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나를 고치고 있다 14화

감정이 고장 난 다는 건 이런 거였다

by 공인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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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감정이 망가진다는 말,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다


“감정이 고장 났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솔직히 웃음이 나왔다.
기계가 아니라 사람인데, 감정이 어떻게 고장이 나지?
그때까진 감정이란 ‘있거나 없거나’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회사에서 팀이 큰 성과를 냈다.
다들 환호성을 지르며 축하 인사를 나누었는데,
나는 이상하게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좋겠다, 축하해요.”
입에서는 자동으로 말이 나왔지만,
속은 텅 빈 기계음처럼 울렸다.


며칠 후,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안타깝다”는 말이 나왔지만,
그때도 내 안에서는 아무런 울림이 없었다.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다.
“이상하다, 나… 왜 아무렇지도 않지?”


누군가 슬플 때, 나는 슬퍼야 했다.
누군가 웃을 때, 나도 웃어야 했다.
그게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 반응이라고 믿어왔으니까.
그런데 그날, 내 감정은 마치 전선이 끊긴 기계처럼 작동하지 않았다.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감정이 사라진 게 아니라,
감정을 느끼는 ‘나’가 어딘가에서 꺼져버린 느낌이었다.


그제야 ‘감정이 망가진다’는 말이 이해됐다.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감정이 나에게 닿지 못하고 있었다.


무언가 깊은 곳에서 느껴지고 있었겠지만,
그 신호는 나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전선이 끊긴 라디오처럼,
감정은 여전히 송신 중이었지만
나는 그 주파수를 잡지 못한 채,
소음만 듣고 있었다.


그 순간의 나는, 살아 있으나 살아 있지 않았다.
감정이 망가지면, 삶도 함께 멈춘다.
왜냐하면 감정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세상과 나를 연결하는 전류였기 때문이다.



2절. 고장 난 감정의 증상들


감정이 고장 났을 때 나타나는 징후는 생각보다 섬세했다.
처음엔 단지 피곤하거나, 예민하거나, 우울한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피로가 아니라 ‘감정의 신호 체계’가 끊겨버린 증상이었다.


하루를 시작해도, 아무 감흥이 없었다.
눈을 뜨면 “오늘은 뭐 하지?”가 아니라
“오늘도 해야 하네.”로 시작됐다.
커피 맛도, 햇빛도, 사람의 목소리도
모두 ‘정보’로만 들어왔다.


“좋아.” “싫어.” “괜찮아.”
이런 말들은 여전히 입으로는 나왔지만
내 안에서는 아무런 진동이 없었다.


어느 날은,
내가 누군가에게 미소를 짓고 있다는 걸 거울로 보고서야 알았다.
표정은 웃고 있는데, 눈동자는 멈춰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표정’을 짓고 있을 뿐,
감정을 느끼고 있지는 않았다.


감정이 고장 난다는 건,
몸이 아니라 마음이 딜레이 되는 것이다.
상황은 바뀌고 있는데, 내 감정은 반응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웃을 때 나는 타이밍을 놓친다.
누군가 울 때, 나는 왜 그런지 머리로만 이해한다.


이상했다.
슬픈 장면을 봐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오래 기다리던 일이 이뤄져도, 가슴이 뛰지 않았다.
기쁨이란 게, 슬픔이란 게, 다 어디로 간 걸까?


그때부터 ‘무덤덤’이라는 단어가 내 일상이 되었다.
“괜찮아요.” “다 그런 거죠.”
습관처럼 나오는 말들이
점점 나를 감정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갔다.


그제야 알았다.
감정이 없어진 게 아니라,
감정과 접속이 끊긴 상태라는 걸.


내 안엔 여전히 감정이 있었지만
그 회로가 차단되어 있었다.
마치 와이파이가 끊긴 스마트폰처럼,
감정이 존재하더라도 신호를 주고받지 못하는 상태였다.


감정이 고장 나면
사람은 반응하지 않는다.
그리고 반응하지 않는 동안,
삶의 의미도 함께 멀어진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상태’는
결국 ‘살아 있지만, 살아 있는 느낌이 사라진 상태’였다.



3절. 감정을 잘 다루려다 오히려 감정이 고장 났다


나는 감정을 망가뜨리려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더 잘 다루고 싶었다.
누구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고,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고,
늘 조심하고, 눌러왔을 뿐이었다.


어릴 때부터 배워왔다.
“화를 내면 이기적인 거야.”
“울면 약해 보인다.”
“감정적으로 굴지 마.”


