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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현 Mar 27. 2020

18세 선거권, 어쩌면 생각보다 중요하진 않은

선거권 연령 하향 운동의 역사와 의의

〈18세 선거권, 오랜 노력 끝에 이룬, 어쩌면 생각보다 중요하진 않은〉



2019년 12월 27일, 국회에서 국회의원 156인의 찬성으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개정안 중에는 “18세 이상의 국민은 대통령 및 국회의원의 선거권이 있다”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18세 선거권이 현실이 된 날이었다.


‘선거권 제한 연령을 18세로 하향하는 것’, 즉 18세 선거권 논의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도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을 18세로 삼았다. 그러나 1948년 정부 수립 당시에는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이 21세였고, 1960년 4.19혁명 이후 20세로 확대되었다. 그 이후에도 세계적 추세에 맞추어 18세 선거권으로 바꾸자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되었다. 예컨대 김영삼 전 대통령도 신민당 총재 시절 18세 선거권을 거론했던 적이 있고, 1987년 개헌 당시에도 18세 선거권이 쟁점으로 논의되었다. 그러나 40년이 넘도록 20세라는 벽은 쉽사리 깨지지 않아 왔다.


청소년인권운동으로서의 선거권 운동


선거권 연령을 낮추라고, 적어도 18세 선거권은 해야 한다고 청소년의 입장에서 요구해 온 역사도 짧지 않다. 1990년대 초반, 군사 독재를 계승한 노태우 정권에 반대하는 운동이 벌어지던 와중에 ‘고등학생정치활동쟁취공동실천위원회’라는 단체가 18세 선거권을 주장했던 적도 있다.


18세 선거권이 청소년인권 차원에서 이슈로 부상하고 본격적인 캠페인과 입법 운동이 벌어진 것은 2000년대 초반을 시발점으로 잡을 수 있다. 그 이전에도 선거권 연령 하향 요구가 시민 사회로부터 제기되곤 했지만 주로 대학생단체(만 20세라는 제한 기준은 대학생 중 상당수도 선거권을 갖지 못하게 했다)의 주장이나 시민단체의 정치개혁 주장 중에 포함된 것이었다. 2002년 대선 시기, 청소년 모임 ‘낮추자’는 18세 선거권으로 청소년에게 선거권을 보장할 것을 주장하며 토론회와 청소년 모의 투표 활동을 했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는 ‘18세선거권낮추기청소년연대’가 결성되어 모의 투표나 거리행동, 본격적인 입법 운동을 벌였다. ‘18세선거권낮추기청소년연대’는 제17대 국회에 18세 선거권 법안을 제1호 국민 청원으로 제출하고 과반수의 의원들에게 18세 선거권에 찬성한다는 서명을 받아 내기도 했다.


이 운동은 2005년, 20세였던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을 19세로 낮추는 성과를 이루었으나, 목표로 했던 18세 선거권은 이루지 못했다. 19세와 18세 사이의 차이, 그건 바로 18세부터는 청소년/10대/고등학생이 일부 포함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일부라도 고등학생이 포함되는 것이 문제’이고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고 하면서 정치적 자유를 주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국회 과반을 차지한 열린우리당은 18세 선거권이 당론이었으나, 청소년 참정권 문제에 대해 그리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은 선거권 연령 하향의 논거로 주로 국제적 추세나 고령화 시대에 대한 대처, ‘젊은 정치’ 등을 들었고, 18세 중에는 고교 졸업자나 대학생 등도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열린우리당 의원이 국회에서 18세로 선거권 연령을 낮추되 고등학교 재학생은 제외하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18세 선거권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 청소년은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편견이었는데, 18세 선거권을 찬성한다는 정치 세력조차 이러한 편견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사실 18세 선거권은 요원한 노릇이었다. 선거권 연령을 낮추는 것이 자기 정당에 유리한지 불리한지를 계산하고 있던 면에서는 어느 쪽이든 별로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청소년운동이, 청소년들이 만들어 낸 변화


