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줄도 모르고 버텼다
1절. 감정이 없다
아무 느낌도 없었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분명 있었는데
나는 그냥 아무렇지 않았다.
누군가의 축하에도
“아, 고마워”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왔지만
그 말에는 온도가 없었다.
기계처럼, 의무처럼,
‘이때는 이렇게 반응해야 한다’는 공식에 따라
표정과 말투만 흘러나왔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고,
웃음은 억지였고,
말은 텅 비어 있었다.
내가 사라진 줄은 몰랐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아침부터 저녁까지
단 하나의 감정도 기억나지 않는 하루를 마주했다.
밥을 먹었고, 사람을 만났고, 할 일을 해냈지만
그 하루 안에 나는 없었다.
내가 살아 있는 건가,
그냥 움직이고 있는 건가.
몸은 작동하는데,
마음은 꺼져 있었다.
웃는 법을 알았고,
인사하는 법도 기억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리를 비운 듯했다.
슬퍼야 할 일에도
그저 “아, 그렇구나” 하고 넘기고,
기뻐야 할 일 앞에서도
“응, 좋아”라는 말만 던졌다.
속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냥 말이 말을 하는 느낌이었다.
예전엔 이 정도면 울었을 텐데.
이런 소식엔 가슴이 뜨거워졌었는데.
지금은 그냥… 무덤덤했다.
이게 ‘괜찮아진’ 건지,
아니면 정말 ‘고장 난’ 건지
그 판단조차 흐릿했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나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건 피로가 아니었다.
그건 마비였다.
2절. 감정의 정지 — 버틴다는 말의 실체
“그래도 잘 버텼다, 대단하다.”
사람들은 그렇게 말해주었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래, 내가 견뎠지. 무너지지 않았잖아.’
그런데 묘했다.
칭찬을 들어도, 스스로에게 뿌듯하지 않았다.
그 말은 따뜻했지만,
내 안에는 아무 감흥도 없었다.
그제야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나는 정말 ‘버틴’ 걸까?
아니면 무뎌진 걸까?
버틴다는 건
슬픔을 안고서도 일어서는 일이어야 한다.
분노를 다스리며 한 발 내딛는 일이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감정을 느끼지도 못한 채
그저 하루하루를 밀어냈다.
눈물이 나야 할 자리에서
‘괜찮아’만 반복했고,
답답한 상황에서도
‘원래 다 이런 거지’라며 넘겼다.
사람들은 ‘강하다’고 말했지만
나는 알았다.
이건 강함이 아니라, 감각의 정지라는 것을.
감정을 마비시키면,
상처도 느껴지지 않는다.
처음엔 그게 편안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문제’를 알아채지 못하는 상태에 빠졌다.
예전엔 어떤 말에 상처받고,
어떤 상황에 무너졌는지 알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냥 무덤덤하게 넘긴다.
그게 성숙한 것 같았지만
사실은 문제를 문제로 인식할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감정이 멈추면,
고장이 났다는 신호도 사라진다.
그러면 고장 난 줄도 모른 채,
더 오래, 더 깊게 망가진다.
나는 살아 있는 줄 알았지만
사실은 멈춰 있는 상태였다.
‘버틴다’는 말로 포장했을 뿐,
실은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도망친 것이었다.
3절. 회고 — 언제부터 감정이 끊겼을까?
생각해 보면,
나는 꽤 오래전부터
감정을 느끼지 않는 훈련을 해왔던 것 같다.
처음엔 작고 사소한 상황이었다.
피곤해도 피곤하단 말을 하지 않았고,
억울해도 웃는 얼굴로 넘겼고,
마음이 불편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그게 ‘배려’고, ‘사회성’이고, ‘성숙함’인 줄 알았다.
감정을 조절하는 게 어른이 되는 일이라 배웠고,
참는 걸 ‘강함’으로 착각했다.
하지만 그건 감정을 다스리는 게 아니라,
감정을 덮는 일이었다.
“그런 말 하면 분위기 깨잖아.”
“지금 이 정도로 힘들다고 하면, 나약해 보이겠지.”
“조용히 지나가면 괜찮아질 거야.”
그렇게 나는
내 감정을 자꾸 ‘나중으로’ 미뤘다.
오늘도, 이번 주도, 올해도.
어느 날,
거울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나는 지금,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 거지?”
그 질문에
한참 동안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아, 내가 이 질문을 잊고 살았구나’ 싶었다.
슬픈 일이 있어도 금세 잊으려 했고,
화나는 일이 생겨도 ‘그럴 수도 있지’라며 넘겼다.
감정의 파도 위에 몸을 맡기는 대신,
나는 아예 그 바다를 등지고 살아왔다.
