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이면 끝날 일을 30분, 40분 기다리고 있다면
전통적인 결재 시스템을 원하는 회사가 많습니다. 기안 올리고 결재받는 시스템이죠.그런데 직원 5명, 10명인 회사에서 이런 시스템이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광고 소재 문구 수정했습니다. 결재 부탁드립니다."
말로 하면 10초 걸릴 일을 문서로 작성하느라 5분, 10분 시간을 씁니다. 하루 10번씩 일어난다면, 하루 100분, 한 달이면 2~30시간이 허공에 날아갑니다. 직원이 5명이라면, 월 150시간이 될 겁니다.
지금 상황의 문제는 중요한 의사결정과 사소한 실행이 같은 무게로 취급된다는 겁니다.
많은 회사가 업무 관리를 '결재'로 생각합니다. 직원이 기안을 올리면 대표가 승인하고, 승인이 나면 진행하고, 끝나면 보고하는 구조죠. 이 방식은 대기업에서는 잘 작동합니다. 수백, 수천 명이 일하는 조직에서 모든 결정을 대표가 직접 볼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10인 미만 조직에서는 상황이 다릅니다. 대표가 모든 의사결정의 최종 책임자인 경우가 많고, 중간 관리자는 실질적인 결정권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구조에서 3단 결재, 전결 규정 같은 룰을 그대로 가져오면 어떻게 될까요?
시스템이 속도를 늦추는 장치가 됩니다.
중요한 건 컨펌을 받는 '방식'입니다. 기안-검토-결재라는 무거운 절차보다, 업무 단위로 빠르게 요청하고 확인받는 구조가 작은 조직에는 더 맞을 수 있습니다.
결재 시스템이 생기면 일을 시작하기 전에 서류부터 작성해야 합니다. 왜 필요한지, 얼마나 걸리는지, 어떤 결과가 나올지 미리 적어야 하죠.
문제는 작은 조직에서는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일이 많다는 겁니다. 해보면서 조정해야 하는데, 결재 문서에는 확정된 내용만 적어야 합니다. 그래서 직원은 결재를 통과시키기 위해 실제보다 더 구체적으로 포장하게 됩니다.
결재 시스템이 있으면 직원은 "이것도 결재 올려야 하나?" 고민하게 됩니다. 사소한 건데 결재 올리면 괜히 일 크게 만드는 것 같고, 안 올리면 나중에 문제 생기면 책임 물을까봐 불안합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서로 눈치를 보게 됩니다. 직원은 대표 기분을 살피고, 대표는 직원이 제대로 하는지 의심하게 되죠.
작은 회사의 가장 큰 장점은 속도입니다. 그런데 결재 시스템이 생기면 속도가 깨질 수 있습니다.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일단 급한 거니까 불부터 끄고 바로 보고하자"가 아니라 "잘 모르겠으니 결재 올려야지"가 됩니다.
작은 기업에서는 서로 업무를 편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만으로도 앞서갈 수 있습니다.
알아서 찾아 일하는 직원을 만들려면, 대표가 직원에게, 직원이 대표에게, 직원들끼리 알아서 업무를 빠르게 주고받을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이게 없으면 대표가 병목의 원인이 되죠.
업무요청은 단순히 '일 시키기'가 아니라, 담당자를 명확히 하고, 기한을 정하고, 완료 여부를 추적할 수 있는 단위로 업무를 주고받는 방식을 말합니다.
1. 직원이 대표/상사에게 요청 및 보고
2. 대표가 직원에게 업무를 지시
3. 동료끼리 요청
이렇게 되면 대표는 모든 업무의 병목이 되지 않습니다.
결재시스템으로 업무관리를 대체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면, 멈추고 task 기반으로 업무시스템을 구축하는 걸 고려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일은 작고 가볍고 빠르게 움직입니다. 대표나 결재권자 한 사람의 무게보다, 시스템이 가져올 잠재력이나 파급력이 더 큽니다.
작은 조직에서는 큰 조직의 방식을 그대로 가져오는 게 답이 아닙니다. 규모에 맞는 방식이 따로 있고, 단계에 맞는 구조가 따로 있습니다.
10인 미만 조직이라면, 절차보다 실행 속도가, 승인보다 담당자가, 형식보다 맥락이 더 중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그에 맞는 구조를 만드는 게 먼저일 겁니다.
지금 회사의 일하는 방식에 답답함을 느낀다면,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구조일 수 있습니다. 결재 시스템을 도입하기 전에, 업무요청 시스템부터 도입해보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