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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ny Oct 30. 2019

기차


내 고향 시내에는 역 근처 기찻길 위를 지나가는 다리가 있다. 어린 시절 나는 그 다리를 지날 때마다 차를 세우라고 울며 보챘다. 기찻길을 보면 기차가 있든 없든 그 모습을 빤히 보는 것을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간혹 기차가 지나가기라도 하면 정말 좋아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부모님은 다리 난간을 붙잡고 기찻길을 더 싶어 하는 나를 달래느라 고생을 하셨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기차를 좋아한다. 규칙적으로 덜컹거리는 소리도 큼직한 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도, 기차를 타고 도착하게 되는 그곳도 좋아한다.

뒤돌아보면 참 많은 일들이 기차와 관련이 있었다. 유년 시절 내가 좋아하던 장난감은 기찻길을 만들어서 그 위로 기차가 지나가게 하는 것이었고, 나는 어디서든 기차가 지나가면 구경했고, 기차 두대가 연결되어 가는 걸 보면서 기차가 뽀뽀해서 간다고 말한 것은 엄마가 정말 좋아하는 내 어릴 적 이야기이다. 좀 더 커서 아버지가 대전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는 가끔 엄마와 동생 나 이렇게 세 식구가 기차를 타고 대전을 오갔다. 더 커서는 대학 입학 면접을 보러 서울에 없는 교복을 입고 기차를 탔다. 이후엔 서울과 고향을 오가며 기차를 탔다.

기차가 마냥 나에게 추억거리일 순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최근의 일이었다. 생전의 내 할아버지는 한쪽 다리 절반이 없어 의족과 전동휠체어의 도움을 받으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철도에서 일을 하시다가 어떤 사고로 인해 열차와 선로 사이에 다리가 끼게 되셨다. 지금이라면 다리를 절단할 만한 일은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50년 전 시골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절단 뿐이었다. 당시 그 시골에서도 시내가 아닌 산골에 살던 7살의 아버지는 할머니와 함께 시내의 병원을 찾았고, 병문안 온 분들이 예쁘게 담긴 사과를 가져오셨다고 한다. 그때 아버지는 그런 사과를 처음 먹었고,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도 밤이든 낮이든 과일은 사과만을 고집하신다. 그날 이후 한쪽 다리를 잃고는 산골에서 살 수 없어서 온 가족이 시내로 이사를 오셨다. 할아버지는 일을 하지 못했고 지독한 가난 속에서 아버지가 자랐다.

아직 긴 삶을 살진 않았지만,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남들에게 설명할 수 없는 은유와 상징, 혹은 운명 같은 것이 삶에 있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서는 짧은 소설이나 영화처럼 완벽한 스토리를 이루다가도 말하려고 하면 그냥 망상에 불과한 것처럼 들리는 이야기. 나에겐 기차가 그런 이야기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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