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그리움에 대하여

자유에 관한 사유

by 공기
겐지스강 앞에서 미소짓는 소녀


페이스북 파도타기를 하다 문득 누군가의 사진첩에서 인도의 사진들과 감상들을 보던 중, 급작스러운 파도처럼 그리움이 밀려왔다.


나는 왜 인도가 그리운 것일까.
그 혼돈과 카오스, 그리고 상식이란 것이 더 이상 상식이 아닌 곳, 매캐한 먼지와 매연이 공기중에 빼곡히 가득차 숨쉴 공간조차 찾기 힘들었던, 길거리에 아무렇지도 않게 서있는(혹은 앉아있는) 소들과 그 사이사이를 비켜 지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차들. 이게 도로인지 인도(人道)인지 분간조차 잘 되지 않는 사람과 차와 동물의 모호한 경계, 거리위에 놓인 수 많은 쓰레기와 동물들의 적나라한 배변 흔적들. 길 위에서 겨우겨우 움직이는 모든 차들이 일제히 크락션을 울려대서 이게 내가 탄 차를 향한 것인지,
반대편 차를 향한 것인지 도저히 분간되지 않는, 그야말로 시각, 청각, 후각의 총체적인 충격과 혼돈. 처음 도착했을 때의 그 난리통이 아직도 머리속에 생경하다.

까만 피부색에 유난히 하얗게 느껴지는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호기심 어린, 혹은 장사의 수단으로 바라보던 그들의 눈빛. 막연한 편견이 만들어내는 머리속의 이미지를 실제의 그들에게 대입시켜 온 정신을 다해 긴장과 경계의 끈을 단단히 부여잡았던 그 곳의 첫날부터, 따뜻하고 자유롭게 풀린 마음으로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그 자유를 다시 나를 속박하는 기구로 써야 한다는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 흘린 마지막 날까지 나는 1분, 1초 그곳을 참 많이도 사랑했다.

바라나시의 골목길

아마도 나는 그 혼돈과 상식이란 것이 존재치 않는 그 안에서 세상이 말하는 정상적인 범주에 속하지 않아도 괜찮다 라는 안도감을 느낀 것 같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 없이 많은 "정상적인 범주"와 "상식"이라는 미명에 스스로를 가두고 타인의 시선에 나의 높낮이를 조절한다. 늘 자유를 갈망하지만 정작 사회와 스스로가 만든 겹겹의 틀에서 벗어나길 두려워 한다. 많은 이들이 자신을 둘러싼 껍질을 깨부수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투명한 껍질을 가시화 시켜 되려 더욱 두껍게 자신을 가두려고 한다. 그리고 때때로 그 틀을 서로서로 자랑하기까지 한다. 입으로는 이 세상이, 수 많은 규율들이, 고정관념들이, 타인이 내게 자유를 빼앗는다 외치지만, 정작 자유를 위해 행동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진정한 자유는 나를 둘러싼 틀이 존재하지 않을 때 발휘된다. 그리고 진정으로 내가 나를 위해 살기로 결심했을 때 발현된다. 아주 작은 행동, 즉 타인의 시선에 나를 맞추지 않는 것부터 자유는 시작된다.
사회가 정해놓은 "물질적 풍요의 행복"이라는 틀에 맞추지 않고 자기 자신만의 "행복", 철수의 행복, 영희의 행복, 수진이의 행복을 찾는 것에서부터 자유는 시작된다.

자기자신이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 제대로 알고 또 그 것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결국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생각해본다.

디우파는 노점 할머니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많이 듣는다.

"난 니가 제일 부러워"

미혼인데다, 여행가고 싶을 때 훌쩍 떠나기도 하고, 하고싶은 걸 배우고 있기도 한 내가 부러운 사람들.
나도 나보다 더 많은 곳을 누비고, 나보다 더 많은 것들을 배우는 사람들이 부럽다. 다만 나는,


"부럽다,
그러니까 나도 해야지."

한문장이 더 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도전과 용기에 대해 비판적이고 회의적인 태도를 갖고, 자신의 실행하지 못함에 대한 다양하고 비겁한 자기합리화를 한다.
6년간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새로운 시작을 하겠다는 나의 말에 부모님의 반응은 여느집과 다르지 않았다. 흔히들 이야기 하는, 혼기도 꽉 찬데다가 내가 딛고있는 발판이 아닌 그 땅이 질은지, 메말랐는지 알 수조차 없는 곳으로 새로 발을 딛겠다니. 이런 반응속에서도 꿋꿋하고도 힘차게 발을 뗄 수 있었던 건, 나는 나의 행복을 위해 살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 행복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원천적인 것은 틀 없는 진정한 자유였다. 그래서 떠난 것이고, 인도가 첫번째 자유의 여정이었다. 그렇기에, 그 곳은 나의 알을 안에서부터 콕콕 찍는 행위의 첫발이었기에,
더 남달랐을 수도 있다.
화장을 하지 않은 맨얼굴로, 씻지 않은 부시시한 머리로, 늦은 오후 느즈막히 일어나 지는 해를 바라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지나가다 내키는 곳에 들어가 식사를 하는 것도, 하루종일 아무말도 하지 않아도 되고, 하루종일 강만 보며 글만 끄적이는 일도, 나에겐 작은 자유의 조각들이었다.
그렇게 자그마한 자유의 조각들을 얼마나 모아야 나의 나의 틀을 깨부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에게 그 첫 조각을 "잘" 보여지지 않아도 괜찮아 라고 이야기 해준 그 곳, 인도라는 그 나라가 얼마나 내게 머물러 있을지는 모르겠다.

문득 인도를 가기전에 들었던 말이 기억난다. 인도를 한번도 가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간 사람은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