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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림 Dec 20. 2024

흔들리는 겨울

흙과 나무로 빚는 에세이

   버스를 탔는데 손에 들고 있던 봉지에서 혹여나 냄새가 올라와 퍼질까 봐 신경이 여간 쓰이는 게 아니었다. 주인아주머니는 기름에서 막 건져낸 뜨거운 호떡을 종이봉투에 하나씩 넣더니, 비닐봉지에 모두 담아 건네면서 한동안 열어두라고 하였다. 한동안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한참 기다릴 줄 알았던 버스가 금방 도착했으니, 얼떨결에 비닐봉지를 싸매지도 않고 탔던 것이다. 잠시 후 똘망똘망한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맛있는 냄새가 나.” 내 앞에 앉아 있는 네다섯 살 되어 보이는 아이가 옆에 서 있는 엄마의 소매를 흔든다. 죄지은 사람처럼 흠칫 놀라서 얼른 봉지를 묶었다. 다행히 가방 속에 비닐봉지가 하나 있었으니, 꺼내서 이중으로 포장하고 나서야 창밖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눈발이 조금씩 날리기 시작한다. 일주일 사이에 남대문 시장이 벌써 네 번째이다.


    올봄이 시작될 무렵, 아이 방에서 발견한 카메라 가방이 시작이었다. 꽤 무거운 카메라와 렌즈가 들어갈 만큼 가방은 큼지막했고, 빛바랜 천에는 오랫동안 바깥 구경하며 햇볕을 쬔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며칠이 지나도 그 자리에 있길래, 등굣길에 아이를 데려다주면서 슬쩍 말을 건네보았다.


“그 카메라 가방은 뭐니?”

“그냥 친구가 빌려줬어.”


   사춘기 중학생을 두 번째 키우다 보니, 대답의 의미를 금방 알아챘다.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어떤 친구냐, 왜 가방만 있냐, 카메라는 어디 있냐, 카메라도 빌렸냐, 그런 걸 왜 빌렸냐, 등등 물어볼 수 있는 말이야 많겠지만 그러다 보면 긁어 부스럼 만들기 십상이다. 이럴 땐 기다림이 최고의 처방이다. ‘때 되면 얘기하겠지.’ 속으로 그러고 말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슬며시 방문을 열더니 뜬금없이 아빠는 카메라가 없냐고 묻는다. 스마트폰이 생긴 이후로 소리 없이 자취를 감춘 디지털카메라가 생각났다. 스마트폰이 없을 때였으니 한 몸처럼 끼고 살다시피 했는데, 이제는 나이로 치면 아이보다 몇 살 더 많을 만큼 오래됐다. 쓸모없어졌다고 금방 처분하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이름하여 나의 ‘고물’ 상자 안에 있음이 틀림없었다. 오랜만에 고물 상자를 열었다. 이런저런 추억들이 나온다. 버스 토큰, 고등학교 배지, 삐삐, MP3 플레이어, 그리고 일명 똑딱이라고 불렸던 디지털카메라. 아이는 배터리가 방전돼서 켜지지도 않는 카라를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지며 날름 가져갔다. 뭔가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한다. 다만, 퍼즐을 맞출 수 있다고 자신감 있게 먼저 말을 꺼냈다가는 다 된 밥에 재를 뿌릴 수 있어서 좀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출근길과 등굣길 동선이 일부 겹치기에 그날도 아이를 학교까지 태워주었다. 차에 타자마자 아들이 오늘 아침 하늘이 정말 예쁘지 않냐며 말을 꺼냈다. 이건 또 웬 감수성일까. 변성기 목소리에 여드름 난 중학생이 하는 말인가 싶다. 그래도 오랜만에 들어보는 긍정적인 말이라 맞장구를 쳐주었다. 기분이 좋은지 이야기를 술술 풀기 시작한다. 어제 집에 오면서 붉게 물든 하늘을 스마트폰으로 찍었다고 했다. 운전하고 있는 나에게 폰을 얼굴 밑으로 들이밀며 사진이 어떠냐고 묻는다. 곁눈질로 대충 보고는 아주 멋진 사진이라며 폭풍 칭찬을 해주었다. 이쯤 되니 아들도 분위기가 괜찮다고 생각했나 보다. 슬쩍 카메라 얘기를 시작한다. 사실 친구한테 부탁해서 값싼 중고 DSLR을 샀다고 했다. 가방 속에서 꺼낸 카메라는 말이 카메라지 흠집이 여기저기 나고 벗겨져서 그냥 가지라고 해도 꺼림직할 만한 물건이었다. 출시된 지 20년은 넘은 것 같다. 혹시나 딴짓한다고 잔소리 들을까 봐 몰래 가지고 다니며 찍었다고 한다. ‘얼마나 하고 싶었으면….’ 얘기를 듣고 나니 목구멍에 뭐가 걸린 듯, 불편함과 씁쓸함이 온종일 떠나지 않았다. 20년 전쯤, 나도 남들처럼 그런 폼나는 DSLR을 가지고 다니면서 가족 사진을 찍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빠듯한 생활에 한 달 치 월급을 주고 사기에는 사치였기에, 대신 작은 똑딱이를 마련했던 것이다.


