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벤츠 타는 대리, 보너스 없는 나

by 공교

"홍 연구원, 이번에 신입으로 들어온 최 대리 봤어? 걔 이번에 뽑은 차가 GLE라던데."

커피 머신 앞에서 만난 박 차장이 또 시작이다.

그의 입은 판교 테크노밸리의 온갖 '자산 현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스피커다.

"대리가 벤츠를요? 집이 좀 사나 보네요."

"집만 잘 살겠어? 걔네 부모님이 강남에 건물이 있대. 월급은 그냥 기름값이나 하려고 다니는 거지. 우리처럼 목숨 걸고 다니는게 아니라고."

나는 1,500원짜리 사내 카페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내 머릿속 알고리즘은 다시 오작동을 일으킨다.

내가 10년 넘게 공장에서 기름때 묻히고 품질 기획하며 밤샘을 밥 먹듯 해서 모은 자산보다, 누군가가 태어나며 받은 '출발선'이 훨씬 앞서 있다는 사실.

LiDAR 센서가 아무리 정밀하게 거리를 측정해도, 이 자산의 거리는 '측정 불가'라는 빨간 글자만 띄울 뿐이다.


그날 오후, 인사팀에서 공지가 내려왔다. 이번 분기 성과급 지급 명단이었다.

기대했던 내 이름은 없었다. '신기술 개발팀은 아직 상용화 전이라 수익 기여도가 낮음'이라는 냉정한 한 줄이 내 1년을 부정하고 있었다.

화가 나기보다 허탈했다. 내가 분석한 수억 개의 점구름 데이터들이, 내가 고민한 정밀도가, 결국 '0원'이라는 숫자로 치환되는 순간.


그때 스마트폰 진동이 울렸다. 아내였다.

[여보, 나 오늘 당근마켓에서 아기 유모차 직거래하고 왔어! 거의 새 건데 반값에 샀어. 우리 오늘 저녁에 고기 구워 먹을까?]

아내는 2만 원을 아꼈다고 아이처럼 좋아하고 있었다. 5만 원권 몇 장에 행복해하는 아내와, 벤츠를 끌고 출근하는 신입 대리. 그 사이의 괴리가 내 가슴을 날카로운 레이저로 도려내는 것 같았다.

'이대로는 안 된다.'


퇴근길, 나는 평소처럼 집으로 향하지 않았다.

차를 돌려 판교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세웠다.

화려한 불빛들이 반짝이는 저 빌딩 숲 중 내 이름으로 된 창문 하나가 없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나는 조용히 노트북을 펼쳤다. 그리고 '브런치'가 아닌 메모장을 열어 적기 시작했다.

[나의 현재 자산: OO원 / 목표 자산: 10,000,000,000원]

0의 개수를 세어보았다. 터무니없어 보였다. 하지만 내 손은 멈추지 않았다.


밤 11시,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거실 소파에서 졸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아내가 당근마켓에서 사 온 유모차가 위풍당당하게 놓여 있었다.

나는 아내를 깨우지 않고 조용히 펜을 들어 그 유모차를 그리기 시작했다.

오늘 그리는 나무는 평소보다 뿌리가 훨씬 거칠고 깊었다.

비웃음을 사더라도 좋다. 찌질하다 욕해도 상관없다.

나는 이제 '수동 운전'을 끝내고, 내 인생을 '부의 자율주행' 궤도에 올릴 설계를 시작했으니까.

"여보, 나 100억 벌 거야."

잠결에 들었는지 아내가 작게 미소 지으며 몸을 뒤척였다.

그 미소가 내 인생의 가장 정밀한 가이드라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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