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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현 Dec 15. 2018

청소년에 의한 정치를 위해

청소년 참정권의 현실



‘촛불’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2016년 가을부터 2017년 초까지 한국의 시민들은 대규모 촛불 집회와 각계 각층의 선언 등의 정치적 압력으로,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비리를 저지른 것이 드러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청소년들은 다양한 학교·지역별 시국 선언 발표, 활발한 촛불 집회 참여 등으로 함께했다. 촛불 집회는 나이에 상관없이 청소년도 시민으로서 동참한 역동적인 민주주의 정치의 과정이었다. 이는 청소년들의 민주주의와 정치에 대한 관심과 욕구를 높였고, 우리 사회 안에서 청소년을 동료 시민으로 보는 인식을 확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성세대와 정치에 대한 불신도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의 당위성을 강화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결과적으로 청소년이 다수를 차지하는 수백 명의 여객이, 이윤만을 추구하고 안전을 도외시한 정책 및 탈법 행위 그리고 정부의 무능으로 희생된 사건이었다. 이는 기성세대의 방식과 가치관에 대한 의문을 키웠으며 이후 정부의 대응 역시 불신을 키웠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을 맞이하며, 2012년에 박근혜 대통령을 선출했다는 데서 드러난 기성세대들의 ‘미성숙함’ 등도 정치는 어른들만의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깼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통해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를 회복시킬 저력을 증명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을 당선시키고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건이 일어나게 만들었던 사회 및 정치 구조에 대한 반성은 여전히 필요하다. 이에 따라 선거 제도 개혁과 같은 과제들이 대두되고 있으며 청소년 참정권 확대도 그중 하나의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이와 같이 정치적 역할을 한 청소년들의 존재는 그리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한국에서 평화 집회·시위의 상징이 된 ‘촛불 집회’만 하더라도 그 시작인 2002년 미군 장갑차 사고 때부터 청소년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인터넷에서 정치적 의견을 개진하고 촛불 집회에 참여해서 존재감을 드러낸 청소년들을 언론에서 ‘청소년 정치인’이라 부르며 조명하기도 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때의 연이은 촛불 집회는 또 어떠했나. 당시 5월 첫 촛불 집회 당시 참가자의 40%가량이 청소년이었다고 추정하는 연구도 있을 정도다. 또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에도 청소년 시국 선언이 발표되었고, 박근혜 정부 때도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요구 및 추모 활동에서 청소년들의 활동은 대중적이었다. 촛불 집회 이전을 돌이켜보아도 식민지 시기 일제에 맞서 독립을 요구했던 3.1운동이나 부정선거로 장기 집권을 꾀한 대통령을 퇴진시킨 4.19혁명에서 청소년, 초·중·고 학생들의 역할은 작지 않았다. 1987년에도 청소년들은 “노태우를 당선시킨 기성세대는 각성하라”고 외치며 서울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역할과 대조적으로, 청소년들은 우리 사회 안에서 민주주의의 사각지대에 갇혀 있다. 2017년 5월 대통령 선거일에 청소년운동에서 열었던 참정권 요구 집회의 제목이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였으며, 이후 청소년 참정권 운동에서 꾸준히 등장한 “탄핵을 같이 했는데 왜 선거는 같이 못 하는가?”라는 표현은 이러한 모순을 보여 준다. 민주주의를 만들고 수리하는 과정에는 청소년 집단이 함께했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민주주의 체제 속에서는 청소년들은 무권리의 상태로 배제당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 참정권의 현실


현재 한국의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은 19세이다. 피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은 (대통령 외에는) 25세이다. 그런데 한국은 정당의 당원 및 발기인의 자격도 〈정당법〉에서 ‘국회의원 선거권이 있는 자’로 정하고 있기에 한국 청소년들은 정당에도 가입할 수 없다. 〈공직선거법〉에서 선거권이 없는 사람의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청소년들은 선거운동 기간에 어느 후보에게 투표해달라거나 어느 후보를 반대한다거나 하는 의견을 밝히거나 다른 사람을 설득해서도 안 된다. 주민발의, 주민투표, 국민투표 등도 19세를 기준으로 하기에 19세 미만의 청소년들은 지방자치에서의 직접 참여 제도나 개헌 투표 등에 전혀 참여할 수 없다. 그래서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도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글을 SNS에 게시한 청소년이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경고를 받거나 경찰에 조사를 받으러 출석하라는 통보를 받는 사건이 일어났다. 또한 서울과 경남, 충북 등 지역에서 초·중·고 학교에서의 학생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이 일어났던 적이 있으나 이때도 당사자인 청소년들은 주민발의에는 공식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다.


