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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림 Aug 24. 2024

당신의 시선

공림의 생각스케치

   아무리 무계획적인 여행과 만남을 좋아한다지만, 요즘은 너무 자주 그런 일이 생긴다. 더욱이 늦여름 무더위로 심신이 지쳐 있을 때 뜬금없이 약속이나 할 일이 생기면, 내 아늑한 휴식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지는 것이다.     


   요즘 부쩍 아들이 이런 나의 게으름 속에 불쑥 들어와 어딜 자꾸 가자고 한다. 아빠가 옆에 있으면 재밌어서가 아니다. 일종의 매니저, 혹은 기사 역할을 해달라는 건데, 그런데도 내가 몸을 일으키는 것은,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사춘기 과묵한 아들과 얘기할 시간이 있을까 싶어서이다.     


   사진에 관심이 많은 아들은 사진 공모전에 응모해 보겠다며 풍광 좋은 곳을 가보자고 했다. 언덕 위, 작은 마을. 녀석이 아니었으면 모르고 살았을 곳. 그곳에 아이를 내려주고, 나는 마을 아래 카페에 들어갔다.     


   누구에 의해서건, 예정에도 없던 이곳에, 아무도 없이 혼자, 커피를 마시고 있다는 것. 이런 것도 해보니 꽤 괜찮다. 혼자 있으면 오감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하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창밖을 바라보다가 하늘이 참 예쁘다는 생각에 카페 베란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저쪽 언덕 어딘가 아들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겠지. 그러면 아빠는 여기서 하늘 사진 한 장 찍어 볼까.     


   한 시간쯤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카페로 들어온 아들과 마주 앉았다. 집에 가서 보정을 한 후에 사진을 보여주겠다며, 보여 달라는 나의 정중한 요청을 거부한 아들은 아빠가 찍은 사진은 한번 봐주겠다고 했다.     



“우와, 구름이 한반도를 만들었네?”

“으응?”     


   아들의 말에 흠칫 놀랐다. 하늘을 한 시간 동안이나 쳐다보고, 사진까지 찍었는데, 나는 그게 한반도 모양인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어찌하여 나는 보고도 볼 수가 없었을까. 잠시 전까지만 해도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며 오감이 살아난다고 기뻐했던 나였는데. 다른 사람의 시선은 내가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내가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는구나.      




   아들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얼마 전 거리에서 본 세 살 꼬마의 말이 생각났다.     


“엄마, 저기 봐. 저기 비행기들이 많이 있어.”     


   아이는 어둑한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기뻐 외쳤다. 옆을 지나가던 나도 무의식중에 하늘을 보았다.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엄마는 무릎을 굽혀 딸과 같은 시선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응, 정말, 하늘에 비행기들이 아주 많이 있네. 와, 신기하다.”     


   다시 올려다본 하늘, 거기에는 여러 개의 가로등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오늘도 나는 하늘에 떠 있는 한반도와 수많은 비행기를 보지 못하는, 내 시선에 붙잡힌 세상을 살아간다. 그러기에 당신의 시선이 내게 준 세상이 소중하다. 나의 눈이 당신의 눈과 만나고, 나의 세상에 당신의 세상이 더해졌으면 좋겠다. 매일 매일 하루를 마감할 때면 당신의 그 수고스러운 시선에 고마움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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