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을 바라보는 사하의 눈이 반짝인다. 초록빛 호수를 닮은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행복해진다. 아름다운 인간의 신체를 모사하여 만들어진 대체신체, 그리고 안구 모델 중 가장 아름다운 모델 YK5008. 완벽하게 조율된 홍채의 패턴, 자연광 아래서도 인공적인 빛을 잃지 않는 투명도. 나는 그녀의 눈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저 눈은 결코 늙지 않을 것이고, 저 피부는 결코 주름지지 않을 것이며, 저 몸은 결코 병들지 않을 것이라고.
나의 여자친구 사하는 알터이다. 그리고 나는 네처이다.
2040년, 대체신체의 판매가 시작되었다. 인간의 뇌를 대체신체(alternative body)에 이식하는 방식으로 뇌사하지 않는다면 영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부유층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거리에서 대체신체를 가진 사람들을 보면 사람들은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들 같았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냉동 상태로 보관되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2040년, 우리는 이미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던 많은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물론 몸은 다른 형태로 바뀌었지만 말이다. 젊고 아름다운 몸으로 돌아온 그들을 보며 사람들은 말했다. "저것이 미래다." "저것이 진화다." "저들은 선택받은 자들이다."
대체신체를 가진 사람들을 우리는 '알터(alter)'라고 불렀다. 그리고 태어난 신체 그대로인 사람들, 아직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을 '네처(nature)'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중립적인 용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네처라는 단어에는 미묘한 뉘앙스가 생겼다. '아직 구형 신체에 머물러 있는 사람.' '변화를 선택하지 못한 사람.' '낡은 육체에 갇혀 있는 사람.'
알터들은 당당했다. 그리고 그들의 선택을 자랑스러워했다. SNS에는 대체신체를 받은 사람들의 인증 사진이 넘쳐났다. 그리고 네처들은 조용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 즉 낡아가는 몸과 유한한 시간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감기에 걸릴 때마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우리가 무엇을 가지지 못했는지.
2041년, 알터차별금지법이 시행되었다. 알터들에게 불리한 대우를 금지하는 법이었다. 고용, 교육, 공공서비스에서 알터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정작 차별받는 건 네처들이었다. 명시적이지 않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다. 채용 공고에 '젊고 활기찬 인재'라고 쓰여 있을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장기 근무 가능자'라고 쓰여 있을 때, 그것이 누구를 원하는지.
알터가 늘어날수록 존댓말은 사라졌다. 나이로 사람을 판단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스물다섯처럼 보이는 사람이 실제로는 일흔 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더 이상 일흔 살이 아니었다. 그들은 스물다섯 살의 몸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네처들은, 실제 나이대로 늙어가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스물여덟 살이었다. 아직 젊었다. 하지만 이미 눈가에 잔주름이 생기기 시작했고, 허리가 가끔 아팠으며, 밤늦게까지 일하면 다음 날 회복이 더뎠다. 나는 거울을 볼 때마다 생각했다. '나는 늙어가고 있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알터들을 볼 때마다 생각했다. '저들은 늙지 않을 것이다.'
대체신체는 비쌌다. 보험도 적용되지 않았다. 내 연봉으로는 평생 모아도 살 수 없는 가격이었다. 때때로 나는 광고를 보았다. "당신의 새로운 삶이 기다립니다." "영원한 젊음을 선택하세요." "한계를 넘어서세요." 광고 속 모델들은 모두 알터였다. 그들은 빛나고 있었다. 나는 화면을 끄고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의 나는 빛나지 않았다. 어떤 날은 분노했다. 왜 나는 선택할 수 없을까? 어떤 날은 체념했다. 이것이 나의 운명이다. 나는 이 몸으로 살다가, 이 몸으로 늙고, 이 몸으로 죽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날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대해 슬프기도 했다.
2058년 어느 날, 나는 그녀를 만났다. 알터인 그녀를. 그리고 내 삶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동네 카페에서였다. 그 카페는 실시간생성형 AI 뮤직 스트리밍이 아닌 인간이 만든 2040년 이전의 음악이 나오는 몇 안 되는 곳이었다. 20세기에 지어진 주택을 개조한 이 카페에 나는 자주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산미 가득한 원두향이 가득했고, 과거에는 누군가의 집이었을 이 공간에서 나는 편안함을 느꼈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알터도 네처도 없이, 그저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만 있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2층으로 올라가 자리에 앉았다. 카페 스피커에서 귀에 익은 기타 전주가 흘러나왔다. 나는 생각을 멈추게 되었다. 이 곡은 나에게 특별한 곡이었다.