어느 순간부터 감정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숨기는 것이 되었다.
무표정은 평온으로,
침묵은 내공으로,
감정 없는 태도는 성숙으로
스스로를 포장하며 살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건 ‘포장’이 아니라 ‘단절’이었다.
감정과 나 사이에 생긴 이 무언의 벽은
시간이 갈수록 더 두껍고, 차가워졌다.
그리고 지금,
나는 벽 너머의 나 자신과 연결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이었지만,
기능적으로는 정지된 상태였다.
그리고 그걸 모르고 버틴 날들이
생각보다 길었다는 게,
무섭고 아프다.
4절. 분석 — 감정 없는 삶의 위험성
감정이 없으면
삶은 조용해진다.
갈등도 줄고, 상처도 줄고, 고민도 줄어든다.
표면적으로는
마음이 평온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평온이 아니라
정지다.
온도 없는 평정,
움직임 없는 고요.
사실은 멈춰 있는 상태인데,
그걸 안정이라고 착각하는 순간,
삶은 조용히, 그러나 깊이 망가지기 시작한다.
감정이 없으면
의사결정은 이성에만 의존하게 된다.
그럴듯한 이유로 선택하지만,
그 선택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도 감정이 흐르지 않고,
기쁜 일도 그냥 ‘정보’로 처리된다.
슬픔은 숙제로 넘기고,
기쁨은 과제로 소비된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느낌 없는 분절된 사건들의 나열이 된다.
그 안에 ‘나’는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서운 건,
감정이 없으면
회복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상처를 받아도
그 감정을 느끼고,
흐르게 하고,
안아줘야
비로소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감정이 끊긴 사람은
상처를 받아도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참고 넘기며
그 고통을 몸이나 관계에 이월한다.
그래서 감정이 사라진 삶은
늦게 망가지지만, 깊게 망가진다.
아무 일 없는 듯 보이다가
어느 날 문득, 모든 게 무너져 있다.
나는 그걸 안다.
겉으론 문제없이 살아왔지만,
속은 조금씩 썩어갔다.
처음엔 피곤했고,
그다음은 무기력했고,
그다음엔 무감각했다.
그리고 결국,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감정이 고장 난다는 건
울거나 소리치는 상태가 아니다.
그건 아직 감정이 살아 있는 증거다.
진짜 고장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때 찾아온다.
조용하게 무너지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멀쩡해 보였지만,
사실은 무너지고 있었다.
5절. 전환 — 감정을 다시 켜는 연습
처음엔 ‘감정을 느껴야 한다’는 말조차 부담스러웠다.
억지로 울어야 할 것 같고,
억지로 웃어야 할 것 같고,
‘무언가 느껴야만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압박도 생겼다.
그런데 어느 날,
‘감정을 느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조금은 알게 되었다.
감정은 억지로 끌어올리는 게 아니었다.
그저, 조용히 지켜보는 것.
마비된 듯한 마음 안에서도
아주 미세하게 남아 있는 어떤 움직임이 있었다.
“나는 지금 아무 느낌도 없어.”
이 말이 처음엔 공허했지만,
그걸 적어보는 순간,
‘정말 아무것도 없는가?’라는 질문이 따라왔다.
가만히 숨을 고르고
내 안에 무언가 움직이길 기다렸다.
느낌 없는 이 하루를 바라보며
내 안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감정은,
‘서운함’이었다.
내가 나에게 너무 무심했다는 서운함.
괜찮은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느라
내 마음 한 귀퉁이에 쌓여 있던 감정의 침전물.
그걸 보고 나서야,
나는 조금씩 알게 되었다.
감정은 격렬하지 않아도 된다.
때로는 느낌 없는 상태 자체가 하나의 감정일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매일,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그 순간을
그대로 적는다.
무기력, 무감정, 공허함…
그 이름 없는 감정들에
작게 이름을 붙여본다.
그리고 아주 작게,
그 안에 스며 있는 미세한 울림을 관찰한다.
눈물은 나지 않지만
마음이 살짝 떨리는 순간,
그걸 느끼고 알아차리는 것.
그게 감정을 다시 켜는 연습이었다.
감정은 다시 돌아온다.
억지로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기다릴 때
서서히, 스스로 깨어난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감정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느끼지 않기로 한 마음,
기억 속에 눌려 있던 감정이
아직 그 자리에, 조용히 숨 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점검 질문
– 나는 오늘 어떤 감정을 느끼지 못했는가?
– 그 감정은 없었던 걸까, 느끼지 않기로 한 걸까?
– 내 감정이 멈춘 자리에서, 나는 무엇을 대신 채우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