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자율주행 연구원의 수동 운전

자율주행의 눈을 만드는 남자, 정작 내 앞길은 안갯속

by 공교


판교 테크노밸리의 아침은 거대한 전시장 같다. 지하 주차장에 들어서면 이름만 대면 알법한 독일제 세단들과 최신형 전기차들이 매끄러운 광택을 뽐내며 도열해 있다. 나는 그 틈바구니에서 낡은 국산 SUV를 주차하며 습관적으로 연비 창을 확인한다. 12.4km/L. 어제 기름값이 조금이라도 싼 주유소를 찾아 헤맨 보람이 있다는 안도감이 밀려오지만, 동시에 형언할 수 없는 지질함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다.

내 직업은 신기술 개발팀 연구원이다. 자율주행차의 '눈'이라 불리는 LiDAR 기술을 만든다. 1초에 수백만 번 레이저를 쏘아 사물과의 거리를 센티미터 단위로 계산하는 정밀한 일을 한다. 남들은 나를 '첨단 기술을 만지는 전문가'로 보겠지만, 내 안의 센서는 정작 다른 곳을 향해 있다.

바로 '남들과의 거리'를 측정하는 센서다.

사무실에 앉아 점구름(Point Cloud) 데이터를 분석하다 보면, 옆자리 김 책임의 대화가 레이저처럼 내 귀에 박힌다. "이번에 영끌해서 들어간 단지 공시지가가 또 올랐더라고요. 아내도 이번에 복직하면서 수입이 꽤 쏠쏠하네요."

그의 말 한마디에 내 마음속 정밀 센서가 미친 듯이 오작동을 일으킨다. 맞벌이 부부의 여유로운 웃음소리, 이번 주말에 제주도로 라운딩을 간다는 계획들. 그들의 데이터는 내 모니터 속 데이터보다 훨씬 더 선명하고 화려하다. 나는 외벌이 가장이다. 내가 쏘아 올린 레이저는 아내와 아이라는 벽에 부딪혀 돌아오지만, 그 반사광은 때로 너무 무거워 나를 짓누른다.

어제저녁, 아내가 조심스레 내민 관리비 명세서가 떠오른다. "여보, 물가가 너무 올라서 식비를 좀 줄여야 할 것 같아."

아내의 잘못이 아닌데도, 나는 괜히 날이 선 목소리로 "알아서 잘 조절해봐"라고 툭 내뱉고 말았다. 내 연봉에서 세금을 떼고, 노후를 위해 쪼개 넣는 연금 저축과 대출 이자를 치르고 나면 손에 쥐어지는 숫자는 너무나 정직하다 못해 비정하다.

나의 LiDAR는 수백 미터 밖의 장애물을 기막히게 감지하지만, 정작 내 옆자리 동료와의 '자산 격차'라는 장애물 앞에서는 자꾸만 시스템 종료를 알리는 경고등을 띄운다. 비교라는 건 참 잔인한 알고리즘이다. 한번 작동하기 시작하면 내 삶의 모든 성취를 '불량품'으로 판정해버리니까.

"홍 연구원, 이번 국방 프로젝트 전략안 다 됐나?"

팀장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국가의 경계를 지키는 기술을 고민하는 내가, 정작 옆 사람과의 비교질에 내 마음의 경계선이 무너지는 꼴이라니.

점심시간, 동료들이 새로 생긴 비싼 수제 버거집으로 향할 때 나는 편의점 도시락을 집어 든다. 창밖으로 보이는 판교의 화려한 건물들 사이에서 문득 깨닫는다. 내 인생의 품질 관리는 남의 인생과 비교하는 순간부터 실패라는 것을.

퇴근길, 편의점 앞에 멈춰 선다. 4캔에 1만 2천 원 하는 맥주 묶음을 만지작거리다 내려놓는다. 대신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별도 계정에 접속한다. 오늘 먹은 식단과 운동량을 기록한다. 그리고 어제 그리다 만 나무 그림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옆의 나무가 얼마나 높은지 신경 쓰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뿌리가 닿는 땅속 깊은 곳에 집중할 뿐이다.

나는 다시 펜을 잡는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나만의 궤도'를 만들기 위한 탈출 속도다. 자율주행차는 스스로 길을 찾지만, 나는 내가 직접 길을 닦아야 한다. 남의 속도가 아니라, 오직 나의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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