이후 몇 년간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을 낮추기 위한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청소년 참정권 운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5년 두발 자유화 운동이나 2008년 촛불 집회 등을 거치며 청소년의 언론·표현·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출하거나 학교 현장에서의 탄압에 맞서 싸우는 운동이 꾸준히 일어났다. 교육감 직선제가 시행된 것을 계기로 삼아, 청소년운동단체들이 ‘기호 0번 청소년 교육감 후보’로 출마를 선언하고 청소년은 참여할 수 없는 선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퍼포먼스와 캠페인을 기획한 바도 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이 같이 치러진 해에 청소년 참정권, 선거권 연령 하향 운동이 재차 부상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등의 단체들이 모여 ‘청소년의 정치적 기본권 내놔라 운동본부’(내놔라 운동본부)를 결성하여, 헌법 소원과 정당들에 관련 공약 요구, 투표소 앞 1인 시위, 토론회 등의 활동을 했다. 내놔라 운동본부는 선거권·피선거권, 정당 가입, 언론·표현·집회·결사의 자유 보장, 학생 자치 및 학교 운영 참여 보장, 주민 발의 등 지방 자치 참여 보장을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위한 과제로 제시했다. 2014년 ‘1618 선거권을 위한 시민 연대’ 활동 등 모의 투표 형식으로 청소년의 선거 참여 보장을촉구하는 활동도 꾸준히 이어졌다. 2016년 총선 때도 청소년의 선거권과 선거 운동의 자유 보장을 요구하는 활동이 이어졌다.


선거권 연령을 낮추기 위한 운동은 2016년 하반기에 전환점을 맞이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 집회와 탄핵을 계기로 정치 개혁의 당위성이 커졌고, 청소년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한 가운데 청소년 참정권 문제도 시민들의 관심을 받게 됐다. 2000년대 이후 끊임없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고 사회 문제에 참여해 온 청소년들의 존재와 그에 대한 기억이야말로, 청소년에게 정치를 금지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을 바꾼 큰 힘이었다. 2016년 총선 결과 제20대 국회에서 18세 선거권을 찬성하는 정당들의 의석을 합치면 과반에 이르렀고, 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긍정하는 의견, 청소년의 권리를 보장해야 할 필요성이 18세 선거권의 주된 논거로 자리 잡았다. 반대하는 정당 안에서도 18세 선거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곤 했다. 2016년 말 국회에서 18세 선거권 내용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전체 회의에 상정될 뻔했으나 아쉽게 멈추는 등 국회 상황은 희망을 가져 볼 만했다. 전국 여러 지자체에서도 청소년 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청소년의회를 만드는 등의 논의가 활발해졌다.


2017년 하반기 결성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청소년 참정권과 학생인권을 보장하는 법 개정을 이루어 청소년이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나 시민으로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2016년 ‘촛불’의 과제라고 주장했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2018년 3월, 청소년들이 삭발 시위를 하고 국회 앞에서 한 달이 넘게 거리 농성을 벌이고 시위를 하며, 18세 이하로의 선거권 연령 하향 그리고 선거 운동 및 정당 가입 등 정치 활동의 자유를 요구하며 청소년 참정권 이슈를 환기시켰다. 촛불의 기억과 청소년 참정권 운동에 힘입어,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을 18세로 하향하는 데 대한 19세 이상 국민의 찬성 여론은 50%를 넘게 됐고, 고등학생 중 65.9%가 찬성한다는 조사 결과(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2017), 《고등학생들의 정치참여욕구 및 실태 연구》)도 나왔다.


그럼에도 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부정적으로 호도하며 선거권 연령을 낮추는 것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만만치 않았다. 자유한국당은 ‘고등학생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과 교복 입고 투표하는 사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고, 다른 나라들이 18세 선거권을 시행하는 것은 학제가 달라서라며, 학제를 개편하여 18세 이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해야만 18세 선거권에 찬성할 수 있다고 내세웠다(사실 자유한국당의 이러한 거짓 주장과 달리, 18세 선거권을 시행 중인 국가들 중 상당수가 고등학교 재학 중일 때 선거권을 가지며, 청소년기에 정당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경우도 쉽게 볼 수 있다). 선거권 연령이 낮춰지면 ‘고3 교실이 정치판이 될 것’이고 ‘전교조 교사들이 학생들을 정치에 동원할 것’이라며 뚜렷한 근거도 없이 과장된 공포감을 조장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다른 여러 사안들로 국회 일정 참여를 거부하며 18세 선거권 실현은 계속 미뤄졌다.


