 있다.

이는 모든 인간은 그 존재자체로부터 의미를 찾고 실현해 가는 과정에 있음을 일깨워준다. 


태몽


그거 아는가?

인디언 부족, 원시 부족은 누군가가 태어나기 전에 그 부족의 샤먼이 태몽을 꿔서 점지해 준다는 사실을.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각 가정마다 누군가가 태몽을 꾼다고. 

[한국인의 탄생]을 저술한 홍대선 작가가 바로 이런 말을 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한국에서 흔히 알려진 태몽(胎夢)과 같은 문화적 전통이 특별히 널리 퍼져 있지 않다. 태몽은 주로 동아시아, 특히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문화적 관습으로, 아기의 임신이나 출생을 암시하는 꿈을 의미한다. 

한국에서는 특히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태몽을 꾼다고 믿고, 이 꿈이 아이의 성격이나 운명과 연관이 있다고 여겨진다.

고대 건국 신화나 영웅 신화에서 등장하는 영웅들은 자신의 탄생이 필연적이며, 그로부터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 기본 전제이다.

한국에서 태몽은 단순히 아이의 출생을 알리는 꿈이 아니라, 그 아이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지에 대한 예지와 연결된다.

이처럼, 한국인에게 태몽은 하나의 개인 신화로 자리 잡으며, 자신이 우연히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필연적인 존재라는 자부심을 형성한다.

모든 한국인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존재에 대해 깊이 탐구하며 자라야 하며, 부모조차도 침범할 수 없는 존재의 필연성을 깨닫고 그것을 지켜나가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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