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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로미의 김정훈 Feb 04. 2024

항복: 붙어도 좋고, 안 붙어도 괜찮다.

데이비드 호킨스의 '항복'

내 별명은 ‘가짜’였다. 가짜 김정훈.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 반에는 나와 똑같은 이름의 친구가 한명 더 있었다. 당연히 내가 아닌 다른 김정훈은 '진짜 김정훈'이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걔가 나보다 잘생겼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쉬는 시간만 되면 큰 소리로 '김정훈!'하고 불렀다. 나는 나를 부르는 줄 알고 대답을 한다. 그러면 친구들은 이렇게 말했다. '너 말고 진짜 김정훈'. 



반복되는 장난에 지치기도 했지만, 더 마음이 아팠던 건 항상 이름을 부르면 내가 아닌 '진짜' 김정훈을 부르는 장난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애초에 친구들은 걔한테 할 말도 없었다! 난 항상 가짜였고, 장난 상대였다. '진짜 김정훈'은 장난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때는 어린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더 잘생겼다면 내가 진짜였겠지.' 잘생겨지고 싶었다. 



다행히 ‘진짜 김정훈’은 4학년이 되기 전에 다른 학교로 전학갔다. 나는 더 이상 ‘가짜’가 아니었고, 친구들의 장난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이젠 진짜 김정훈도 전학을 갔으니, 잘생겨도 그만, 지금 그대로여도 그만이었다. 그렇게 내 잘생겨지고 싶다는 욕망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나는 잘생겨지기 위해 뭔가를 더 노력하지 않았다.



그리고 중학교에 올라가고나서 어느 순간부터 잘생겼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음 .. 어쩌면 정해진 수순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아빠가 워낙에 잘생겼고, 엄마도 정말 예쁘니까. 누군가는 내가 어차피 부모님을 닮아 잘 생겨질 운명이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나는 잘생겨지고 싶다는 바람을 내 마음에 넣고, 그걸 잊어버렸기 때문에 잘생겨졌다. 



우리 사회는 항상 무언가를 간절히 원해야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하지만, '항복 기제'는 다르다. 목표를 정했다면 원하는 마음을 놓아버려야 한다. 인류의 위대한 현자들은 그것을 '놓아 버림', 다른 말로 항복이라 부른다. 항복이란 목표를 이뤄도 좋고, 이루지 않아도 좋다는 상태다. 나는 항복했다.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는 말했다. '욕망을 놓아 버리는 경험을 하면 자신의 선택이 마술처럼 삶에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음속에 품는 것은 현실로 나타나기 쉽다"' 그는 목표를 정하고 마음에 넣어둔 뒤에, 욕망을 놓아 버리라고 말한다. 내 주변 친구들도 잘생겨지고 싶다는 바람은 품는다. 하지만 모두 자신이 잘생겨질 거라고 감히 믿지 않는다. 마음속에는 자신이 계속 못생길 거라는 믿음을 품는다. 그리고 끊임없이 잘생겨지고 싶다는 바람을 품는다. 만약 믿음을 취소하고 바람을 항복한다면 어떨까? 나 역시 만약 계속해서 '잘생겨지고 싶다는 욕망'을 품고 있었다면 다른 결과를 냈을수도 있다. 정말 멋진 부모님 밑에서도 못나게 자랄 수는 있는 법이니까. 



내 이야기가 많이 얄밉고 의심스러울 수 있으니 깊은 사과와 양해를 바라며, 가장 강렬했던 이야기 하나를 더 말해볼까한다. 시작은 이러했다. 나는 고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정말 간절히 가고 싶었던 대학교가 있었다. 그 학교가 우리 학교에 입시설명회를 왔을 때 나는 '입시설명회를 듣는다고 학교를 갈 수 있는 건 아니야. 그 시간에 공부하는 사람이 갈 수 있는 거지.'하며 공부했다. 설명회를 듣고 온 친구들은 모두 내가 그 학교에 가고 싶어한다는 걸 알았기에 돌아오자마자 받고 온 책자를 나에게 줬었다.



하지만 수능이 끝나고 가채점을 하니 점수가 원하는 학교에 가기엔 턱 없이 부족했다. 엄마도 나도 점수에 맞게 입학하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고 재수할 생각은 없었다. 그럴 돈도 없었다. 나는 원하는 대학교에 가고자하는 욕망을 ‘항복’했다. 그리고 논술을 보러 서울로 갔다. 



