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힘은 대단합니다.
"엄마! 나 헤어졌어!!!" 늦은 밤 둘째 딸 방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가까운 외침!
순간 아!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에 둘째 아이 방으로 달려갔다.
이제 중2인 우리 둘째 딸! 태어나서 처음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는 중이었다.
거실에 있던 아내가 빛과 같은 속도로 먼저 달려가 아이 침대에 함께 앉아 "진짜 헤어졌어? 하면서 물어본다.
방금 헤어졌다며 차분히 말하는 딸! "어? 별로 충격적이지 않았나?"하고 생각하는 순간 "우와 아아악~~!!" 하며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린다.
연애경험 5회를 자랑하는 하지만 현재는 솔로가 된 지 아득한 우리 첫째 딸이 누가 먼저 헤어지자 했냐며 울고 있는 동생에게 물어본다.
울면서 말하기를 자기도 요즘 달달이(남자친구 예명)의 행동이 예전 같지 않아 이별을 생각하고는 있었는데 그동안의 정으로 미안해서 헤어지자 말 못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근데 달달이가 먼저 문자로 오늘 헤어지자고 한 것이다.
순간 애 엄마와 언니 입에서 동시에 "와! ㅇ레기네!!"하며 달달이 욕을 시작한다. 언니는 그 순간에도 네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어야지 아우! 하면서 분해한다. 엄마는 "그래 달달이는 우리 딸을 힘들게 했어 잘 됐어 더 좋은 남자친구 만나면 돼"하며 꼭 안아 주고 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이 모든 대화가 오고 갔다. 계속해서 울고 있는 동생에게 언니는 너의 흑역사를 기록해 줄게 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영상 녹화를 시작한다. 울면서 찍지 말라고 소리치다 자기도 웃기는지 웃다가 정신이 없다.
대문자 T(요즘 언어로 T발롬)인 나는 "사귀다 헤어질 수 있지 헤어졌다고 ㅇ레기는 너무한 거 아닌가?"라는 엄청난 말을 무심결에 해 버리고 말았다.
잠시의 정적이 흐른 뒤 세 모녀의 폭풍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어떻게 딸 편을 안 들고 달달이 편을 드냐! 그게 지금 울고 있는 딸한테 할 소리냐! 아니 제정신이냐 라는 말까지 들었다.
아차 싶었지만 벌써 늦었다. 잽싸게 침대 위로 올라가 울고 있는 딸을 안아 주며 "이 놈의 달달이 처음부터 맘에 안 들었어 이 나쁜 놈 감히 우리 딸을 차?" 하며 달래 줬지만 영 반응이 없다.
그래서 다시 딸의 기분을 풀어주려 멘트를 날렸다. "축하해 우리 딸 이제 다시 FA시장에 자유연애 선수로 나왔으니 엄청난 남학생들이 우리 ㅇ서와 사귀려 도전할 거야" 으하하하!
나만 웃겼나 보다. 또다시 폭풍 잔소리가 나를 감싼다. 이 멘트도 실패다. 우리 첫째 딸이 자기한테도 그 소리 하더니 또 하냐며 뭐라 뭐라 한다. 그래서 우리 ㅇ지는 FA시장에 너무 오래 있는 거 아니냐고 했다가 결국 안방으로 쫓겨났다.
사실 조금 오버한 것도 있고 상황에 안 맞는 개그를 던진 것도 알고 있다. 얼마 전부터 둘째 아이 연예전선에 빨간불이 들어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집에서 굉장히 예민하게 굴고 자기 성질대로 버릇없이 하는 행동이 보이곤 했다. 남들보다 조금 긴 사춘기 기간에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던 시기다. 가족보다는 친구를 찾는 모습을 볼 때면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할 정 도로 가족이란 울타리에 약간의 틈이 보이는 듯했었다.
그런데 남자친구와 헤어지자 그 슬픔을 가족을 통해 치유하려 하는 둘째 딸을 보며 그동안의 서운한 감정은 눈 녹듯 다 사라지는 듯했다. 아무리 티격태격 싸우는 언니, 동생이라도 함께 화를 내주며 무조건 적인 편을 들어주는 오로지 내편인 언니, 그리고 한없이 넓은 가슴으로 우는 아이를 안아서 달래주는 엄마
이런 모습을 보며 순간 너무 행복하다 생각이 들어 되지도 않는 농담을 던지며 기뻐했나 보다 싶다.
우리 둘째 딸은 헤어져서 슬픈데 이러한 이별의 아픔을 통해 우리 가족의 사랑이 느껴지니 어찌 기쁘지 아니할 수 있을까?
이 일을 계기로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은 그동안 잊고 있었지만 가족이란 것을 조금은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우리 사춘기 둘째딸이 말이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사춘기 우리 딸은 예전의 우리 착한 딸로 돌아오고 있다. 나 역시도 조금 더 부드러운 말투 그리고 사랑이 느껴지도록 행동하려 더 노력하고 있다. 언제나 학교 갔다 오면 하루 일과를 참새처럼 재잘재잘 거리던 예쁜 딸이 달달이와의 이별뒤 나에게 다시 날아와 내 어깨에 앉는 듯하다.
이쯤 되면 나는 달달이에게 '헤어져 줘서 고마워'라고 인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리고 궁금해지는 것은 나의 첫 이별은 누가 위로해 줬지? 아! 맞다 나는 지금 아내가 첫사랑이라 헤어진 적이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