중학생 때 어느 날, 꿈속에서 알지 못하는 노래가 계속 흘러나왔다. 잠에서 깨고도 꿈속의 멜로디를 잊을 수 없었다. 그 노래는 실제 존재하는 노래였을까, 아니면 꿈이 만들어낸 환영이었을까?
그리고 다음 해 할아버지 집에 갔던 어느 날, 나는 그 노래를 다시 듣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낡은 CD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그 노래. <My Good Deed>. 활동 당시에도 유명하지 않았던 미국 인디 록밴드의 노래였다. 어째서 이 노래가 나의 꿈속에서 계속 반복되었을까? 어쩌면 이 노래를 자주 들었던 할아버지와 함께 자랐던 어머니도 그 노래를 좋아했고, 내가 어렸을 때 무의식중에 들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면 꿈속에서 정확하게 이 노래가 재생되었을 리가 없다.
초자연적인 어떤 존재가 내 꿈속에서 그 노래를 틀어주었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단지 나에게도 그런 비과학적인 일이 생기길 바랐을 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해지는 시대에, 나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갈망했다.
2058년, 그 카페에서 <My Good Deed>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이 카페에 자주 와서 그럴 것이다. 뮤직플레이어의 추천 로직은 한편으로는 소름 끼칠 정도로 정확했다. 나는 <My Good Deed>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게 나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고는 깜짝 놀랐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창가에 나를 등지고 앉은 긴 머리의 여성이 있었다. 그녀도 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이 희귀한 노래를. 나는 무언가에 이끌린 듯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이 노래 아세요? 이 노래를 어떻게 아세요?"
깜짝 놀란 초록색 눈의 여성이 뒤돌아보았다. 나는 반짝이는 그녀의 초록색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호수 속에 빠져 들어가 버렸다. YK5008. 나는 즉시 알아보았다. 그녀는 알터였다. 그 눈은 인간의 눈이 아니었다. 너무 완벽했다. 너무 아름다웠다. 햇빛을 받아도 흐트러짐 없이 빛나는 초록빛. 나는 순간 움찔했다. 내 눈은 어떻게 보일까? 충혈된 흰자, 불규칙한 홍채, 피로에 지친 눈가. 나는 본능적으로 그녀에게서 시선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웃었다.
"이 노래요? 좋아하는 노래예요."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당연하다는 듯한 어조였다. 마치 이 노래를 아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듯.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 노래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을. 이 카페에서조차 이 노래가 흘러나온 건 처음이었다.
"저도 좋아해요. 아니, 특별한 노래예요. 제게는."
나는 서툴게 말을 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의 눈을 다시 보았다. 완벽한 초록빛.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저 눈 뒤에 있는 뇌는 얼마나 오래된 것일까? 저 사람은 실제로 몇 살일까?
"앉으실래요?"
그녀가 맞은편 자리를 가리켰다. 나는 주저 없이 앉았다.
우리는 그 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는 이 노래를 오래전부터 좋아했다고 했다. "오래전이요?" 내가 묻자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네, 아주 오래전부터요"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에는 뭔가 숨겨진 무게가 있었다.
나는 그녀가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궁금했다. 그녀의 원래 몸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했다. 그녀는 왜 대체신체를 선택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나는 묻지 않았다. 알터들에게 나이를 묻는 것은 무례한 일이었다. 그들은 더 이상 그 나이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은 새로운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었으니까.
대신 나는 물었다. "이 카페에 자주 오세요?"
"아니요. 처음이에요."
그녀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완벽한 피부, 흐트러짐 없는 윤곽. 그리고 문득 질투가 났다. 나는 언젠가 늙을 것이고, 그녀는 영원히 저 모습일 것이다.
"저는 자주 와요. 여기가 편해서."
나는 말했다. 그녀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 눈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움찔했다. 그녀는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네처. 아직 선택하지 못한 사람. 낡은 육체에 갇혀 있는 사람.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저 호기심만이 있었다. 그녀가 나를 보며 웃었다. 그 웃음에 세상의 모든 논리가 느슨해졌다. 우리가 함께 마시는 커피 잔의 온도처럼, 점점 미묘해지고 있었다.
나는 그녀와 자주 연락을 했다. 어쩌면 처음 그녀를 만났던 날부터 나는 그녀가 나의 여자친구가 되어주길 바랐다. 단 한 번도 이성교제를 해본 적 없었지만, 그녀와의 만남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두려웠다. 그녀는 알터였다. 그녀는 영원히 젊을 것이고, 나는 늙어갈 것이다. 그녀는 완벽했고, 나는 결함투성이였다. 우리 사이의 간극은 너무 컸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에게 끌렸다. 그녀의 초록빛 눈,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 그녀와 나누는 대화. 무엇보다 그녀는 나를 '네처'로 보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나를 보았다.
