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성이 먼저냐, 생명이 먼저냐" 묻는다면
나는 2000년대 초반에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전국에서 학생을 모집하는 곳이었고 학생 중 절반 정도는 기숙사에 살았다. 나도 타지에서 와서 기숙사에 살던 학생이었다.
기숙사 시설은 살기에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마냥 괜찮지는 않았다. 밤 11시까지 자율 학습이 의무였고 아침 6시가 기상 점호였으며 각종 사소한 일들로 벌점을 받았다. 선배들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후배들에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기합을 줬다. 산만하고 시끄럽다느니, 인사를 잘 안 한다느니 하면서. 그럴 때면 나는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려서 선배라는 사람들을 난감하게 만들곤 했다. 그리고 선배들의 폭력을 비판하는 글을 써서 복사해 새벽에 기숙사 로비마다 놔두었더니, 사감은 기숙사 감시 카메라(당시에 지역 인권 단체가 학교에 CCTV가 너무 많아서 공식 비판까지 했었다)를 열심히 돌려 보며 내가 한 일임을 알아내 ‘지시 불이행’이라는 기괴한 항목으로 벌점을 줬다. 대한민국의 흔한 고등학교 기숙사 풍경이었다.
그러던 중, 2학년에서 3학년이 되는 경계에서 ‘아 이제 우리가 고3인가’ 같은 소리를 주고받고 있을 무렵, 학교가 돌연 본래 4인 1실이던 기숙사를 6인 1실로 바꾼다는 결정을 내렸다. 기숙사가 필요한 타지 신입생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았고, 새로 짓고 있는 기숙사는 아직 완공이 안 되었다는 이유였다. 이층 침대 두 개와 책걸상 네 개, 옷장 겸 사물함 네 개가 꽉 차 있던 기숙사 방을 6인 1실로 만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였다. 학교의 계획은 책걸상은 아예 빼 버리고, 이층 침대만 세 개를 넣겠다는 것이었다.
기숙사생들로서는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공부에 큰 관심이 없는 학생들은 방이 좁아지고 수납공간도 부족해지고 화장실 이용 등도 불편해진다는 점에 불만을 느꼈고, 공부를 더 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은 기숙사 방에서는 공부를 할 수 없다는 점을 싫어했다. 학생들 사이에 오가던 여러 이야기를 무마하기 위해서였을까? 학교가 기숙사 운영의 변화에 대해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 자리를 무엇이었다고 해야 적절할까? 설명회? 공청회? 여하간 매우 교육적인 자리였음은 틀림없다. 정부의 공청회 같은 자리가 대개 이미 결론은 정해 놓은 상태에서 구색을 갖추고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서 열리는 것이며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똑똑히 가르쳐 주었으니 말이다. 압권으로 기억에 남은 장면이 있다. 기숙사생들의 학년 대표를 맡은 학생이 “우리는 생존하러 기숙사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생활하러 들어온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 그저 잠만 자고 가는 공간으로 기숙사가 바뀌는 것에 대한 항변이었다. 나는 ‘제법 멋들어지게 말을 하는걸’ 하고 속으로 조금 감탄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교장의 답변은 짧았다.
“○○이, 너, 지켜보고 있어. 똑바로 해.”
세세한 부분은 다를 수 있지만, 교장이 반말로 대략 이런 내용의 말을 한 것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 얼마나 무례하고 권위주의적인 답변이며, 인신공격이란 말인가.
그날 내가 배운 것들이 있다. 하나. 합리적인 의견 제시나 토론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교과서의 가르침은 헛소리다. 행정적 권한에다가 ‘어른’이고 ‘교사’라는 사회적 권력까지 가진 사람은 권한도 권력도 없는 어린 학생들의 의견 따위는 얼마든지 묵살할 수 있다. 심지어 공식 석상에서 무례와 인신공격을 저질러도 제재당하지 않는다. 이렇게 불공평한 장에서 무슨 토론과 논의가 되겠는가.
둘. 저들은 우리의 ‘생활’,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저 ‘사고 없이 잘 살아 있고 공부나 열심히 하면 된다’는 식이다. ‘이 좋은 학교에 와서 기숙사에 들어와 사는 것을 감사한 줄 알아라’ 같은 생각을 하는 듯할 때도 있다. 이 두 가지 배움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계속 유효했다.
살아남는 것, 생존이 숙제인 세상이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먹고살 만큼만 벌고 더 욕심내지 말고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지금은 나를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이 ‘먹고살 만큼 벌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함을 안다. 최저임금은 겨우 목숨을 이어 갈 정도고, 정부가 책정하는 최저생계비로는 생활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복지가 과잉이니, 실업 급여를 너무 쉽게 받느니 하는 소리를 한다.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는 관심이 없고, 그저 살아서 일하고 애만 낳으면 된다는 취급 같다. 항변을 했다가 북한이나 다른 어디와 비교하면서 이 좋은 나라에 생존해 있는 것을 감사한 줄 알라는 말이나 안 들으면 다행이다.
그리고 이제 안전도 생존의 문제로만 대두되고 있다. 최근에는 신종 전염병이니 유독 물질이니 방사능 물질이니 미세 먼지니 하는 이야기를 안 들어 본 날이 더 적다. 세월호 참사는 사고의 위험이 실감 나는 현실로 바짝 다가와 있음을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새겨 넣었다. 그리고 안전을 이유로 무언가를 포기하라는 윽박지르기가 이어진다. 일단 살아 있어야 그다음에 자유고 평등이고 행복이고 존엄이고 있을 수 있다는, 선뜻 반박하기 어려운 논리다. 테러방지법, 감시 카메라(이른바 CCTV)들, 위치 추적, 많은 감시와 억압이 생존이 먼저라면서 밀고 들어온다.
과거,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인권 관련 행사에서 ‘인권이 중요한가, 생명을 잃었는데 인권이 무슨 소용인가’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분의 심정을 헤아려 보려고 하지만, 나는 동의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로 생각한다. 인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못했기 때문에 생명을 잃은 것이라고. 이때 ‘인권’이란 생명권이나 안전할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고, 더 넓은 의미에서 우리 사회가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 사회를 함께 꾸려 나갈 시민적 정치적 권리와 위험을 일방적으로 감수하지 않아도 될 평등할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이 단지 살아 있기만 한 존재로 취급받을 때 생존조차도 위협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생존보다도 오히려 생활이 더 먼저다.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어야 생존도 지속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다. 생존이 아닌 생활을 외친 그때 그 동급생의 지적은 적절했으며, 교장은 거기에 대해 응답해야 마땅했다. 2016년 <테러방지법> 논란 때 온라인에서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이런 말이 떠돌았다. “일시적인 안전을 얻기 위해 본질적인 자유를 포기하는 사람들은, 자유와 안전 둘 다 가질 만하지 못하다.”
(비록 기숙사 후배들에 대한 ‘군기 잡기’ 등 문제로 충돌한 적도 있고 해서 별로 좋게 보지는 않지만) 그때 기숙사 학생 대표를 맡았던 이에게 약간의 경의를 표하며, 그가 했지만 부당하게 묵살당했던 말을 이렇게 바꿔 보고 싶다. “우리는 인간다운 생활을 지켜야 합니다.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 2016년 〈워커스〉에 썼던 글을 다듬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