결국 2019년 4월, 18세 선거권과 선거 제도에서 비례성을 높이는 개혁안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자유한국당 등을 제외한 다른 정당들에 의해 ‘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되었고, 2019년 12월 27일 18세 선거권을 포함한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 2020년 1월부터 시행되었다. 긴 시간 동안 청소년들이, 청소년운동이 요구하고 행동하며 이루어 낸 변화였고, 청소년은 정치나 선거에 참여해선 안 된다는 금기를 부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18세 선거권 단독이 아니라 다른 선거 제도 개혁안을 통과시켜야만 한다는 당위성 속에 끼워서 처리하듯이 통과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청소년인권 문제가 여전히 정치 세력들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또한 모든 정당이 찬성할 수밖에 없을 만큼 확고한 국민들의 지지와 운동의 세력을 가지지 못한 채,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던 제1야당을 우회하여서 통과된 과정도 아쉬운 점이다.



18세 선거권의 의의와 남아 있는 과제들


‘18세 선거권’이 가지는 의미는 단지 선거에 좀 더 이른 나이부터 참여하게 됐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통상 ‘미성년자’, ‘초·중·고 학생’, ‘청소년’, ‘10대’ 등의 이름으로 불리던 집단 중 아주 일부라도 정치와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가 크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운동단체들이 18세 선거권을 청소년 참정권의 문제로 이야기하고 청소년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18세 선거권에 반대하는 이들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18세 선거권을 반대했다. 실제로 18세 선거권이 이루어지자마자 몇몇 정당들은 청소년 또는 고등학생을 위한 공약을 내놓고 있다. 또한 여러 학교들이 가지고 있는 정치 활동 금지 규정들을 손봐야 한다는 언론이나 시민사회단체의 지적도 늘어나고 있다. 모두 18세 선거권이 촉발시킨 변화의 기회이다.


하지만 또한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18세 선거권이 곧 청소년 참정권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이다. 18세 선거권을 통해 선거권을 갖게 되는 사람들은 청소년 집단 중 극히 소수이다. 18세 선거권 실현만 가지고 청소년들이 대의제 정치에서 크게 의미 있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또한 여전히 청소년의 정치 활동이나 선거 참여 등을 제한하고 있는 잘못된 법 제도들이 남아 있으며, 사회적·문화적 장벽도 사라지지 않았다.


만일 한국 사회가 계속해서 ‘성인’과 ‘미성년자’를 나누고 ‘미성년자’에게는 참정권을 포함한 각종 인권을 제한하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면, 18세 선거권 실현도 단지 19세였던 기준선을 18세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즉, 18세 미만의 청소년들은 계속해서 참정권도 무엇도 없는 상황에 놓여 있게 될 것이다.


18세 선거권을 포함하여 청소년 참정권에 반대하는 주장은, 일정 나이 이상이라면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지만 나이가 어린 사람들은 사회의 주류 가치에 따라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나이주의적인 차별 의식을 배경에 깔고 있다. 비청소년들에게 교육을 받아야 할 청소년들이 정치를 한다는 것은 이러한 질서를 혼란시키는 것이기에, 교육의 대상이고 ‘아직 사회에 나오지 않은’ 청소년들이 공적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정치를 하는 것은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청소년운동의 문제의식은 이런 나이주의적 차별 의식을 비판하면서 넓어져 왔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18세 선거권을 주장하면서 종종 ‘18세면 병역의 의무도 있고 결혼도 할 수 있다’라며, 18세면 충분히 성숙한 성인이라는 논거를 들곤 했다. 그러나 청소년 참정권을 요구하는 입장에서는 이와 같이 ‘18세면 충분히 어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결국 청소년들은 참정권을 얻을 수 없고, 사회가 인정한 ‘어른’이 되어야만 정치 참여를 할 수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2010년대 이후로 청소년운동에서는 ‘참정권은 의무의 대가가 아니다’, ‘나이는 참정권을 제한할 합당한 근거가 아니다’, ‘20대 이상이라고 해서 성숙하고 합리적이지 않다’라는 주장을 더 앞세우려 노력하고 있다. 선거권만이 아니라 나이에 상관없이 일상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다양한 권리들을 이야기하려 하고 있다.



‘몇 살부터?’는 그만


1989년, 유엔에서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채택되었다. 그 전에 만들어진 1924년 〈제네바선언〉이나 1959년 〈유엔아동권리선언〉과 비교해 보면, 〈유엔아동권리협약〉은 법적 효력이 있는 국제 조약이 라는 점에서도 차별화됐지만, 내용적으로도 새로운 점이 있었다. 바로 아동의 시민적·정치적 권리, 참여권 등을 처음으로 아동인권의 내용으로 공식적으로 포함시킨 것이다.