나의 잦은 연락에도 그녀는 나를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인연이 연인이 되어가는 과정은 알지 못했다. 나는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부족함이 없었고, 그녀에게 용기를 내기로 했다.
<내일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카페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나는 그녀의 휴대폰에 메시지를 보냈다. 손가락이 떨렸다. 나는 네처이고 그녀는 알터이다. 이 고백이 우스꽝스럽게 보이지 않을까? 늙어가는 인간이 영원한 존재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 얼마나 덧없는 일인가?
<네. 내일 오후 7시 괜찮으세요?>
그녀에게서 빠른 답장이 왔다. 나는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알고 있을까? 내가 그녀에게 무엇을 느끼는지. 나와 그녀 사이의 간극을.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제한적인지.
<네! 내일 오후 7시에 만나요>
나는 답장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나는 일어나 거울을 보았다. 눈 밑의 다크서클, 약간 부은 얼굴, 자고 일어나면 생기는 잔주름들. 나는 세수를 하고, 피부 관리를 하고, 최대한 괜찮아 보이려고 노력했다. 나는 당최 어느 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하루 종일 시계만 수없이 바라보았다. 시간은 잔인할 정도로 느리게 흘러갔다.
평범한 일요일이었다면 아마 나는 TV를 보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TV를 켜지 않았다. 혹시라도 그녀가 '오늘 뭐 하셨어요?'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TV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고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마땅히 시간을 보낼 방법을 찾지 못하고 책상에 앉아 가상 모니터를 켜서 회사 워크넷에 접속했다. 주말에도 회사일로 바빴다고 하는 게 더 괜찮을 것 같았다. 예정에도 없던 회사 업무를 시작했다. 차라리 이게 마음이 편했다.
오후 5시부터 나는 이 옷 저 옷을 꺼내 입어 보았다. 그러고는 결국 하얀 셔츠를 골랐다. 그녀에게 깨끗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거울을 보며 생각했다. 이 셔츠가 내 피부의 칙칙함을 가려줄 수 있을까? 이 옷이 나를 조금이라도 더 나아 보이게 해줄까? 허둥대는 내 모습이 못 미더워 괜스레 웃음이 났다. 그래도 괜찮았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난 누군가를 좋아하는 나 자신에게 취해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래도 나는 그동안의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순간에 있었다.
7시에 맞춰서 나가야 할까, 아니면 일찍 가서 기다리고 있을까 고민했다. 걸어서 10분 거리의 그곳을 난 6시 반에 출발했다. 나를 채근하는 내 몸이 나를 가만히 두지 못했다.
카페로 가는 길에 나는 몇 명의 알터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빛나고 있었다. 석양 아래서도 완벽한 피부, 지치지 않는 걸음걸이. 나는 내 걸음을 보았다. 조금 구부정한 어깨, 피곤한 다리. 나는 허리를 펴고 걸었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카페에 도착해 2층으로 올라갔다. 그녀가 앉았던 창가 자리로 갔다. 나도 그 자리에 앉아 그때 그녀가 바라보던 창밖을 보았다. 그녀는 이곳에서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영원한 시간을 가진 사람은 무엇을 생각할까?
만나면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생각했지만 마땅한 말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겨낼 수 없을 만큼의 초조함이 나를 잠식했다. 나는 그녀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유한한 시간? 늙어가는 몸? 불완전한 사랑?
나는 창을 등지고 돌아 앉았다. 그녀가 2층 계단으로 올라왔을 때 바로 알아보고 싶었다. 그녀를 기다리면서 하릴없이 창밖을 보고 있는 뒷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부담스러울지 모르지만 난 2층 계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단에서 사람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자 심장이 마구 뛰었다. 아직 7시가 되려면 10분이나 남았기에 그녀일 리 없지만, 내 심장은 통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긴장에 익숙해질 시간을 주지 않았다. 계단으로 올라오는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YK5008, 아름다운 눈의 그녀였다. 석양빛 아래서도 빛나는 초록빛 눈. 흐트러짐 없는 머리카락. 완벽한 피부.
나는 일어서 그녀를 보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예요."
그리고 실없는 웃음을 지었다. 경직된 하관을 내가 통제할 수 없었다. 내 목소리가 약간 떨리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또 만나네요."
