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한 여성들의 백일몽
오늘날 유능한 여자들이 남자들과의 경쟁에서 쉽게 잘 이겨내는 경우, 남성성을 사용할 때 가능하다.
사법고시에서 여자의 합격률이 높아지고, 교대 입시에도 10명 중 7명이 여자이고, 똑같은 선상에서 출발할 때 이겨내는 확률이 여자가 높아지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여자들이 모두 유능한 것이 아니다. 남성성을 통해 남자들과 경쟁하고, 자신을 사회화시키는데 남성성을 사용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나의 지인이 어느 사법기관에 가서 악기를 가르친 적이 있다.
대상자들은 그 기관의 연구원들이었고, 모두 여성이었다.
사법고시 합격하고, 그중에서도 나름대로 능력 있는 사람들을 추려서 배치한 곳이 바로 그곳이다.
그런데 조직의 입장에서 보면, 시험 치는 데에는 여자들이 잘해 내는데, 일의 추진력이나 복잡한 상황 속에서 통찰력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능력에서는 남아 있는 몇몇 남자를 따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여자들 중에 10명 중 결혼한 사람이 한 명 내지 두 명이다.
나머지는 모두 비혼주의자들이며, 굳이 결혼할 이유를 못 느끼기 때문에 결혼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내가 이렇게 능력 있고, 혼자서도 잘 살아갈 수 있는데, 내 능력을 죽여가면서 결혼해 시-월드에 들어가 복잡한 관계 속에서 갈등과 싸움을 견뎌내야 할 당위성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외롭지 않은가? 하는 문제는,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그런 외로움은 사회적 성취를 통해서 얼마든지 커버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외로움을 알려면, 40 중반, 50을 넘겨야 된다.
또한 성적 욕구는 어떻게 해소하느냐? 걱정거리가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성적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나 하는 걱정일 뿐이다.
이런 사람들은 성적 욕구가 없는데, 왜냐하면 일찍부터 그들의 신체는 이미 히스테리화되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남자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 스킨십을 한다거나 신체와 신체 간에 거리가 좁아진다거나 하면, 오히려 예민해져서 거부감을 가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밀어낸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이 가진 잠재력은 주어진 일을 통해 창조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딸은 두 종류, '어머니의 딸'과 '아버지의 딸'이 있다.
대부분 딸은 어머니의 딸이다.
어머니의 딸은 어머니와 동체성을 이루고, 어머니의 모성성을 차용해서 사용하는 딸이다.
모든 면에서 순종적이고 모성적이고, 남을 돌보는데 탁월하다
반면 아버지의 딸은 어머니와 동체성을 이루지 않고, 아버지와 동일시한다.
아버지의 딸은 대체로 사회적으로 탁월한 능력을 드러낸다.
아버지의 딸이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선두 인격인 여성성을 희생시키고, 이면 인격인 남성성을 선두에 내세운 결과이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남성성을 사용하는 것을 배웠기 때문에 사회에 진입하는 데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
그녀는 남성적 능력을 앞세워 탁월한 성과를 올릴 수 있게 되므로, 그녀가 밖에서 일하고 그녀의 남편은 전업주부가 되어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다른 일은 몰라도 아내 대신 남편이 아기를 전적으로 양육하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다.
남편은 아기를 양육하기 위해 남성성을 뒤로 접고 여성성뿐 아니라 모성성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딸’이 남성성을 사용하는 것보다 남편의 여성성 사용은 그리 효율적이지 못하다.
아빠가 엄마를 절대 대신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딸’들의 약진으로 사회가 많이 변하는 중에 남성은 여성과의 경쟁에서 맥을 못 추는 현상들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공무원 채용고시, 교육대학입시, 전문대학원입시, 대기업시험, 각종 고시 등에서 여성의 진출이 남성의 진출을 압도한다.
전국 교육대학의 경우, 2020년 남자가 35%를 기록하면서 전년도 33.9% 대비 1.1%가 높아졌다.
이 기록이 1990년 이후 최고 높은 기록이라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남녀 모두가 선호하는 전문분야일수록 더욱 두드러진다. ‘아버지의 딸’의 등장으로 남성의 경쟁력이 확연히 떨어졌다.
‘아버지의 딸’ 중에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부부관계를 봐 오면서 결혼에 대한 환상이 깨져 여성적인 삶을 선택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런 여성은 남성을 오직 경쟁대상으로 볼 뿐 사랑하는 대상 또는 결혼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모든 ‘아버지의 딸’이 결혼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
아버지의 딸’이어도 부모님의 관계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면 굳이 결혼을 거부할 필요까지는 없다.
이런 여성은 결혼한 남편까지도 경쟁상대로 볼 수 있다.
아버지의 딸은 대체로 성욕을 차단하면서 사는 것이 편하다.
아버지의 딸은 사회적으로 남성성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신체는 히스테리화되어 성욕을 억압하기에 크게 어려움이 없다.
