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나를 고치고 있다 13화

무기력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만든다

by 공인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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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들


아침이 오면 눈은 뜨는데, 하루가 켜지지 않는다.
알람을 끄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떠올리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손끝이 먼저 무거워지고, 어깨가 뒤따라 내려앉는다.
말을 해야 할 때 입은 열리지만, 문장은 금방 바닥난다.
숨은 쉬고 있는데, 살고 있다는 느낌은 나에게 닿지 않는다.


문서를 열어도 커서만 깜빡이고,
메시지를 읽어도 답장은 끝내 쓰이지 않는다.
커피의 온도와 상관없이 마음은 식어 있고,
창밖의 빛은 분명한데 내 안의 스위치는 꺼져 있다.
“그냥 가만히 있고 싶다.”
이 문장이 하루를, 그리고 며칠을, 때로는 몇 주를 지나
나의 표어처럼 가슴팍에 붙어 있었다.


할 일을 모르는 게 아니다.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유가 없었다.
움직여서 어디까지 갈지,
오늘을 지나 내일이 무엇이 될지,
그 가능성의 선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멈춘 게 아니라, 닿지 않았다.


사소한 부탁에도 마음이 쉽게 지치고,
좋아하던 음악은 배경이 되었고,
웃음도, 설렘도, 기대도
잠깐 스쳐가다 금세 꺼졌다.
무기력은 “아무 감정도 없다”가 아니라
감정이 나에게 닿지 않는 상태,
몸과 마음 사이의 회선이 끊어진 듯한 공백이었다.


나는 그 공백 속에서
게으름이라는 단어를 수없이 자신에게 붙였지만,
어딘가에서 기척 없이 흘러나오던 진실은 이것이었다.
지금의 나는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움직일 이유와 연결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
오늘도 커튼을 조금 더 열어본다.
빛이 들어오면, 언젠가 이유도 따라 들어올까 하는 마음으로.



2절. 나를 질책하다가 더 무기력해졌다


무기력은 나를 게으르게만 만들지 않았다.
그 위에 덧붙여진 건, 끝없는 자기 질책이었다.


“너 왜 이렇게 나약하니?”
“다른 사람들은 다 해내는데, 넌 왜 못 해?”
“정신 좀 차려!”


나는 스스로에게 매일같이 채찍을 휘둘렀다.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죄책감,
다른 사람들 앞에 뒤처지는 불안감,
그리고 자기 자신을 향한 조롱이 겹겹이 쌓였다.


그럴수록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무기력은 노력으로 밀어내야 하는 감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억지로 일어나 앉아 책상에 붙들려 보기도 했고,
‘이 정도도 못 버티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스스로를 더 깊은 웅덩이에 밀어 넣었다.


결과는 뻔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몸,
한 줄도 채우지 못한 빈 노트,
그리고 “나는 역시 쓸모없다”는
더 단단해진 낙인뿐이었다.


무기력은 원래 가벼운 신호였을지 모른다.
“잠시 쉬어야 한다”, “지금은 에너지가 고갈되었다”는
삶의 작은 알림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신호를 게으름으로 번역했고,
곧바로 나 자신을 심판했다.


그렇게 무기력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나를 고립시키는 감옥이 되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나를 바라보며,
나는 다시 한번 나를 다그쳤다.


“왜 이러고 있냐고, 정신 차리라고.”


그 목소리가 커질수록,
나는 더 깊이 눌려 앉을 수밖에 없었다.
무기력은 결국 채찍으로 다스릴 수 없는 감정이라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3절. 무기력은 멈추는 게 아니라, ‘끊긴 것’이었다


돌아보면, 무기력은 단순히 움직이지 않음이 아니었다.
그건 뭔가가 내 안에서 뚝 끊어진 상태였다.


예전에는 좋아하던 것들이 있었다.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벅차올랐고,
책 한 권을 끝내면 세상이 조금 더 넓어진 것 같았다.
사람들과 함께 웃을 때는 그 시간이 삶의 증거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모든 것이 하나같이 무의미해졌다.
음악은 소음처럼 들렸고,
책은 눈앞에 펼쳐져 있어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람들과의 대화는 의무였고,
함께 있어도 더 외로웠다.