일상생활에서의 참정권 현실도 열악하다. 학교운영위원회에는 교사, 학부모 대표 등이 참여하지만 학생들의 동등한 참여 자격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학교 규칙을 정할 때 학교장이 학생들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규정하긴 했으나 실질적으로 의견이 반영되도록 보장하는 장치는 없고 학교장이 의견을 청취하는 방식 또한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아서 형식적 절차가 될 때가 많다. 학생회의 자율적인 예산 운용이나 활동의 권한은 보통 인정되지 않고, 학교 교사들이 선거 과정이나 운영에 많은 간섭을 한다. 많은 학교에서 학생들의 언론·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를 제약하고 정치 활동을 처벌하는 학교 규칙을 두고 있다. 주민 자치나 마을공동체 활동이 활성화되고 있지만 청소년들은 여기에도 동등한 주민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도 청소년들이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이 아니라 ‘미래의 시민’, ‘시민이 되기를 준비하고 있는 존재’로 간주되고 있다. 경쟁적인 교육 제도 속에서 청소년들에게 한계에 이를 정도로 공부에 집중하는 것이 미덕으로 요구되는 것도 이에 한몫한다. 한국 사회의 청소년의 정치 활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청소년들이 정치 과정에서 거의 완전히 배제되고 있는 현실은 청소년에 관련된 정책이나 사회 논의 과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예컨대 한국에서 교육 문제가 심각하다는 데 대부분의 국민들이 동의하지만, 주로 초점이 맞춰지고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여겨지는 것은 교육 제도 속에서 학생들의 인권 문제보다도 학부모들이 감당해야 하는 ‘사교육비’ 문제 쪽이다. 그 결과 학교에서 입시를 위한 준비를 상당부분 감당하려는 취지의 정책들이 나오고, 공영교육방송의 강의와 대학입시 수능 시험을 연계한다는 등의 정책 등이 나왔다. 또 다른 예로, 청소년들의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지자 16세 미만 청소년들의 야간 온라인 게임 이용을 일괄 제한하는 ‘셧다운제’가 도입되었다. 이 법의 논의 과정에서 청소년들의 의견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주로 게임 산업의 발전과 이익이 쟁점이 되어서 국회 공청회 등에서도 게임 산업 측의 증인이 채택되곤 했다. 지방의 교육감이나 지방의회에서도 청소년 인권 확대에 반발하는 어른들의 의견을 보다 쉽게 수용하여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조례나 청소년노동인권조례를 폐기하곤 한다.


청소년의 참정권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인권이다. 〈UN아동권리협약〉은 (18세 미만) 아동의 시민적·정치적 권리를 보장하고 있으며 선거권을 직접 명시하고 있진 않으나 “자신의 의견을 형성할 능력을 갖춘 아동에게는 본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할 권리를 보장하고, 아동의 나이와 성숙도에 따라 그 의견에 적절한 비중을 부여해야 한다.”(제12조)라고 참여권 보장을 요청하고 있다. UN아동권리위원회도 이러한 취지에 따라 한국 정부에 반복적으로 청소년의 시민적·정치적 권리 보장을 권고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정치 체제에서 선거권은 주권의 상징적 표현으로서 다른 기본권보다도 더 중요한 기본권이며, 제한이 최소화되어야 할 인권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김효연(2017), 《시민의 확장》, 90-97쪽 참고)


따라서 청소년의 참정권 보장 측면에서 선거권을 가능한 한 확대하는 것은 분명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이에 더하여 청소년 참정권은 청소년의 인권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중요한 장치이다. 타인에게 내맡겨지지 않은 삶,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삶, 자기에 관련된 문제를 결정할 때 참여하고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청소년에 의한 정치가 필요하다.



2016년 이후


청소년 참정권을 요구하는 운동은 1990년대부터 있어 왔고, 청소년운동에서 구체적인 이슈로 제기하고 캠페인을 전개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의 18세 선거권 요구 운동을 시발점으로 잡을 수 있다. 촛불 집회의 과정이나 학교 안에서의 학생 인권 보장 요구 운동의 과정에서 청소년의 집회·시위·결사의 자유, 언론·표현의 자유 등이 계속해서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은 2005년 20세에서 19세로 변경된 이후 10년이 넘도록 청소년/초·중·고등학생은 정치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편견에 가로막혀 있었다. 그나마 18세 선거권이나 선거권 연령 하향을 주장하는 정당 등에서도 이를 청소년 참정권의 차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 대세나 고령화 시대에 대한 대처 등을 주된 이유로 들곤 했다. 여론조사 결과 역시,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을 18세로 하는 것조차도 반대 의견이 더 많았다.


청소년 참정권 운동은 2016년 하반기에 전환점을 맞이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 집회와 청소년들의 활발한 참여 속에서 청소년 참정권 문제가 다시 부상했다. 이후 국회에서도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 하향 등이 논의되었고 청소년 참정권의 문제로 관련 문제들 다루어졌다. 당시 이러한 내용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전체 회의에까지 상정될 뻔했으나 아쉽게도 무산되었다. 이후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결성되어 청소년 참정권 보장과 학생 인권 보장 등을 요구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2018년 상반기에는 청소년들이 삭발 시위를 하고 국회 앞에서 한 달이 넘게 거리 농성을 벌이고 시위를 하며, 18세 이하로의 선거권 연령 하향 그리고 선거운동 및 정당 가입 등 정치 활동의 자유를 요구하며 청소년 참정권 이슈를 환기시켰다. 촛불의 기억과 이러한 청소년 참정권 운동의 결과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을 하향하는 데 대한 19세 이상 국민의 찬성 여론은 60%를 넘어서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변화의 한 흐름으로 여러 지자체에서도 청소년들의 정치 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청소년의회’를 만들기도 하고, 서울시 성북구 등에서도 아동친화도시 정책을 추구하면서 청소년들의 참여 통로를 마련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청소년의회 제도 등의 증가 속도나 사례를 보면 청소년 참정권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화두가 되었음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청소년 참여 기구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지자체 차원의 청소년참여위원회나 정부 차원의 청소년특별회의 등의 기구가 이미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청소년 대부분에게는 그 효용이 체감되지도 않고, 청소년 참정권 보장의 실질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기구들이 실제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것은 청소년 참여 기구가 법적 권한과 충분한 자율성 및 자원을 가지지 못하고 있고, 청소년 대중의 정치적 힘을 배경으로 가지지 못한 채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청소년의회를 비롯한 청소년 참여 기구나 절차들의 성공에도, 청소년의 참정권 확대, 청소년에 의한 정치 활동이 선결 조건이라 할 것이다.



※ 2018년 12월 서울인권컨퍼런스 발표문을 조금 다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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