결혼한 여성이 sexless가 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다.
먼저 최근에 젊은 결혼 커플들 사이에 남편이 성관계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음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sexless 부부가 많아지고 있다.
내 주변에도 그런 여성들이 많다.
신혼 초에는 열심히 성관계를 추구하던 남편이 자녀 출산 이후 더 이상 아내에게 성관계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보고가 있다.
그런 여성이 먼저 결혼한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대다수가 동일한 현상을 경험하고 있더란다.
그래서 성욕이 한창인 젊은 여성들도 자기 남편에게 더 이상 기대를 걸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두 번째 요인으로 중년기가 되면서 남편이 성 능력이 감소되면서 더 이상 성관계를 요구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sexless가 되는 경우이다.
중년기가 되면, 호르몬 수치 변동으로 인해 성욕에 영향을 미치는 데에다, 스트레스나 우울증 또는 불안의 문제로 성적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고 한다.
세 번째 요인으로 중년기가 되면서 바쁜 일상에서 시간을 일과 가정의 균형에 변동이 생기면서 부부간 상호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힘들어지면서 sexless로 되어갈 수 있다.
특히 자녀가 성장하면서 부부의 시간과 에너지가 분산되어 부부간 친밀감이 감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네 번째 요인으로 부부간 의사소통이 어려워질 뿐 아니라, 서로의 갈등도 회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sexless couple로 굳어지는 경우를 꼽을 수 있다.
부부간에 대화할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어도 관계가 서먹해지면서, 부부싸움조차 하지 않는다면 성관계라고 하는 밀접한 신체접촉과 심리적 접근이 어색해질 수 있다.
여성의 입장에서 그동안 성관계를 그렇게 즐겁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남편의 즐거움을 위해 봉사해 온 입장이라면 부부간 성관계는 더욱 힘들어진다.
만일 여성이 자신의 성을 주체적으로 소유하지 못하고 남편을 위한 성이라는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면, 스스로 성관계를 즐기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남편과의 성관계가 재미없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
이러한 히스테리 증상은 여성이 중년기를 넘어가면서 온몸이 아픈 이유가 된다.
중년기는 많은 여성에게 있어 신체적, 정서적 변화가 두드러지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여성은 위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의 성을 주체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성을 회피하는 형태의 부부관계를 영위해 가게 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성욕 억압으로 이어지며, 결과적으로 히스테리 증상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히스테리란, 일종의 신경증에 해당되는 것으로써 생각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질병을 발생시킨다.
한편으로는 의학의 한계이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 히스테리가 원인이 되어 질병이 제대로 진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분명히 몸의 여기가 아프고 저기가 문제가 생겨서 진단을 받아 보지만, 뚜렷한 진단명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 의사들은 한 마디로 일축하는 말이 있다.
"신경성입니다."
신경성이라는 말은 다른 말로 하자면, 바로 '히스테리 증상'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남자든 여자든 모두에게 적용되는 개념이다.
그렇게 보면, 편두통이나 위장병, 관절염, 만성두통, 오십견, 당뇨, 설사 등 수많은 병명들이 언급될 수 있다.
히스테리 증상이라면, 결국 부부관계,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
그렇다면, 알고 보면 모든 병은 관계적인 병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약 15년 전에 TV에서 중앙대 성심병원의 어떤 의사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40대부터 성관계를 일주일에 두 번 이상하는 부부는 평생 병에 걸릴 일이 없다."
40대에 일주일에 두 번, 50대에 일주일에 1.5회, 60대 이후 일주일에 1회를 성관계할 수 있다면 병에 걸릴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중년부부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50대를 넘어서면서 각방 쓰는 부부는 10쌍 중 8~9쌍에 해당된다.
각방을 쓰느냐 합방하고 있느냐가 모든 것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한편 그 기준에 부부간에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50대에 각방을 쓰는 부부간에는 친밀감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말이다.
친밀감 없음도 문제이지만, 그들은 더 이상 싸우지 않는다.
나이 50이면, 100세 시대에 정확하게 절반의 인생을 산 셈이다.
나머지 50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면 암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에게 성욕이 억압되면, 더 이상 관계적인 일을 도모하기 어려워진다.
개인적인 관계이든, 부부관계이든, 사회적 관계이든 더 이상 복잡계에 들어가기가 꺼려진다.
히스테리화된다는 말은, 여성성을 억압하고 남성성을 사용한다는 말이다.
여성이 여자답게 살지 못하고, 남성적으로 사는 것이다.
오랜 기간 억압된 여성성은 비명 지르게 된다.
그것이 온몸 이곳저곳에서 일어나는 질병들이다.
히스테리 증상은 남성에게도 일어난다.
남성 안에 있는 여성성을 계속 억압하면 남성의 몸에서도 여성성은 비명을 지른다.
남자든 여자든 현실감이 떨어지면서 백일몽을 꾸는 결과 이런 저런 질병을 몸에 달고 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