그녀는 자연스럽게 웃으며 마주 볼 수 있는 테이블을 눈치로 가리키며 앉았다. 그녀의 자연스러움에 질투가 났다. 그녀는 긴장하지 않았다. 그녀는 떨리지 않았다. 그녀는 완벽했다.
'그녀는 이런 상황이 처음이 아닌가 보다. 그녀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을까? 얼마나 많은 고백을 받아왔을까?'
나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싶었지만 모든 행동이 부자연스러웠다. 그저 의자를 빼고 맞은편에 앉으면 되는 건데도, 그것조차 복잡한 연산을 하는 컴퓨터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이 의자를 뒤로 빼낸다. 그리고 앉는다. 그리고 앞으로 당겨 앉는다.'
그녀는 웃으며 날 보고 있었다. 그래도 된다고 인자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색한 내 모습이 부끄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네처이다. 나는 불완전하다. 나는 긴장하고, 떨리고, 실수한다.
"다시 보고 싶었어요."
내가 한 말이지만 나도 깜짝 놀랐다. 나는 이런 말을 하라고 지시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말하고 말았다.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나는 사실 이성적으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전혀 선택할 수 없는 상태였다.
"저도 보고 싶었어요."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이 진심일까? 영원한 시간을 가진 사람에게 나를 다시 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그녀의 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그 눈이 너무 완벽해서 나는 판단할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떤 의미일지 생각해 봤지만 나는 연산이 되지 않았다. 대충 좋은 상황인 것 같았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그 중심에 그녀가 들어왔다. 이 세상에 그녀와 나 둘만 있는 것 같았다. 알터와 네처의 구분도, 완벽함과 불완전함의 차이도, 영원과 유한의 간극도 사라진 것 같았다. 이후로도 나는 회로가 불탄 기계처럼 아득했다. 그녀와 많은 말들을 했지만, 너무 부끄러운 나의 질문과 실수투성이의 대답들은 다시 떠올리기 힘들 정도였다. 그곳에서의 대화들을 포장지로 예쁘게 감싸 기억의 상자 깊숙이 밀봉해 버렸다.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나는 용기를 냈다.
"저는 앞으로도 계속 만나고 싶습니다."
내가 조금 더 신중하고 계획적인 사람이었다면 이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솔직했다. 그저 내 안의 소리를 말할 뿐이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늙어가는 동안 그녀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10년 후, 20년 후, 나는 늙은 남자가 될 것이고 그녀는 여전히 저 모습일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녀와 함께하고 싶었다.
"그래요."
그녀가 짧게 대답했다. 그 대답이 긍정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었다. 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초록빛 호수 같은 눈. 저 눈은 무엇을 보고 있을까? 저 눈에 나는 어떻게 비칠까?
"근데 이거 고백은 아니죠?"
감정의 동요로 어떤 실수라도 할 수 있는 비이성적인 나를 나무라는 듯한 엄중한 눈빛이었다. 그녀는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사이의 간극을. 내가 느끼는 두려움을. 나 역시 그런 그녀의 반응을 이해했지만, '그래요'라는 긍정의 답변에 이미 나는 잔뜩 고취되어 있었다.
"사실 고백 맞습니다. 저는 지금 용기를 내어 고백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때 이런 말을 하지 않았어야 했다. 세상에는 더 멋진 말과 유려한 표현들이 차고 넘칠 정도로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멋진 말을 하지 못했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그러지 못했다. 아니, 나는 다시 똑같은 상황이 온다고 해도 멋진 말을 하지는 못할 것 같다.
상냥함이 사라진 얼굴의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잠시 입술을 삐죽 올리더니 그녀가 대답했다.
"그래요. 그렇게 해요."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긍정의 표현이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그렇게 해요'라는 말을 여러 방향으로 검토하고 있었다. 어떤 경우라도 이 대답은 승낙의 의미로 받아들여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했다. 왜일까? 왜 그녀는 나를 받아들이는 걸까? 영원한 존재가 유한한 존재를 사랑한다는 게 가능할까? 아니면 그녀에게 나는 그저 스쳐가는 수많은 인연 중 하나일까?
나는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뻔했지만,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이 이 말을 잡아챘다. 나는 그저 헤벌쭉 웃어버렸다. 그리고 머리의 회로는 기능을 멈춰버렸다. 경험해보지 못한 과도한 연산량에 뇌가 절전모드로 전환된 것 같았다. 나는 그저 멍한 표정으로 실없이 웃고 있었다.
"무슨 생각하세요?"