   고민 끝에 이번만큼은 안 되겠다 싶어서 큰마음을 먹고 요즘 나오는 전문가용 카메라와 렌즈를 샀다. 그리고 이제 아들을 불러다 앉혀놓고 이른바 증정식이란 걸 했다. 이런 거에 너무 시간을 많이 빼앗기면 안 된다, 공부를 게을리하면 안 된다, 사진 찍는다고 위험한 데 다니면 안 된다, 비싼 물건이니 관리를 잘해야 한다, 등등 이번 기회에 참고 있던 온갖 훈계를 했다. 잔소리는 이럴 때 해야 한다. 눈은 카메라에 가 있었지만, 귀로는 듣고 있었는지 모든 잔소리에 긍정적인 대답을 한다.


   이제부터는 눈치 안 보고 사진을 찍어도 되니, 아들은 올해 내내 대놓고 아빠를 운전기사처럼 부려 먹었다. 평일 퇴근하고 나면 야경을 찍으러 갔고, 주말이면 한두 시간 차를 타고 교외를 돌아다녔다. 한여름에는 은하수를 찍고 싶다고 해서 새벽에 강원도까지 다녀왔으니, 그 열정만큼은 칭찬할만했다. 그 덕에 나도 생각지도 못한 여행을 하면서 몰랐던 곳도 알게 되었고, 아이와 이런저런 숨겨둔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몸은 피곤했으나, 재미도 넉넉히 챙겼으니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두 주 전쯤, 혼자 야경을 찍는다고 나간 아이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으로 돌아왔다. 들어오자마자 나에게 투덜거리기 시작한다. 카메라에 에러가 생겨 제대로 찍지도 못하고 왔다는 것이다.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사줬다는 이유로 책임까지 져야 하는 걸까. 이유를 알 수 없는 이런 종류의 책임감이라니. 이리저리 테스트해 보니 카메라가 아니라 렌즈가 문제였다. 사진을 잘 아는 분께 전화하니 남대문 시장에 있는 단골 수리점을 소개해 주셨다. 워낙 시장 구경을 좋아하니 남대문 시장은 꽤 오래전에 즐겨 갔던 곳이다. 칼국수와 갈치조림을 먹으러 다녔던 곳인데, 카메라 때문에 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위치를 보니 대충 어디쯤인지 알 것 같았다. 잘 아는 고장이라며 걱정하지 말라는 수리점 사장님은 얼굴에 웃음을 띠고 계셨다. 60대 중반은 족히 넘어 보였는데, 웃음이 그려진 얼굴은 하루아침에 생길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늘 웃고 있어서 웃음 근육이 단단히 생긴 얼굴, 누구든 마주하면 믿음이 갈 수밖에 없는 인상이다.


   그렇게 넉넉한 인품을 품은 모습이 아니었다면, 나도 아이처럼 투덜거리며 짜증을 낼뻔했다. 다음날, 수리가 잘 됐다는 메시지가 도착하자마자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남대문에 다녀왔건만, 집에서 테스트를 해 보니 똑같은 에러 메시지가 다시 떴다. 그렇게 해서 어제 세 번째, 그리고 오늘 다시 네 번째 남대문 시장을 다녀온다. 어깨에는 묵직한 렌즈가 들어 있는 가방을, 손에는 고소함이 올라오는 호떡 봉지를 들었다.


   비닐봉지에 이중으로 쌌지만, 손 아래에서 올라오는 냄새는 여전히 코를 간지럽혔다. 퇴근길 버스 안. 누가 봐도 출출한 사람들. 냄새가 왕창 올라왔으면 난동이라도 났을 법하다.


“엄마, 맛있는 냄새가 나.”


   아이가 엄마 소매를 또 흔든다. 내 마음도 흔든다. 안 되겠다. 꽁꽁 싸맨 비닐봉지를 다시 풀어 호떡 한 봉지를 아이에게 건넸다. 뭐, 괜찮다. 오늘은 호떡을 넉넉하게 샀으니까.


   아이의 얼굴에는 출출한 겨울밤, 아버지의 퇴근을 기다리던 어린 나의 모습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시는 아버지의 두 손에 뭐라도 들려 있기를 바랐던 마음. 그때 아버지도 퇴근길 버스에서 묵직한 호떡 봉지를 들고 오시며 기대에 부푼 나의 마음을 상상하셨을까? 아버지는 오래전 하늘나라로 가셨고, 이제는 내가 그런 아버지가 되었다. 그때 아버지의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창밖으로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지나갔다. 그 위로 여전히 눈발이 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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