예컨대 〈유엔아동권리협약〉 제15조에서는 “당사국은 아동에게 결사의 자유와 평화적 집회의 자유에 대한 권리가 있음을 인정한다”라고 집회·결사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다. 제12조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형성할 능력을 갖춘 아동에게는 본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할 권리를 보장하고, 아동의 나이와 성숙도에 따라 그 의견에 적절한 비중을 부여해야 한다”라고 하여 아동이 결정 과정에 의견을 내고 그 의견이 정당한 비중으로 반영될 권리도 밝히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그 이전의 아동권리선언 등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국제 사회가 아동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 뒤 아동의 정치적 권리를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이기까지 65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셈이다.


한국은 1991년에 〈유엔아동권리협약〉에 가입했고 이에 따라 협약은 한국에서도 국내 법률과 같은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한국 정부는 법을 잘 지키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 참정권 등이 잘 인정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랜 시간 동안 ‘청소년들은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라는 의견이 더 사람들의 ‘상식’에 가까웠고, 정부에서도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이번 18세 선거권 통과를 통해 비로소 〈유엔아동권리협약〉상 참여권 내용을 실현할 계기가 마련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18세 선거권은 청소년 참정권 확대를 위한 중요한 변화이다. 하지만 18세 선거권은 청소년 참정권이나 참여할 권리의 완성이 아닌 첫걸음일 뿐이다. 2016년의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과 탄핵은 민주주의가 단지 정기적인 선거 그 이상의 것임을 보여 준 사건이었다. 우리의 참정권과 주권이 선거나 투표라는 형태로만 행사되는 것이 아니며, 선거가 끝난 뒤에도 우리가 주권자임은 변함없다고 선포한 것이다. 청소년 참정권에 관한 과제도 더 폭넓은 권리로 생각되어야 한다. 적어도 촛불 집회에 참여하거나 시국 선언을 한 청소년들이 학교로부터 위협이나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던 현실은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수능을 끝낸 고3들이 거리로 나오길 기대했던 시민들이, 이제는 수능 시험과 상관없이 고등학생들이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발언하고 행동할 수 있는 교육 환경과 삶의 조건을 만들려 한다면 어떨까?


선거권 제한 연령 이야기를 하면 거의 대개 “그럼 몇 살부터가 옳은가?”라는 질문을 한다. 우리는 몇 살이 되면 충분히 성숙해져서 선거를 할 수 있게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몇 살부터’를 묻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참정권, 참여할 권리, 정치적 권리는 자신의 의견을 가지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장되어야 할 권리이다. 선거권은 우리가 의사 결정에 참여하고 의견을 표현하고 대표를 뽑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우리 사회와 행정 편의상의 한계로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을 두어야 하더라도, 그럼 선거권을 제한당한 사람들은 어떻게 참정권을 보장받아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설령 투표를 못 하더라도 그 사회의 시민으로서 참여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18세 선거권에 대한 국회 안팎에서의 논의가 이제는 청소년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누가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지금 우리 삶의, 우리 사회의 주인인가’ 물을 때 민주주의가 더욱 완전해질 수 있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표의 주인이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사회와 국가의 주인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18세 선거권은 중요하지만, 어쩌면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청소년들의 참정권을 19세까지 유예시킬 것인지 18세까지 유예시킬 것인지를 토론할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지금 당장 아랫사람 취급을 받지 않고 의견을 존중받으며 같이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말하고 모이고 행동할 수 있게 보장해야 한다.


선거권 제한 연령이 몇 살이냐 하는 것 이상으로, 청소년은 아직 어리다고 빼놓는 사회, 어른 말에 토 달지 말라고 하는 사회, 청소년들의 행동은 어른들에게 조종당하는 것이라고 폄하당하는 사회, 청소년들은 공부만 해야 한다면서 학교·학원에 갇혀서 자유 시간도 갖지 못하는 사회인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은 ‘자신의 견해를 형성할 능력이 있는 아동’은 ‘본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19세 이상이나 18세 이상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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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청소년인권에 관련해서 쓴 여러 글들을 엮어서

《유예된 존재들 - 청소년인권의 도전》(교육공동체 벗, 2020, 16,000원)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과거 쓴 글들 중 고쳐 쓴 글들이 많고, 아예 새로 쓴 글도 몇 있습니다.

위의 글은 이 책에 실린 18세 선거권 실현의 역사와 그 의의, 그 이후를 논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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