그 말들은 훈육처럼,
내 마음의 매뉴얼이 되었다.
그래서 화가 나도 참았고,
슬퍼도 괜찮은 척했다.
그게 성숙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그건 ‘감정을 다스린 것’이 아니라
‘감정을 봉인한 것’이었다.


나는 내 감정을 꾹 눌러
보이지 않게 포장했다.
남들이 불편해할까 봐,
내 감정을 내색하는 걸 미숙함으로 여겼다.
그러다 보니
감정은 점점 줄어들었고,
마침내 멈췄다.


회식 자리에서 누가 무례한 말을 해도
그저 “괜찮아요”라고 웃었다.
가족에게 서운한 말을 들어도
“이해해야지”라고 넘겼다.
연인과 다툰 뒤에도
“감정적으로 굴면 더 멀어질 거야”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렇게 나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게 아니라
감정을 느끼는 법 자체를 잃어버렸다.


감정을 억누르며 산다는 건
매일 내 마음을 검열하는 일이다.
“이건 과하니까 자제해야 해.”
“이건 말하면 상대가 불편할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고,
억누르고, 합리화하다 보면
결국 감정의 원문이 사라진다.


나는 늘 감정을 ‘정리된 말’로만 표현했다.
“조금 힘들어요.”
“괜찮아요.”
“그냥 그래요.”
하지만 그 ‘조금’과 ‘그냥’ 뒤에는
표현되지 못한 감정의 잔해들이 쌓여 있었다.


결국 나는 알게 됐다.
감정을 잘 다루려다 오히려 망가졌다는 걸.
감정을 다루려면
먼저 감정을 살아 있게 둬야 했는데,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죽이며
‘침착한 사람’이 되었다.


그제야 이해됐다.
감정을 다스린다는 건
참거나, 눌러두는 게 아니라
그 감정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그걸 몰랐던 나는
감정을 없애야 성숙하다고 믿었고,
그 믿음이 나를 무감정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감정을 없앤 대가로 나는 평화를 얻었지만,
그 평화는 ‘죽은 호수의 고요함’이었다.
파문이 없는 대신, 생명도 없었다.



4절. 감정의 고장이란 ‘연결 불능’ 상태


감정이 고장 났다는 건,
감정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건 단지 연결이 끊긴 상태,
즉 ‘나’라는 존재와 ‘감정’이라는 신호가 서로 닿지 않는 상태였다.


예전엔 이렇게 생각했다.
“화가 나면 참으면 되고,
슬프면 잊으면 돼.”
그게 문제 해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감정은 ‘제거’하는 게 아니라 ‘신호’다.
감정이 일어나면,
그건 나의 시스템 어딘가에서
**“지금 이건 아니다.”**라는 경고음이 울린다는 뜻이었다.


그 신호를 무시할수록,
내 감정 회로는 하나씩 끊어졌다.
결국 나의 마음은 살아 있는데
나라는 사용자에게 접속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마치 스마트폰이 멀쩡히 켜져 있는데
네트워크가 끊겨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나는 여전히 움직이고, 말하고, 웃었지만
그 모든 건 오프라인 상태였다.
세상과도, 나 자신과도.


사람들이 “요즘 어때?”라고 물으면
나는 늘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그래요.”
그 말엔 사실 수많은 감정들이 묻혀 있었다.
답답함, 외로움, 무기력, 억울함…
하지만 그 감정들은
내 언어로 번역될 통로를 잃어버렸다.


감정이란 건, 사실 하나의 언어다.
그 언어가 고장 나면
삶의 모든 대화가 멈춘다.
세상과 대화하지 못하고,
사람과 소통하지 못하고,
결국 나 자신에게조차 말을 걸 수 없게 된다.


“나, 괜찮아?”
이 질문조차 들리지 않는다.
감정이 끊긴 사람은
스스로의 신호를 해석하지 못한다.
그래서 더 이상 ‘나’를 읽지 못한다.


나는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감정이 고장 났을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건,
관계가 아니라 존재감이라는 걸.
타인의 눈에는 여전히 멀쩡해 보이지만
나는 이미 내 안에서 ‘오프라인 사용자’가 되어 있었다.


감정의 고장이란 결국 자기-소통의 실패였다.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건
나와 나 사이의 번역기가 멈췄다는 뜻이다.
느낄 수는 있지만, 이해할 수 없고,
이해는 되지만, 표현할 수 없는 그 막막한 단절.


