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 이웃의 대륙 (닫힌 마음의 마을) #3

1장-2: 말하지 않는 사람들

by 공인멘토

가온은 마을 중심을 지나며 점점 더 이상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이곳 사람들은 살아 있으되, 감정을 숨긴 자들처럼 보였다. 아니, 숨긴 것이 아니라—지워버린 자들 같았다.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입을 다문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이 마을의 사람들은 ‘말을 하던 기억’ 자체를 놓아버린 듯했다. 그들의 표정에는 기쁨도, 분노도, 슬픔도 없었다. 오직 무표정한 평온, 혹은 훈련된 듯한 침묵만이 깃들어 있었다.

가온은 장터의 상인들을 지나쳤다. 한 여인이 낡은 천 위에 말린 약초를 조심스럽게 정리하고 있었고, 옆의 남자는 목재 바구니 안에 사과를 쌓고 있었다. 손님 하나가 다가오자, 남자는 손가락으로 ‘셋’을 표시했고, 손님은 말없이 동전 셋을 꺼내 바구니 옆에 내려놓았다.


가온은 잠시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조용히 중얼거렸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 순간, 여인이 아주 잠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눈빛은 놀람보다 두려움에 가까웠다. 그리고 곧,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손놀림에 집중하는 척했다.

아이는 종이비행기를 접고 있었다. 하얀 종이에 아주 세심한 주름을 만들고, 손끝으로 미세하게 균형을 맞추며 조용히, 조용히 놀고 있었다.


가온은 그 아이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거… 네가 만든 거야?”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 들은 척했을 수도 있다. 그저 손가락으로 비행기를 한 바퀴 빙 돌리더니, 멀리 던졌다.

비행기는 마을 광장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바로 그 순간, 가온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광장을 걷고 있는 이들 중 누구도, 아이의 행동에 반응하지 않았다.

마치 종이비행기란 개념 자체가 이 마을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모두가 그것을 '보지 못하는' 눈으로 지나쳤다.


그는 조용히 아이의 곁에 무릎을 굽히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넌… 이 마을이 원래 이랬다는 걸 기억하니?”

아이는 가온을 올려다보았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눈동자 속에 살짝 떨림이 있었다. 그건 공포가 아니었다. 오히려, 참아온 감정의 진동처럼 느껴졌다.

그때 아이의 어깨 너머로, 한 중년 여인이 다가왔다. 그녀는 가온을 외면한 채 아이의 손목을 붙잡더니, 말없이 아이를 데려가려 했다.


가온은 일어섰다. 그녀를 막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걸음에는 두려움이 묻어 있었다.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숨기려 하는 걸까.’

그는 다시 장터를 둘러보았다.


돌담 너머에서 어떤 이가 빨랫줄에 천을 널고 있었고, 다른 이는 정원에 나무를 다듬고 있었다. 모든 일상은 정상처럼 보였지만, 유리창처럼 투명한 표면 아래에 무언가를 숨긴 도시처럼 느껴졌다.

그는 자신이 말소된 영화의 세트장에 들어온 듯한 이질감을 느꼈다. 모든 소리는 사라지고, 사람들의 움직임은 ‘목소리를 내지 않는 인형’처럼 정형화되어 있었다.


가온은 문득 깨달았다. 이 마을의 사람들은 침묵을 택한 것이 아니라, 침묵에 길들여졌고, 그 안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운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묻지 않도록 스스로를 가둔 것이다.

그는 장터 구석의 벤치에 조심히 앉았다. 가만히 앉아 있으니 그제야 느껴지는 어떤 감각이 있었다.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그 침묵 너머엔 흐름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감시, 눈치로 익힌 금기, 입을 닫는 훈련…

이곳의 사람들은 모두 어떤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 단지 말하지 않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존재는, 분명히 이 마을 어딘가에 아직 살아 있다.


가온은 심호흡했다.

자신이 이 마을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그 존재도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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