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연구원, 이번 프로젝트 잘되면 인센티브가 차 한 대 값이라며? 좋겠네, 외벌이는 그런 거라도 터져야 숨통이 트이지 않지."
오전 회의가 끝나기 무섭게 박 차장이 툭 내뱉는다.
그는 우리 팀에서 '정보력'과 '오지랖'을 담당한다.
누구 집이 몇 평인지, 누구 차가 할부인지 꿰고 있는 그에게 나의 '외벌이' 신분은 아주 좋은 먹잇감이다.
나는 그저 어색하게 웃으며 시제품의 오차 범위를 체크하는 척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박 차장은 자기 책상으로 돌아가며 쐐기를 박는다.
"요즘은 자산도 자율주행이라던데? 가만히 있어도 맞벌이 부부들은 집값이 알아서 굴러가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수동으로 노를 저어도 제자리걸음이지, 안 그래?"
그의 비아냥 섞인 농담에 사무실 공기가 서늘해진다. 내 모니터 속 LiDAR 데이터가 빨갛게 깜빡인다.
'오차 범위 초과'. 기계는 정직하다. 렌즈에 지문 하나만 묻어도, 대기 중에 안개만 조금 끼어도 신호는 왜곡된다.
사람 마음도 마찬가지다.
박 차장의 말 한마디라는 '노이즈'가 내 평정심이라는 신호를 사정없이 흔들어놓는다.
점심시간, 오늘은 피할 수 없는 '팀 전체 회식'이다.
메뉴는 판교에서도 손꼽히는 프리미엄 스테이크 하우스. 1인당 예산이 5만 원을 훌쩍 넘는다.
법인카드로 먹는 밥이지만, 나는 이 화려한 식탁이 불편하다.
내 앞의 고기가 익어갈수록, 아침에 유통기한 임박 세일하는 우유를 고르던 아내의 뒷모습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삼성 다니는 내 친구는 성과급으로 포르쉐 계약했다더라. 역시 대기업이 최고야."
"에이 차장님, 저희 회사도 이번에 LiDAR 상용화되면 대박이죠. 홍 연구원님이 어깨가 무겁겠네."
동료들의 대화는 억 단위 숫자를 가볍게 넘나든다.
그들에게 돈은 '취향'과 '과시'의 수단이지만, 나에게 돈은 '생존'과 '방어'의 수단이다.
5만 원짜리 스테이크를 씹으며 나는 속으로 계산한다. 이 돈이면 우리 가족 일주일치 식비인데. 법인카드가 아니라 내 계좌로 이 금액이 입금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발칙하고도 서글픈 상상.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판교 테크노밸리의 화려한 유리 빌딩들에 반사된 햇빛이 눈이 시리게 박힌다. 문득 건물 벽면에 비친 내 모습이 보인다.
최첨단 기술을 개발한다는 연구원이, 점심 한 끼 가격에 마음이 흔들려 비틀거리고 있다.
사무실로 돌아와 다시 LiDAR 센서를 조정한다.
레이저는 1초에 수억 번 빛을 쏘아 보내고, 돌아오는 시간을 계산해 진실을 말한다.
장애물이 있으면 있다고, 멀면 멀다고. 레이저는 결코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
'내 인생의 레이저는 지금 어디를 비추고 있나?'
남들의 화려한 맞벌이 라이프, 성과급 자랑, 명품 시계... 그건 내 인생의 장애물일 뿐 목적지가 아니다.
나는 다시 필기구를 꺼내 브런치에 글을 적는다.
그리고 밤마다 그리는 나무 그림 옆에 짧은 문장을 덧붙인다.
[오늘의 기록: 5만 원짜리 점심보다 값진 건,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은 5분의 사색.]
퇴근길, 마트에 들러 반값 세일하는 고기 한 팩을 샀다. 집에 돌아가 아내에게 근사한 저녁을 차려줄 생각이다.
비록 법인카드로 먹은 스테이크보다 질길지 몰라도, 우리 집 식탁 위에는 박 차장의 비아냥도, 타인과의 비교도 없는 '순도 100%의 우리 시간'이 차려질 것이다.
나는 알고 있다.
지금 내가 겪는 이 굴절과 산란의 시간들이 결국 가장 정밀한 인생의 지도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