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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공 Mar 03. 2022

45. 내 나이가 어때서.

말못회 [말 못 하는 작가의 회고록] : 청춘



45. 내 나이가 어때서.

     

조선시대 평균수명은 35세 정도였으리라 추측된다. 

그 후 먹거리와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평균수명은 급속히 늘어났으며, 2022년 현재 평균수명은 2000년대 평균수명에 비해, 20년 남짓한 시간 만에 7.6년이나 늘어났다. 지금 이 시각까지도, 인간의 장수(長壽)를 위한 연구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으며, 우리는 그렇게 조금 더 오래오래 살고 싶어 하더라. 


진시황 또한 불로장생을 꿈꾸며, 수은을 불로초라 생각하여 음복하기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수은중독으로 사망하긴 했지만 말이다.     


벚꽃이 왜 더욱 예쁠까. 따스한 봄은 왜 한 달 남짓일까.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왜 이리 빨리 지나갈까. 모두 짧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다이아몬드라는 돌덩이가 희소성으로 인해 고가에 거래되듯, 그 모든 것이 짧기 때문에 더욱더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그렇게 짧은 것을, 그리고 수량이 적기 때문에 희소성이 있는 것을 갈망한다. 바로 ‘청춘’처럼 말이다.     


청춘 靑春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런 시절을 이르는 말.     


국어사전에서는 청춘을 20대라는 짧은 시간에만 적용하던데, 나는 그닥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백세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에서 고작 십여 년 남짓만이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이라 할 수 있겠는가? 

청춘은 ‘푸를 청靑’ 자에다가, ‘봄 춘春’ 자를 사용하였다. 

‘푸른 봄’이라는 이름의 청춘은 매년 오는데 말이다.  


40세는 청춘의 노년기이며 50세는 노년의 청춘기이다 

-빅토르 위고     


18세의 내 인생도 한 번뿐이고, 50세의 내 인생, 그리고 80세의 내 ‘푸른 봄’ 날도 한번뿐 아니겠는가. 

지금 바로 오늘이 내 인생에 가장 젊은 날이며, 청춘일 뿐이다. 다시 오지 않는 봄날처럼.     


젊음은 반드시 칭송되는 것만큼 좋은 것은 아니다

-리와나 블랙웰     


인생은 자고로 짧아야 제맛이다. 그래야만 우리네 오늘 청춘이 더욱더 소중하지 않겠는가.      

나는 무교이긴 하지만, 무신론자는 아니다. 어떠한 형태로든 신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요즘 넷플릭스 같은 플랫폼에서는 자체 시리즈물이 인기다. ‘지옥’ 이라던가 ‘지금 우리 학교는’ 은 해외에서도 대성행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요즘 유행하는 미디어에서는, 무신론적 입장이 다분하다. ‘신이 있었다면 세상을 이리도 추악하게 더럽히진 않았을 텐데’ 라면서, 성경책으로 머리를 때리거나, 십자가 앞에서 죄를 행하거나 하는 둥, 신의 권태로움을 꼬집곤 한다.     


나는 무교이지만, 종교인들이 때때로 부럽게 느껴지곤 했다. 삶의 의지가 있는 그들은 나 같은 염세주의자 보다 삶의 목표가 강해 보였다. 그것이 종교의 순기능이더라. 기댈 곳이 있다는 것.

그리하여, 나는 한 번씩 종교를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하였는데, 쉽사리 되진 않더라. 

일부 종교에서는, 절대신을 믿으면 천국(天國)에 갈 수 있다고 홍보하곤 한다. 얼마 전, 종교 홍보물이 인쇄가 된 휴지를 받았다. 그 휴지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당신이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지 아십니까?     

첫째. 당신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16)

.

둘째. 당신은 구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한복음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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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5:24)     



영화 ‘신과 함께’를 보고 난 후 느낀 점은, 나는 아무래도 나태 지옥으로 갈 듯하다. 

그런 무시무시한 지옥이 있다는 것도 싫지만, 나는 천국 또한 싫다. 

매일이 행복과 기쁨만이 다복한 극락의 세계라면, 그곳에서 어찌 만족감을 찾을 수 있겠나 싶다. 

그리하여 나는 영생 또한 무섭다. 


이제껏 지구에서조차 그리 권태롭게 살았는데, 천국에 가면 행복이라는 지루함이 무한정이라니 말이다. 

아무런 고통도 슬픔도 없는, 행복만이 가득한 세상이라면 그것이 무엇이 의미가 있겠는가 싶다.      


그렇게 천국을 인도하는 손길은, 내가 다가가기에 합당한 이유가 되지 못했고, 나는 그저 지금 이 짧은 생이 더 소중하더라. 오늘의 나, 그리고 내일의 나에게 주어지는 청춘은 단 한 번뿐이기 때문에, 무한정 이어지는 천국보다 더 귀한 시간이더라.     


청춘은 일생에 단 한 번밖에 없다

-롱펠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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