나는 게으른 게 아니었다.
그저 삶과 나 사이를 잇는 실이 끊어진 채로
허공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고 싶어도, 할 이유가 없었다.
움직일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움직여야 할 목적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무기력은 나를 멈추게 한 게 아니었다.
나를 움직이게 만들던 동기와 감정이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어쩌면 무기력은 내 잘못이 아니었다.
내가 게으르거나 부족한 게 아니라,
내 삶의 회로가 잠시 연결 불량을 일으킨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 단순한 사실을 깨닫기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스스로를 꾸짖으며 허비했는지 모른다.



4절. 무기력은 회복을 위한 ‘에너지 절약 모드’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무기력은 단순한 실패도, 게으름도 아니었다.
그건 내 마음과 몸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었다.


마치 오래 달리던 기계가 과열되면
자동으로 전원이 꺼져버리듯,
나 역시 계속된 긴장과 억눌린 감정으로
내 회로가 타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무기력은 내 안의 경보 시스템이자,
생존 본능이 내려주는 에너지 절약 모드였다.


이 상태를 예전에는 “망했다, 나약하다”라고 불렀지만,
다르게 보면 무기력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너는 지금, 잠시 꺼져 있어야 산다.”



이 말을 이해하자,
그동안 무기력 앞에서 쏟아내던 자책이
서서히 다른 얼굴을 띠기 시작했다.


나는 고장 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를 과부하에서 지켜내려는 존재였다.
그게 무기력의 진짜 의미였다.


그러니 무기력을 적으로 대하지 않아도 된다.
그건 나를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호하려는 감정의 방식이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상태는
세상과 단절된 증상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과 다시 연결되기 위한 준비 동작이었다.


무기력은 끝이 아니라,
복구의 전조였다.



5절. 무기력한 나와 연결을 회복하는 루틴


무기력을 ‘게으름’이라 규정해 다그치던 방식은 이제 내려놓기로 했다.
그건 효과가 없었고, 오히려 나를 더 깊은 무기력 속으로 밀어 넣었으니까.
대신, 나는 아주 작은 연결을 시도하기로 했다.


무기력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두드려 깨우는 것처럼 접근해야 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나는 억지로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대신 창문을 열고 햇빛이 방 안으로 들어오는 걸 확인했다.
“오늘의 햇빛은 따뜻했는가?”
이 질문 하나가 내가 여전히 세상과 이어져 있음을 알려줬다.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그중 가장 덜 힘든 것 하나만 골라해 보기로 했다.
예컨대 물 한 컵 마시기,
책상 위에 있던 종이 한 장 버리기,
이메일 제목만 훑어보기.
이런 소소한 행동들이 내 삶과의 연결을 조금씩 복구했다.


그리고 하루가 끝날 즈음,
나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오늘 내가 가장 하기 싫었던 건 무엇이었나?
 그리고 나는 왜 그걸 피하고 싶었을까?”



이 질문은 나를 질책하는 게 아니라,
무기력이 나에게 보내던 메시지를 해석하는 첫걸음이었다.


나는 이제 안다.
무기력에서 빠져나오는 건 거대한 결심이 아니라,
작고 사소한 연결의 루틴이다.


햇빛을 확인하고,
가장 쉬운 일을 하나 하고,
피하고 싶던 이유를 적는 것.


이 세 가지 루틴만으로도
나는 다시 삶과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무기력은 나를 끊어버리는 벽이 아니었다.
오히려 다시 연결될 수 있도록
잠시 쉬게 해주는 다리였다.



6절. 오늘의 점검 질문


무기력 속에서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서도 내 마음은 작은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읽어내는 순간,
무기력은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삶이 다시 나와 연결되길 기다리는 절전 상태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 중요한 건,
무기력을 어떻게 없애느냐가 아니라
그 안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다시 이어지느냐였다.


나는 오늘의 무기력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것을 하나의 질문으로 남긴다.


오늘의 점검 질문

나는 요즘, 무엇이 나를 가장 무기력하게 만드는가?

내 삶과 감정 사이에 어떤 연결이 끊겨 있는가?

오늘 하루, 나를 다시 연결할 수 있는 작고 사소한 일은 무엇이었는가?


무기력은 끝이 아니다.
다만, 다시 이어져야 할 연결선을 가리키는 표시일 뿐이다.
그 선을 찾는 건 오늘의 아주 작은 선택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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