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교육 대상으로 간주하는 정치/선거교육 논의의 문제점
2022년 2월, 청소년 참정권이 확대된 와중에 학교와 교사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하는 주제의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렸습니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의 민서연 활동가도 토론자로 참석하셔서, 저도 온라인 중계를 챙겨 보았습니다. 대다수 청소년이 긴 시간 생활하는 공간이자 청소년의 삶의 질과 경험을 크게 결정하는 기관이 학교이니, 학교와 교육이 청소년의 참정권을 잘 실현할 수 있도록 변화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런 논의를 하는 자리가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하고 또 실제 정책으로도 연결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전부터 이런 주제로 논의를 할 때면 거슬리는 점이 몇 가지 있는데요. 이날 토론회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여러 발언들 속에서 반복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바로 '청소년들이 선거권도 가지고 정치활동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정치교육이 필요해졌다'라는 전제입니다. 마치 청소년은 미성숙하므로 교육 없이 제대로 정치를 할 수 없다는 듯이 말이지요.
다들 아시다시피 사람은 스무 살(만 19세)의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자연스레 정치적으로 성숙해지거나 하지 않습니다. 만 19세는 정치교육 없이도 할 수 있는 정치 참여를, 만 18세 이하는 정치교육을 이수해야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니 만 18세가 선거권/피선거권 등을 갖게 되었다고 해서, 또 만 16세부터 정당 가입이 제한적으로 가능해졌다 해서 갑자기 정치교육의 필요성이 생긴 것은 아닙니다. 만 18세 선거권이 되고 나서 청소년들에게 정치교육이 필요해졌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럼 만 19세 선거권일 적에는 19세나 20세즈음에 정치교육을 받았는지 의문이 듭니다. 혹시 저 모르게 다들 만 19세즈음에 다 같이 어디 가서 전 국민 정치교육 같은 거라도 했나요?
정치교육 또는 민주시민교육은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과 무관하게 민주주의 사회의 공교육이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역할입니다. 또, 그 목적은 '정치적으로 미성숙한' 존재들을 성숙한 존재들로 바꿔놓기 위해서는 아닐 듯합니다. 청소년 참정권 확대를 계기 삼아 토론회 등 논의가 활성화된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마치 '어리고 모자란 청소년에게는 교육이 필요해서'라는 식으로 생각되어선 곤란할 것입니다. 비슷하게 청소년 참정권 확대의 조건으로 정치교육이 잘되면 참정권을 보장해도 된다는 식의 언변도 자주 접하게 되는데, 교육은 인권 보장의 조건이 아닙니다.
두 번째는 교사의 참정권(정치기본권, 정치적 권리)이, 학생들에게 정치교육을 하기 위해서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경우입니다. 그날 토론회에서는 대충 "교사가 정치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해서 정치적 경험이 없는데 어떻게 정치를 가르치겠는가?"란 말도 나왔고, "고1 학생은 정당에 가입할 수 있는데 학생에게 정치를 가르치는 교사는 정당에 가입할 수 없다. 말이 안 된다." 같은 말도 나왔습니다. 도대체 왜 가르칠 수 없고, 왜 말이 안 되나요?
교사의 정치적 권리는 보장되어야 합니다. 정당에도 가입할 수 있어야 하고, 직무와 무관하다면 선거운동도 할 수 있어야 하지요. 이는 국제 인권 기준이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이 한국의 비민주적 반인권적 요소이지요. 그런데 그 이유가 학생에게 정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그저 교사도 인간이고 사회구성원이고 주권자이기 때문입니다. 청소년 참정권과 교사의 참정권이 연결되어 있는 점은, 초·중·고와 어린이·청소년의 삶을 정치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는 부당한 요구가 교사의 참정권을 억누르는 근거로 쓰여왔단 것입니다. 청소년 참정권이 보장받게 되면, 교사의 참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주요 근거 중 하나가 약화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정치 활동을 하는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교사에게도 정치적 권리가 필요하다는 식의 주장은 이상합니다. 그 말은 교사가 학생보다 뭐든 더 경험해보고 더 잘 알아야지만 교육 활동에서 교사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굳이 "무지한 스승",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자크 랑시에르) 같은 교육관을 들지 않더라도, 이는 경험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틀린 말입니다. 정치교육에 참여할 교사들은 좋은 교육활동을 위해 모두 당적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정치활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얼마나 이상하게 들릴까요. 정치교육·민주시민교육이 무슨 정당활동, 선거운동의 구체적 경험담을 나누는 것이 주가 되지도 않을 테고요.
'고등학생도 정당에 가입할 수 있는데 왜 교사는…' 같은 말은 더 부적절합니다. 의도가 어떻든 그게 꼭 (미성숙하고 교육 대상인) 학생은 권리를 가지는데 (성숙하고 교육 주체인) 교사는 권리를 못 가지는 것은 이상하다는 주장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교사가 언제나 학생보다 더 크거나 같은 권리를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식이면 초등·중학교 교사들에겐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요?
토론회가 시작되기 전엔, 그간 정치교육·민주시민교육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청소년의 시민적·정치적 권리도 존중하지 않던 학교의 상황 속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토론하는 자리가 되길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토론회를 마치고 나니, 우리가 청소년과 교육, 학생과 교사의 관계 등에 관해 여전히 이야기할 거리들을 많이 남겨 놓고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가장 먼저 우리 사회와 학교에 정치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청소년들이 선거법을 위반하거나 미성숙한 투표를 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것이 아니란 점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정치교육이나 민주시민교육은 시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잘 행사하는 걸 돕기 위해서, 우리 사회에서 좋은 정치와 참여 방식 등에 관해 함께 이야기해볼 기회로서 필요합니다. 또한 정치교육을 위한 교육과정과 교재를 만들고 시행하고 참여하고 고쳐가는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 사회의 주권자로서 우리가 공유할 더 나은 정치 문화와 윤리를 형성해나갈 밑바탕을 마련하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이런 교육은 나이에 상관없이 계속해서 여러 곳에서 이루어지면 더 좋겠습니다. 교사의 정치적 권리 역시 학생보다 정치를 더 잘 알아야 해서가 아니라, 부당하게 권리를 빼앗겨선 안 되기 때문에 보장되어야 합니다. 청소년의 참정권이 무슨 더 '참신한 정치를 만들려고', '민주주의를 잘 가르치려고' 보장되어야 하는 게 아니듯이 말이죠.
※ 2022년 3월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소식지 〈뚝딱 지음〉에 쓴 글을 다듬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