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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왜 여자를 두려워하는가?(2)

히스테리, 남자로 사는 여자의 증상

프로이트의 남성리비도 일원론


프로이트의 남성 리비도 일원론(Monism of Male Libido)은 성적 본능과 리비도(libido)가 궁극적으로 남성적인 성질을 띠고 있다고 주장한 이론이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성적 에너지가 남성 중심적인 것으로, 그리고 유일한 성적 동력으로서 리비도를 설명하며 남녀 모두의 리비도는 남성적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프로이트는 리비도를 성적 에너지나 욕망의 원동력으로 정의하면서, 이 리비도가 본질적으로 남성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리비도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동일하게 작용하지만, 그 기원이 남성적 성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프로이트는 여성이 성적 성숙에 도달하는 과정을 남성화의 과정과 대비하여 설명했다. 

그는 여성이 성적 발달 과정에서 남성적 리비도에 영향을 받고, 성숙하면서 남성적인 리비도 성질에 기초하여 여성화된 성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았다.


프로이트는 남성과 여성이 성적 발달을 겪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지만, 그 뿌리는 동일한 리비도라는 주장으로 차이를 설명했다. 

여성은 발달 과정에서 남성의 리비도적 특성을 받아들이면서도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완성해 간다고 보았다.

이 이론은 리비도가 생물학적으로 성 구분 없이 동일한 성질을 가지며, 주변 환경에 따라 남녀가 각자의 역할로 발달한다고 강조하는 경향을 띤다.


남자와 여자의 구분


프로이트는 남자로서의 본성, 여자로서의 본성을 부정한다. 

그의 주장은 남자나 여자나 남성리비도 일원론이며, 이는 주변 환경에 따라서 남자가 남자가 되어가고, 여자는 여자가 되어 간다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가장 이해하기 힘들어했던 주제가 바로 '남성 리비도를 가지고 태어난 여자가 어떻게 여성이 되어가는가' 하는 것이었다.


프로이트가 남성의 성기를 중심으로 남자와 여자이분법적으로 나누며, 이는 서양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가져왔다. 이전에는 서구에서 학술적으로 남성과 여성을 구분해 본 적이 없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여자는 남자와 대등한 인격으로 보지 않아서 시민권을 받지 못했다. 

여자는 아이를 낳는 도구에 불과했으며, 남자는 사랑의 대상으로 남자를 선택해야 했기에 소년동성애가 유행했다.

중세 시대만 해도 남녀 구분이 없어 성이 굉장히 문란해져서 근대까지 이른다.

프로이트의 이러한 사고는 동시대의 언어학자 페르디낭 소쉬르와 더불어 구조주의의 기원이 된다.  

  

남자와 여자가 처음에 동일한 남성 리비도를 사용하지만, 남자와 여자로 나누는 기준은 남자는 남근을 소유하고 있고 여자는 남근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유학의 영향으로 조선시대부터 '남녀 칠세 부동석'이라는 개념으로 남자와 여자의 구분을 어릴 때부터 할 수 있었으니 성적 문란함을 막을 수 있었다. 


남성성으로 사는 히스테리 여자


프로이트의 최초의 관심사이자, 궁극적인 관심사는 바로 여성의 '히스테리 증상'이었다. 

그는 히스테리를 단순한 신경증으로 보지 않고, 그 이면에 있는 복잡한 심리적, 사회적 요인들을 분석하고자 했다. 

그래서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최초로 쓴 책이 바로 [히스테리 연구]였다. 

이 책은 그가 여성의 심리와 관련된 문제를 심층적으로 탐구하는 기초가 되었으며, 이후 그의 이론이 발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부분 여자가 여성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히스테리'라는 과정을 꼭 거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여성들이 가부장적 질서 하에서 사회적 기대와 억압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고군분투를 반영한다. 

프로이트는 히스테리를 단순히 병리적 현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겪는 내적 갈등과 사회적 압박의 결과로 이해했다. 

여성성의 형성 과정에서 느끼는 불안과 갈등이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그들이 겪는 심리적 고통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히스테리'라는 것은 여성성을 억압한 결과 몸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신경증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이러한 신경증은 여성들이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고, 사회적 규범에 의해 제한받을 때 발생한다. 

그는 여성의 신체가 사회적 기대와 역할에 의해 형성된 억압된 감정을 반영한다고 보았다. 


'히스테리'란, 여자의 몸이 남성화되는 증상을 말한다. 

