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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곤잘레스 파파 Jan 24. 2024

[암투기 3] 수술실 풍경

수술대에 오르는 ENFP 환자의 르포르타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이사야 41:10)


이동침상에 누운 수술실로 들어가는 문 바로 위에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성경 구절이다.


주책맞지만 나이 들어도 수술대에 오르는 건 두렵다.

게다가 사전에 안면신경 마비에 대한

주의사항까지 들었으니

수술 후에 설마 얼굴에 감각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걱정이 앞선 것도 사실이다.


이른 오전 수술이었는데 대기 시간이 꽤 길어

아마 점심 무렵 시작된 것 같다.  


수술실에 가는 풍경이 생경하면서도 꽤 인상적이라

기록을 짧게 남겨본다.



수술 전 풍경

보통 병동 입원수속은 수술 전날 오후쯤 밟는다.  

집에서 간단한 세면도구와 옷가지를 캐리어에 담아 온다. 

집이 가까우면 가족들이 필요한 물품들을 가져다줄 테지만

지방에서 올라오면 시간적 여유가 부족할 터

더 꼼꼼하게 짐을 꾸려와야 된다.


난 이비인후과 환자지만,

병동이 꽉 차 피부과 병동에 입원했다.

나중에 사흘 정도 이비인후과 병동으로 옮겼지만,

이비인후과는 비염 환자의 코 빼는 걸쭉한 소리가

밤낮, 식사시간 구별 없이 지속되기에 사실 많이 괴롭다.   

피부과 병동에서 일주일 정도 지냈던 게 행복했다.


입원날은 간단히 수술 전 협진이라고 해서

다른 이상 병증이 없는지 마취에 문제는 없는지

간단한 설문조사와 면담이 진행된다.

형식적인 절차다.


그리고 세브란스 병원은 내부 시설들이 잘 돼 있어

곳곳을 구경할 맛이 난다.

병원 1층은 심지어 인공 조경까지 갖춰

가족이나 지인 상봉하기 안성맞춤이다.


이산가족 상봉


입원 첫날은 낯선 병동에서 꽤나 푹 잠든 것 같다.

이틀 전까지 방송을 마치고 왔으니 피곤이 안 풀렸기도 하고,

자정부터 금식이라 그냥 일찍 쉬는 게 나았을 터.


다음 날 아침 수술 준비를 하며

팔에 링거를 꽂을 주삿바늘을 꼽았다.

그리고 수술실까지는 침대에 누워 이동하는데

사실 아픈 곳도 없어 걸어갈만한데 조금은 어색했다.


세브란스병원 수술실은 무려 50여 개나 있다고 한다.

대기실 풍경이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양옆 앞뒤로 수술 대기 중인 환자가 가득했다.


심장, 팔, 다리, 눈, 폐, 코... 나는 귀 쪽이니 귀까지

모든 병상의 집합체이자 백화점 같았다.

각 과별 간호사가 와서 수술 부위에 마크를 하고 간다.

특히 어린아이가 수술받을 경우

보호자가 대기실까지 함께 들어오는데

수술실까지는 같이 이동할 수 없어 아이 혼자 떠나보내는

어머니의 모습이 굉장히 안타까웠다.

꽤나 많이 우셨던 것 같다.


대기 시간은 거의 1시간은 넘었을 듯.

내 순서가 되자 맨 위의 성경구절이 쓰여있는

커다란 수술실 문을 지나게 된다.

대기실에서 마취약을 맞고 갈 줄 알았는데

맨 정신으로 이동하니 성경구절보다 더 두려움이 앞섰다.




이하선에 생긴 종양은 건강검진으로 찾아낸 게 아니다.

볼에 종양이 만져진 게 약 1년 정도 됐는데

초기에는 작은 염증이니 곧 없어지겠지 했다가

조금씩 딱딱해지면서 커지는 게 느껴져

동네 이비인후과에 가게 된 것.

사실 동네 병원 의사분도 큰 문제 아닐 거라며

그래도 혹시 모르니 큰 병원 가서 마음 안심용으로

CT라도 찍어보라고 권유했기에

소견서 받아서 세브란스병원에 찾아간 것이다.

만일, 귀차니즘에 가지 않았거나

조금만 늦었더라면 다른 부위로 전이됐을 확률도 높다.


아무래도 큰 병원이다 보니 소견서를 받고

3개월 후에 수술날을 잡았다.

당연히 암일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내 나이가 아직 한창인데 ㅜㅜ


건강검진으로도 찾아낼 수 없는 이런 종류의 암덩이는

만일 진단이 늦을 경우 정말 큰 화를 부를 수 있다.


공포의 수술실 풍경

담요를 덮었지만 수술실은 꽤 추웠다.

수술대 조명은 왠지 볼 때마다 공포를 조장한다.

공포영화에 수술대 이미지가 많이 나온 영향일지도.

어쨌든 난 침상에서 내려 수술대에 걸어 올라갔다.

수술대에 오르면 팔과 다리, 온몸을 꽉 묶는다.

(수술 후에 제일 힘든 건 소변줄이었다.

 한 사흘 정도는 소변을 볼 때 통증이 극심하다)


그렇게 맨 정신으로 수술대에 올라 온몸이 묶인 채

얼굴에 산소마스크를 끼운다.

그리고 하얀 분말의 약이 주입되면서

서서히 정신이 몽롱해진다.

어디까지 버틸 수 있나 했지만

순식간에 기억이 사라졌다.


그렇게 약 5시간이 넘는 종양제거 수술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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