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1인분 1만 8천 원의 무게

by 공교

"홍 연구원, 오늘 새로 생긴 수제버거집 가기로 했지? 거기 트러플 프라이가 예술이라던데."

오전 11시 30분. 팀원들의 눈빛이 생기로 가동되기 시작한다.

판교의 점심시간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시간이 아니다.

누가 더 힙한 곳을 가는지, 누가 더 여유롭게 2만 원짜리 점심을 즐기는지 겨루는 소리 없는 런웨이다.

나는 모니터 속 LiDAR 데이터에 코를 박은 채 대답한다. "아, 저는 오늘 속이 좀 안 좋아서요. 그냥 근처에서 대충 먹을게요."

거짓말이다. 속은 아주 멀쩡하다 못해 배꼽시계가 정확히 11시부터 요동을 쳤다. 하지만 내 머릿속 레이저는 이미 오늘 아침 아내가 보낸 카톡 메시지를 스캔하고 있었다.

[여보, 애기 분유가 딱 한 통 남았네. 쿠팡 와우로 주문할게!]

분유 한 통에 4만 원. 내 점심 한 끼 1만 8천 원. 내가 오늘 버거 세트를 포기하면 분유 반 통이 생긴다는 계산이 선다.

팀원들이 엘리베이터로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가방 깊숙이 숨겨온 낡은 보온 도시락을 꺼낸다.

어제저녁 먹다 남은 제육볶음이 밥 위에 얹어져 있다.

비좁은 탕비실 구석에서 차가운 밥을 씹으며 스마트폰을 켠다.

하필 알고리즘은 김 책임의 인스타그램을 보여준다. 육즙이 흐르는 버거 사진 밑에 달린 해시태그 #평일의여유 #판교맛집.

‘저 사람은 맞벌이니까. 부인도 대기업 다니니까.’

제육볶음의 고기 한 점이 유난히 질기게 느껴진다.

비교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밤마다 나무를 그리지만, 이놈의 탕비실 전자레인지 냄새 앞에서는 철학도 예술도 사치다.

퇴근길, 마트에 들러 아내가 부탁한 우유를 집어 든다. 바로 옆 매대에 1+1 행사 중인 수입 맥주가 보인다. 평소라면 고민 없이 집었을 텐데, 오늘은 이상하게 손이 나가지 않는다.

내일은 팀 전체 회의가 있는 날이고, 점심에 또 '맛집'에 가자고 할 게 뻔하니까. 내일의 점심값을 미리 저축하는 심정으로 맥주 대신 PB 상품 생수를 카트에 담는다.

현관문을 열자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아내는 방금 배송된 분유 박스를 뜯고 있다.

"여보, 분유 도착했어! 이거 없으면 오늘 밤 큰일 날 뻔했네."

아내의 환한 얼굴을 보니 낮에 먹은 차가운 제육볶음의 서러움이 조금은 내려가는 기분이다.

하지만 식탁 위에 놓인 분유 통의 가격표가 자꾸만 1만 8천 원짜리 수제버거와 겹쳐 보인다.

내 LiDAR는 수백 미터 앞의 물체는 기가 막히게 잡아내지만, 정작 이 좁은 거실에서 내가 느끼는 이 '상대적 빈곤'의 사각지대는 감지하지 못한다.

밤 11시. 모두가 잠든 시간, 나는 다시 펜을 잡는다. 오늘은 나무의 기둥을 유난히 굵게 그린다. 비바람이 불어도, 남의 집 정원에 핀 화려한 꽃들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뿌리보다 기둥이 먼저 단단해져야 할 것 같아서.

기록지에 적는다.

[지출: 우유 2,900원. 절약: 점심값 18,000원. 나의 가치: 분유 한 통 지켜냄.]

이게 100억 자산가로 가는 길인지, 아니면 그저 쫌쫌따리 궁상을 떠는 건지 헷갈릴 때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다. 나는 오늘 나만의 '품질 관리'에 성공했다는 것. 불량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나의 자리를 지켜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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