그녀가 물었다. 도대체 나란 사람이 뭘 하고 있는지 어이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색한 고백을 하고 헤벌쭉 웃고 있는 나를 누가 봐도 어딘가 모자란 사람으로 생각할 것 같았다. 그녀는 분명 더 나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을 것이다. 더 매끄럽고, 더 세련되고, 더 완벽한 사람들을. 어쩌면 알터들도.
"고마워서요."
마지막 이성이 가까스로 잡아두었던 감사의 표현을 결국 나는 해버렸다. '고백을 받아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그녀가 웃어주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요령이 없는 나는 오늘 그녀에게 고백을 하겠다고 마음먹었고, 고백을 했고, 그녀가 고백을 받아주었다. 그 이후의 일을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는 청소를 완료한 로봇 청소기처럼 가만히 있었다.
"그러면 우리 이제 일어날까요?"
그녀는 나의 회복을 충분히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 아니었을까?
"네..."
나는 전혀 내키지 않는 대답을 했다. 나는 그저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영원이 있지만, 나에게는 없다는 것을.
카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미웠다. 나는 계단을 내려가는 것조차 어색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앞서 가던 그녀가 뒤돌아 나를 보았다. 나는 그저 웃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카페를 나와 그녀가 나를 마주 보고 섰다. 밤하늘 아래서 그녀의 초록빛 눈이 더욱 빛났다. YK5008. 최고급 안구 모델. 어둠 속에서도 선명한 시력을 제공하는 스펙. 나는 어둠 속에서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 위해 눈을 가늘게 떴다.
"우리 손 잡아 볼래요?"
그녀는 하얀 손을 내밀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가늘고 매끄러웠다. 너무 매끄러웠다. 인간의 손이라기보다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조각 같았다. 그녀의 체온이 내 온몸으로 퍼지고 있었다.
나는 내 손을 의식했다. 거친 손, 약간 땀이 나는 손, 완벽하지 않은 손. 그녀는 내 손을 느끼고 있을까? 그녀는 네처의 손이 어떻게 느껴질까?
우리는 말없이 제타웨이역 방향으로 걸었다. 그 길이 얼마든지 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생각했다. 이 길이 끝나면?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면? 나는 그녀를 붙잡아 둘 수 있을까? 거리에는 여전히 알터들이 있었다. 밤 늦은 시간에도 지치지 않은 그들. 그들은 우리를 보았을까? 알터와 네처의 커플을.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저 네처는 운이 좋군.' '저 알터는 왜 네처를 선택했을까.' '얼마나 갈까?'
그리고 역 입구에서 그녀가 내 손을 놓았다. 그 순간 나는 무언가를 잃은 것 같았다.
"그러면 또 봐요."
그녀는 생긋 웃으며 돌아서 갔다. 나는 순간 고개 숙여 인사를 할 뻔했다. 그래도 다행히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그녀와 이곳까지 걸어오며 나의 이성은 어느 정도 휴식을 가졌나 보다.
그녀가 사라진 그곳을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박한 나의 용기에 대한 과분한 포상 같은 그녀의 손 내음이 내 손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매끄러운 감촉의 기억이 남아 있었다. 마치 꿈을 꾼 것 같았던 시간이었다.
'그래요. 꼭 또 봐요.'
나는 속으로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며 그녀가 카페 계단으로 올라왔던 순간부터 지금까지를 복기했다. 다시 떠올리기 부끄러운 말들과 순간들조차도 그저 감사했다.
'그래요. 그렇게 해요'라는 그녀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그전에 입술을 삐죽 올렸던 것을 기억했다. 아마도 그건 '썩 내키지는 않지만'이라는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네처와 사귀는 건 쉽지 않을 텐데'라는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에 집착하자 들떠 있던 나는 불안해졌다.
오늘의 구두 약속이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 걸까? 우리는 정말 계속 만날 수 있을까? 나는 늙어가고 그녀는 변하지 않는데? 10년 후에도 그녀는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아니, 1년 후에도?
집에 도착해 거울을 보았다. 하얀 셔츠는 약간 구겨져 있었다.
2058년 5월 12일, 모든 것이 내가 바라는 대로 되고 있었다. 숨어있는 누군가가 나를 위해 만들어준 시나리오 같은 이 상황이 나를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나는 휴대폰을 들고 그녀에게 메시지를 썼다.
<오늘 정말 행복했어요.>
그리고 보내기 버튼을 누르기 전에 잠시 망설였다. 이 메시지가 너무 감정적인 건 아닐까? 너무 네처답게 불안정한 건 아닐까?
하지만 나는 보내버렸다. 그리고 바로 그녀에게서 답장이 왔다.
<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