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보정된 진실

by 공교

# S#1. 기술 연구소 암실 (밤)

차가운 정적만이 감도는 암실.

홍 과장의 얼굴이 모니터의 푸른 빛에 창백하게 비친다.

화면에는 최 대리가 가져온 해외 업체 센서의 파형이 흐르고 있다.

7년의 현장품질관리직, 3년의 품질 기획을 거쳐온 홍 과장의 눈은 본능적으로 이상 신호를 감지한다.

데이터가 너무 깨끗하다.

자율주행의 눈인 LiDAR는 외부 환경에 따라 반드시 노이즈가 발생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이 모듈은 마치 자로 잰 듯 완벽하다.

홍 과장은 로우 데이터(Raw Data)의 심부를 파고들었다.

"이건... 보정이 아니라 조작이잖아."

특정 거리 이상의 장애물을 인식할 때 발생하는 데이터 손실을 소프트웨어가 강제로 메꾸고 있었다.

겉보기엔 성능이 좋아 보이지만, 실제 도로 위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만나면 이 센서는 '장애물 없음'이라는 치명적인 오답을 내뱉을 게 뻔했다.


# S#2. 연구소 복도 (다음 날 아침)

밤을 새운 홍 과장이 보고서를 출력해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 박 차장이 앞을 막아선다.

"홍 과장, 어제 말한 그 모듈 검토 끝났지? 본부장님이 오늘 오전 중에 승인 올리래. 최 대리네 쪽에서도 이미 양산 준비 끝냈다고 연락 왔고."

"차장님, 이거 승인하면 안 됩니다. 데이터가 보정되어 있어요. 안개나 역광 상황에서 사고 날 확률이 너무 높습니다. 이건 기술이 아니라 도박입니다."

박 차장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는다. 그는 홍 과장을 구석으로 몰아넣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홍 과장, 자네 이제 과장 단 지 얼마 됐어? 한창 돈 들어갈 데 많을 때잖아. 최 대리 집안이랑 엮인 일이야. 이거 통과되면 자네 그 지긋지긋한 외벌이 처지 면하게 해줄 인센티브, 내가 책임지고 받아줄게.

왜 자꾸 가시밭길을 가려고 해? 자네 하나 눈 감으면 회사도 살고 자네 집도 살아."


# S#3. 사내 카페 (오후)

최 대리가 홍 과장 앞에 갓 구운 비싼 빵과 커피를 내려놓는다. 그는 여유롭게 웃으며 자신의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준다.

베트남 현지 공장의 가동 영상이다.

"홍 과장님, 이게 다 과장님 사인 한 번에 결정되는 거예요. 과장님이 고집 피우는 그 미세한 오차? 그거 길 위에서는 아무도 몰라요. 대신 과장님 계좌에 찍힐 숫자는 확실하죠. 제가 과장님 그 낡은 차 바꿀 수 있게 형님한테 말 잘 해놨습니다."

최 대리는 '형님'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었다. 자본과 권력이 얽힌 거대한 네트워크가 홍 과장을 조여오고 있었다. 홍 과장은 식어버린 커피를 내려다보았다.


# S#4. 집 거실 (밤)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거실 바닥에 지도를 펼쳐놓고 있다. 동남아시아 물류 거점을 체크하는 아내의 눈이 반짝인다.

"여보, 내가 이번에 샘플로 받은 한국산 부품들 있잖아. 이거 내가 직접 써보니까 제원표랑 너무 달라. 성능이 절반도 안 나오는데? 이런 걸 어떻게 믿고 팔아... 우리가 조금 덜 벌어도 진짜 제대로 된 걸 팔아야 사람들이 다시 찾지 않겠어?"

아내의 지극히 상식적인 분노가 홍 과장의 심장을 때렸다. 기술을 모르는 아내조차 가짜에 분노하는데, 전문가인 자신이 돈 몇 푼에 가짜를 진짜로 둔갑시키는 공범이 되려 했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홍 과장은 가방 속에서 구겨진 리포트를 꺼냈다.

그리고 아내 옆에 앉아 펜을 들었다.

"당신 말이 맞아. 가짜는 결국 사고를 쳐.

내가 이 가짜들이 어떻게 세상을 속이는지 데이터로 보여줄게.

당신 사업 리스트도 내가 하나하나 다 검수해 줄게.

우리는 가짜에 속지 않는 법부터 배운다."


# S#5. 서재 (새벽)

홍 과장은 노트북을 열고 본부장에게 보낼 메일 함을 열었다.

제목은 [해외 모듈 성능 검토 최종 보고서].

첨부파일은 두 개다.

하나는 박 차장이 원하는 '보정된 승인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데이터 조작의 증거가 담긴 '결함 보고서'.

홍 과장의 손가락이 마우스 위에서 멈췄다.


어떤 파일을 전송하느냐에 따라 내일 아침 홍 과장의 인생은 완전히 다른 궤도로 진입하게 된다.


그는 창밖의 어둠을 응시했다. 그리고 결심한 듯 마우스를 클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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