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가이기 보다는 '몽상적인 이미지의 예술을 만들어내는 공학자'라고
스스로를 표현하는 이기봉 작가(1957~).
그는 세계의 본질을 탐구하며 회화와 설치를 통해
자신의 예술세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모호함이 세계의 본성'이라고 말하는 그는
여러 층위가 얽히고 설켜 나타나는 세계를 가시화 하는 작업을 합니다.
그의 작품 속 풍경에는 물과 안개가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특히 찰나의 순간에 존재를 드러내고 사라지는 '안개'는
그가 가시화하고자 하는 세계의 모호성을 도드라지게 표현합니다.
그는 캔버스 위 1cm정도의 높이에 얇은 천으로 된 막을 덧대는 독특한 기법을 사용합니다.
이는 그의 작품 속 안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공간의 깊이에
집중하는 그의 의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캔버스 표면의 막에도, 내부의 캔버스에도 그림을 그려
관람자가 보는 드러난 이미지와 그 뒤 숨겨진 이미지가 두개의 층위를 이루며
풍경의 모호함과 몽환적인 분위기를 배가시킵니다.
이기봉 작가가 그리는 풍경은 이렇듯 늘 안개로 뒤덮여 있습니다.
실체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은 흐릿하거나 혹은 혼란스러운 세상과 세계에 대한 표현입니다.
실재하는 것과 보이는 것-표면-의 간극.
그리고 불확실한 세계를 가시화하는 그의 작업은
맑고 투명한 것에 대한 어떤 동경을 불러 일으키기도 합니다.
비록 물안개에 휩싸이고 잠식된 듯한 세계가 실존이자 실재일지라도
그 뒤 감춰진 변하지 않는 선명하고 분명한 것들에 의해
우리는 어쩌면 이 흐릿하고 혼란스러운 세계를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사진출처: 국제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