이쯤에서 잠깐, 나는 논술이 남았는데 왜 항복했을까? 나는 논술 학원을 다니며 학원 선생님에게 '넌 왜 다른 친구들처럼 실력이 늘지를 않냐'는 말을 자주 듣곤했다. 3개월 넘게 학원을 다녔는데도 전혀 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남들보다 성장이 느려도 너무 느렸다. 그래도 논술 시험이 2달 남은 시점에는 조금씩 감을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합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논술 시험은 총 100분이다. 난 원래 논술 연습을 할 때 초고를 쓰는데도 100분이 넘게 시간이 들었다. 그뿐이랴. 단 한 번도 연습하면서 글을 고쳐 써본 적이 없었다. 초고가 곧 제출물이었다. 이런 나였기에, 나는 논술을 남겨두고 원하는 대학에 가기를 '포기'하진 않았지만 '항복'하는 것은 당연했다. 나에게 논술은 수능이 끝나도 아직 한 발 남았다는 안심을 주는 수단에 불과했다. 



논술 시험이 시작되고 평소에 연습한 대로 시험을 풀었다. 마지막 문장을 다 쓰고 시계를 봤는데 30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집중한 탓이었을까? 그랬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70분이 더 남아있다는 사실이었다. 한번도 이런 적이 없었기에 3분 정도 가만히 멍을 때리며 시계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는 정말로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가 쓴 글을 다 지워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단 한번도 이렇게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실전에서 갑자기 안 해본 일을 한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땐 이것이 옳다는 ‘앎’이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앎'이란 '지워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고 이미 내 안의 무언가가 당연히 지우고 새로 쓰는 걸 안다는 듯이 이미 지우개로 글을 지우고 있는 그런 상태였다. 



그렇게 다 지우고나서 나는 약 60분동안 무의식에서 나오는대로 글을 써내려갔다. 단 한 번도 쉬지 않았다. 다음 문장이 그냥 ‘떠올랐다.’ 손이 아파서 힘들어 죽을 거 같았지만 펜을 쉬지 않았다. 지금까지 연습한 양식으로 쓰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연습한 양식은 1번 문항 600자, 2번 문항 1000자 등 각 문항마다 글자수가 정해져 있었고 두괄식이니 어쩌니 하는 형식이 있었다. 나는 그런 걸 다 무시하고 그저 휘갈겼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대략 한 문제당 1000~2000자는 넘게 썼다. 



나는 3분을 남기고 글을 다 토해냈다. 마지막으로 글을 읽으며(아니, 글을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펜을 내려놓았을 때 합격하겠다는 사실을 ‘알았다.’ 지금 앉아 있는 학교가 내가 다닐 학교가 될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다른 시험을 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그런 앎도 잊고 있었다. 왜냐하면 합격해도 좋고, 합격하지 않아도 좋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직전에 수능 점수를 마주하고 원하는 대학교에 들어가길 항복했다.  



항복이란 뭘까? 데이비드 호킨스는 항복 상태를 ‘창조성과 자발성이 마음속 갈등에 가로막히거나 방해받지 않고 나타날 수 있도록 특정 방면의 부정적 감정에서 벗어난 상태’라고 말했다. 항복은 ‘앎’을 수반한다. 내가 한 번도 써보지 않은 글이 막힘 없이 나올만큼 창조성이 튀어나오고, 누가 그렇게 해도 좋다는 말이 없었지만 자발적으로 행했다. 나는 합격하면 좋았고, 합격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내 고등학교 인생의 노력에 후회가 없었고, 더 이상 재수할 생각도 없었기에 항복은 쉬웠다. '그래요. 이렇게 노력했는데도 내가 원하는 대학교에 들어갈 수 없다면, 다른 선택지가 없다면,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땐 이게 항복이라는 사실도 몰랐고, 내가 그런 ‘앎’이 있었다는 걸 자각하지 못했다. 내가 합격할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사실도 나중에 돌이켜 보았을 때 명확해졌다. 그 순간엔 그게 '앎'이란 것도 몰랐다. 나중에 과거를 돌이켜보았을 때 그것이 확실한 ‘앎’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항복이란 어떤 일에 대해 격한 감정이 없음을 의미한다. 즉, 그런 일이 생겨도 좋고, 생기지 않아도 괜찮다. 또한 항복 상태에선 ‘어떤 상황에서든 최대한 좋은 것이 현실로 나타나게 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내가 지금껏 겪어온 항복 상태는 이랬다. 



원하는 것을 이루는 방법은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항복이다. 목표에 대한 원함을 놓아 버리고 항복할 때,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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