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완벽하기 위해 시작하지 않는 사람

by 공기

완벽하기 위해 시작하지 않는 사람


내가 돈을 모아 처음 DSLR카메라를 샀을 때 가장 먼저 찍었던 것들은 내 주변의 사소한 것들이었다. 그러다 여행을 다니며 이런저런 사진들을 수집품을 모으듯 찍어 모았고 내가 찍은 사진들은 내가 보아도 너무나 좋았다. 내 눈에 좋은 것들만 담았으니 그럴 수 밖에 없기도 했다. 뷰파인더로 보는 세상은 네모난 직사각형으로 한정되 있었지만 내겐 제약 없이 넓었다. 그 세상에서 나는 나의 시선을 눈을 깜빡이며 기억하듯 셔터를 눌러 담아냈다. 뷰파인더로 세상을 보는 동안엔 다른 것들이 전혀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 순간에 완전하게 몰입했던 것이다. 그 몰입의 순간이 주는 기쁨과 만족은 다른 것에 비하기 어려웠다.

수 많은 것들을 담았지만 그 중에 고르고 골라 좋은 것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공유한다는 것은 꽤나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러다 아무 근본 없이 사진을 시작했던 나는 무언가 학술적이고 전문적으로 사진을 배우기 위해 대학원을 가기로 선택했다. 처음 대학원에서 내 사진에 대해 크리틱을 받았을 때 걱정 많고 소심했던 나는 한 없이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그저 순수하게 내 눈에 좋은 것들을 담았던 나와는 달리 다들 각자의 철학적 맥락과 기술적 스킬을 가지고 작업을 하고 있었고 그에 비해 나의 것들은 너무나도 초라해보였다. 교수는 늘 나의 작업이 기술적으로든 철학적으로든 조금씩 마음에 안드는 것들이 있었고, 나는 자꾸 어떤 틀에 맞추듯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전에는 생각 없이 직감적으로 누르던 셔터가 점점 수 많은 생각들이 담겨 누르기 힘들어졌고, 한번의 셔터를 누르기 위해 수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계산해야했다. 점점 더 카메라를 잡고싶지 않아졌고 그래서 나의 사진들은 줄어갔다. 그러다 크로아티아 여행중 카메라 렌즈를 게스트하우스에서 도둑맞았고 그걸 핑계로 더욱 사진을 찍지 않기 시작했다. 그냥 갑자기 사진 자체가 꼴도 보기 싫어졌다. 어쩌면 나의 완벽하지 않음을 그런식으로 미루고 덮어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대학원 동기 한명이 연락이 와 홈스냅을 찍기 시작했다며 인스타 아이디를 알려주었다. 들어가서 보니 내가 예전부터 찍고싶었던 그런 스타일의 사진들이 있었다. 사진들을 보며 나는 조금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그 사진들은 내가 몇 년 전 일기장에 써두었던 생각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스튜디오가 아닌 사람들이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그들의 공간에서 일상적인 순간을 담는 사진. 그 순간을 자연스럽게 기록하는 사진. 나는 이미 그때 그런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고, 일기에도 그렇게 적어두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거기서 멈춰 있었다.

나는 늘 준비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진을 더 잘 찍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보정도 완벽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돈을 받고 누군가의 순간을 찍는다면 적어도 완벽하게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은 어딘가 양심에 어긋나는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내 동기는 달랐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냥 시작했다. 사진을 찍고, 사람들을 만나고, 작업을 올리고, 계속해서 찍었다. 그렇게 몇 개월, 몇년이 지나자 그 일은 그 친구의 일이 되었고 그 사진들은 누가봐도 좋은 사진이 되었다. 그렇게 그 친구는 그 일을 잘하는, 그 분야의 전문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 사진들을 보며 묘한 감정을 느꼈다. 부럽기도 했고,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크게 느껴졌던 것은 내가 이미 몇 년 전에 그 출발선 앞에 서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완벽하게 시작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일은 어설픈 상태에서 시작되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조금씩 형태를 갖춰간다. 하지만 나는 늘 준비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잘 찍을 수 있을 때까지, 조금 더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조금 더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돌이켜보면 그 기다림은 사실 완벽을 향한 준비라기보다는 시작을 미루기 위한 핑계에 가까웠다. 완벽하지 않은 상태로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어딘가 불편하고 두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출발선 근처를 맴돌기만 했다. 하지만 완벽해지기 전에 시작한 사람들만이 결국 완벽에 조금씩 가까워진다. 처음에는 서툴고 부족해 보일지라도, 계속해서 셔터를 누르고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가는 사람들만이 그 사이에서 자신의 방식과 감각을 만들어 간다. 나는 그것을 조금 늦게 이해했다.

어쩌면 그래서 지금이라도 다시 카메라를 들 수 있는지도 모른다. 완벽해진 다음에 시작하는 것은 아마 평생 불가능할 것이다. 사실 나는 다시 이전처럼 순수하게, 아무 계산 없이 카메라를 들고싶다. 그 몰입의 순간이 너무나도 그립다.

그래서 내게 매일같이 타이른다. 100%가 아니어도 된다고, 그 예전처럼 수치적으로 환산되지 않는 정도로도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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