이는 여성의 전통적인 역할과 기대에 대한 반발로 해석될 수 있으며, 여성이 자신의 정체성과 욕망을 찾기 위해 겪는 갈등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프로이트는 히스테리가 단순한 병리적 증상이 아니라, 여성의 심리적 발달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프로이트의 연구는 히스테리를 통해 여성의 심리적 복잡성을 이해하고, 그들이 사회에서 겪는 다양한 압박과 억압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접근은 이후 정신분석학의 발전뿐만 아니라, 여성학과 심리학 분야에서도 중요한 논의의 기초가 되었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현대 심리학에서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가 여성성과 히스테리 간의 관계를 탐구한 것은 중요한 학문적 기여로 평가받고 있다.


남성성과 모성성의 조합으로 사는 여자들


여자가 남성 리비도를 에너지 원으로 삼고 살아간다는 점과 남근 없음의 결핍으로 '남근 선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여자의 리비도와 발달을 설명하는 데에 매우 중요하다.

프로이트가 예견하며 크게 관심을 가졌던 것은 여자가 여성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히스테리'의 개념을 끼워 넣었지만, 프로이트가 여자의 '여성성'에 대한 개념을 과연 잘 알아냈을까에 대해서는 의문스럽다.

왜냐하면 프로이트가 [새로운 정신분석]이라는 책에 서술한 '여성성'은 성적 기능의 관점에서 규정할 뿐, 인격적 측면이나 관계적 측면을 전혀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이런 관점에서 '여성성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서술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여성성의 궁극적인 측면인 '여자는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규명하지 못했다.

여자의 여성성은 그렇게 성적 기능만으로 파악될 수 없는 수수께끼 또는 우주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의 여성성을 상호 주파수가 안 맞을 때는 끔찍한 것으로, 때로는 낯선 것으로, 상호 주파수가 잘 맞을 때는 친밀한 것으로 또는 서로 감성 온도가 확 높아지는 것으로 경험한다.


내가 보기에, 프로이트의 여자를 이해하는 출발점, 즉 '남성 리비도 일원론'과 '히스테리'개념은 매우 잘 상정된 것으로 보인다.

여자는 처음부터 남성 리비도를 가지고 자신의 몸을 히스테리화시킨다. 

여성성을 사용하지 못하는 대신 어머니의 '모성성'을 차용해서 사용한다.

그래서 대부분 여자는 모성성을 여성성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여자는 남성성과 모성성의 조합으로 삶을 영위해 간다고 보면 된다.


모성성을 여성성으로 착각하는 것은 여자들뿐 아니라 남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요즘 이대남들은 다르겠지만, 그 윗대까지만 해도 청소년 남자에게 '너는 어떤 여성상을 가지고 있나?'라고 물으면, 대개 '엄마 같은 여자'라고 답한다.

왜냐하면 남자로서는 결혼 상대로서 그런 여자가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다. 

대개 그런 여자는 몸이 남성적으로 히스테리화되었기 때문에 여성성을 뿜고 다닐 이유가 없기 때문에 아내를 집에 홀로 남겨두고 출근을 해도 달리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런 남자는 아내에게 '당신은 이런 여자로 살아줬으면 좋겠어' 하고 요구하는 것이 바로 '현모양처'의 전형이다.

대한민국에서 '현모양처'는 여자가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의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남자나 여자나 '현모양처'가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상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가부장적 질서 안에서 가장 정형화된 형태의 여성 이데올로기이다.

현모양처야 말로 대표적인 모성성의 표상이다. 


현대 한국사회에서조차도 여전히 현모양처가 그렇게 나쁠 것이 없다.

그러나 현모양처도 유효기간이 있으니, 딱 40대 중반까지 효과적으로 유효하다.

현모양처를 자처하며 사는 한, 여자는 집안에서 할 일이 많아진다.

그 많은 일을 어떻게 다 해 내느냐 하면, 바로 남성성으로 무장한 히스테리적인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현모양처도 40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여성성을 찾아가지 못하고 계속 모성성을 사용할 때, 푹 퍼진 아줌마가 된다. 

몸이 푹 퍼진 아줌마로 가는 길은 여성성을 영원히 포기하고 계속해서 모성성과 남성성으로 살겠다고 삶의 방향을 정한 것이다.


남자로서는 언뜻 보기에 아내에게서 여성성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 현명할 것 같지만, 번개와 천둥을 동반한 여성성을 끔찍하게 만나 순화시켜나가는 과정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결혼의 의미나 삶의 의미를 놓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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