그게 바로 감정의 고장이다.


감정이란 건, 삶의 전선이다.
그 전선이 끊기면,
불빛이 꺼지고, 온기가 식고,
모든 소리가 멀어진다.
나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살아 있다’는 느낌은 점점 멀어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걸 깨닫는 순간이,
감정 복구의 첫 신호였다.


‘아, 내가 지금 끊어져 있구나.’
그 자각 하나가
감정의 전류를 다시 통하게 하는 첫 불꽃이었다.



5절. 감정 복구 1단계: ‘반응 기록하기’


감정이 고장 났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수리’가 아니라 기록이다.
망가진 감정을 고치려 들면 더 깊이 금이 간다.
고장이란, 억지로 작동시키려 할수록 더 망가지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고치지 않았다.
대신, 관찰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감정 일기’라는 이름조차 거창했다.
그냥 하루에 한 번,
내가 가장 작게 반응했던 순간을 적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었다.


“커피가 식어 있었다. 괜히 짜증 났다.”

“택배가 늦었다. 기대했던 만큼 실망했다.”

“길을 걷다 들은 노랫말이 좋았다.”


그저, 그때의 반응만 적는다.
이유도, 해석도, 평가도 붙이지 않는다.
단지 ‘이때 나는 이렇게 느꼈다’는 기록만 남긴다.


놀랍게도, 그 사소한 기록들이
조용히 나를 다시 ‘감정의 회로’로 연결하기 시작했다.


“아, 내가 아직 짜증을 느낄 수 있구나.”
“내가 실망할 줄 아는 사람이었지.”
“좋다고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아직 남아 있었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감정들이
다시 하나둘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건 감정이 돌아온 게 아니라,
나와 감정 사이의 선이 다시 이어진 것이었다.


감정 복구의 첫 단계는
거창한 상담도, 명상도 아니었다.
그저 하루에 한 번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였던 감정’을 발견하는 일.
그 한 줄의 기록이,
감정의 심폐소생술이었다.


어느 날은 한참 동안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지만
문득 창밖의 노을을 보며,
‘예쁘다’는 말이 마음속에 스쳤다.
그때 깨달았다.
감정이 돌아오는 건 폭발처럼 오지 않는다.
조용히, 거의 들리지 않는 반응의 떨림으로 시작된다.


감정을 기록한다는 건
감정을 분석하거나 통제하기 위한 게 아니다.
그건 단지,
“나는 여전히 느낀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행위다.
그걸 인식하는 순간,
감정은 다시 살아난다.


고장 난 감정을 복구한다는 건,
감정의 전류를 억지로 흘려보내는 일이 아니라
전선을 손끝으로 천천히 더듬어
어디서 끊겼는지를 찾아내는 일이다.


그 시작은, 거창한 치유가 아니라
한 줄의 기록이다.
한 번의 반응이다.
한 번의 **“느꼈다”**는 선언이다.



6절. 오늘의 점검 질문


감정이 고장 났다는 건,
내가 더 이상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라,
내가 느낌을 해석할 줄 모르게 된 상태였다.
감정은 늘 내 안에 있었고,
단지 내가 그 언어를 잊어버렸을 뿐이다.


이제, 그 언어를 다시 배우는 중이다.
말처럼, 감정도 연습해야 한다.
느낌을 표현하는 단어들을 조금씩 찾아내고,
그 단어로 나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오늘의 점검 질문


– 나는 오늘, 어떤 감정에도 반응하지 않았는가?
– 감정을 잘 다루려다 오히려 감정과 멀어진 건 아닌가?
– 지금 내 감정은, 나와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가?


감정을 잃었다는 건 실패가 아니라,
다시 나를 배우라는 신호였다.
그 신호를 들을 수 있다면
이미 감정은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감정이란 건,
항상 우리 곁에 있었다.
단지 너무 조용해서,
너무 익숙해서,
우리가 그 존재를 잊고 살았을 뿐이다.


감정을 다시 느끼는 일은
세상을 다시 만나는 일과 같다.
색이 돌아오고, 소리가 살아나고,
말의 온도가 되살아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심스럽게 나에게 묻는다.


“지금, 나는 무엇을 느끼고 있지?”


그 질문 하나가
감정의 전류를 다시 흐르게 한다.


“감정이 고장 난 게 아니라,
 나는 단지 그 신호를 오래 듣지 않았을 뿐이다.”


그걸 알아차리는 순간,
감정은 다시 나를 향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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