칵테일 사랑

by 공공이

나는 말을 늦게 뗐다고 한다. 7살 때까지도 엄마, 물, 야호 밖에 말하지 못했다고 한 걸 보면 과장이 있더라도 심각한 수준이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추성훈의 딸 추사랑이 7살 때 처음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했다. 한국어와 일어를 섞어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어릴 때니 당연히 가능한 거지’라고 생각했다. 멍청한 놈. 그런 생각을 한 바보는 사랑이와 같은 나이인 7살 때 엄마, 물, 야호 밖에 하지 못했다는 걸 모르겠지.


세 단어밖에 말하지 못했던 한 바보가 아직까지도 기억하는 노래가 있다. 때는 바야흐로 2001년, 사랑이보다 한 살 더 어렸던 6살 때 들었던 노래다.

“마음 울적한 날에 거리를 걸어보고 향기로운 칵테일에 취해도 보고. 한 편의 시가 있는 전시회장도 가고, 밤새도록 그리움에 편지를 쓰고 파.”

세 단어밖에 말하지 못했던 바보는 아직까지도 노랫말을 기억하고 있다. 어쩌면 바보는 천재일지도 모른다. 세단어가 아닌 노래 두 문단을 통째로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느 날, 이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됐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도 모르게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 이유 없이 마음이 붕 뜬 것처럼 즐거워졌다. 몇 년 동안 한 번도 듣지 않았던 노래를 우연히 듣고 노랫말을 따라 부르는 상황도 참 신기하다. 재미있는 건 억지로 가사를 생각하려고 하면 생각이 안 난다. 근데 또 후렴구가 나오면 자연스레 가사가 입 밖으로 나오고 있다. 그러는 동시에 가족끼리 차를 타고 여행 가는 길에 이 노래를 들었던 상황이 오버랩되면서 설명하지 못할 감정이 피어오른다.


오늘, 또다시 이 노래를 접했다. 노래가 아닌 글로. 책을 읽다 노래 가사에 대한 글이 있었다. 책에 적힌 가사를 음미하며 읽었다.

‘마음 울적한 날에 거리를 걸어 보고’ ‘향기로운 칵테일에 취해도 보고’ ‘한 편의 시가 있는 전시회장도 가고’ ‘밤새도록 그리움에 편지를 쓰고 파’

말도 못 하는 어린아이 었던 바보는 어느새, 이 행동들을 하는 사람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씁쓸하고 외로운, 적막하면서도 후회되는. 노랫말에 따라 주인공의 표정과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슬펐을 때, 어떤 행동을 했나 생각해봤다. 거리도 걸어 봤고 술도 마셔봤다. 사진을 보러 전시회장도 갔었고 누군가를 위해 밤새 편지를 쓰기도 했다. 이 행동들을 다 해봐서 그런가 멋도 없고 특별하지도 않은 가사들이 이제야 가슴에 사무친다.


슬픔에 잠기듯 애절한 멜로디보다는 맑고 청아한 멜로디로 그리움과 외로움으로 뭉쳐진 가사를 꾸민다. 어색할 것 같은 두 가지의 분위기가 합쳐지면서 새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제는 다 나았다는 듯, 그 기억들은 지금의 나에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다.


‘나도 그럴 수 있겠지.’ ‘어쩌면 벌써 나도 그런 상태일지도 몰라. 알아차리지 못한 것뿐이야.’

노래 한 곡으로 아팠던 기억과 씁쓸했던 과거는 추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노래란 건 참 신기하다. 4분 남짓한 시간으로 사람을 위로해주기도, 치유해주기도 한다. 까마득히 잊었던 아름다운 추억을 되살리기도 하고 재미있는 시간엔 흥을 돋우기도 한다.

‘1cm 다이빙’이란 책은 “스마트폰보다 재미있는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한다.

거기에 나는 주저 없이 대답한다.


“노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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