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메아리X슬릭의음악감상회' 감상기 @스트라디움
'남메아리'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꽤나 예전, 이적 콘서트의 세션으로서였다.
처음 간 그의 콘서트가 2011년이었는데 그때도 세션을 서셨는지는 10년 전의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마는 특이한 성함 덕에 세션 소개 때 뇌리에 남았었다. 그 후 두 세 해 정도 지난 어느 날의 콘서트에서 입이 떡 벌어지는 건반 연주를 들었다. 그 날의 공연에서 메아리님은 내 안에선 건반이 반 이상을 했다고 생각할 정도의 엄청난 연주를 들려주셨고, 그때부터 내 안에서 '남메아리'라는 네 글자의 고유명사가 확실히 각인된 것 같다. 이후부터는 아주 당연하게도 이적 콘서트 겸 남메아리 연주회를 들으러 가게 되었다. 물론 내 최고 소망인 게스트 혹은 세션으로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가 있는지도 초미의 관심사였지만.
2019년에는 하필 캐나다에서 남메아리 밴드의 1집 소식을 듣고 겨우겨우 유튜브에서 한 곡 두 곡 찾아서 앨범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앨범은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순서대로 들어야 맛, 이라고 생각하는 고리타분한 꼰대라 파편처럼 겨우겨우 찾아 듣는 아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만, 추후 전곡이 제대로 업데이트되어 행복하게 즐겼던 기억이 있다. 집으로 앨범을 배송시킬까 고심하다 언젠가 공연장에 가서 사 듣자며 고사한 것은 오늘의 가장 큰 한이 되었지만.
이번 2집 House on the rock이 발매된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에야말로 연주를 직접 들으러 가겠노라고 벼르고 있었지만 스트라디움의 stage 30은 예매도 힘들뿐더러 운이 나쁘면 집에서 편도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에, 평일 저녁 8시라는 공연 시간에 도저히 맞출 상황이 아니어서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었다. 그러다 갑작스러운 음감회 소식에 부리나케 일단 예매를 하게 되었다.
라이브 연주가 아닌 음악 감상회라 아쉬움은 있었지만 연주자 본인과 함께 하는 감상회라는 게 좀처럼 없기도 하고, 애초에 녹음을 스트라디움에서 했다는 정보를 보고 스트라디움의 오디오가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에 굿걸을 정주행하고 슬릭에 대한 사랑이 넘쳐나던 것도 한몫을 하기도 했다. 오늘의 글은 어제 낮 스트라디움에서 있었던 '남메아리X슬릭의 음악감상회'의 후기이다.
이번 앨범을 녹음한 피아노는 뵈젠도르퍼라는 그랜드 피아노는 무려 스타인웨이보다도 비싼 피아노라고 한다. 3억에서 3억 5천을 호가한다는 이 어마어마한 가격의 피아노를, 스트라디움에서는 주문제작을 하였다고 한다(출처: 韓氏아저씨 블로그 https://blog.naver.com/1006hjy/222086851332). 정말 실제 연주를 못 듣고 온 게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지만, 메아리님이 요즘 손목이 안 좋다고 하셔서 아쉬운 만큼 걱정이 되더라. 빨리 쾌차하셔서 멋진 연주를 들려주셨으면...!
오늘의 음감회 진행자인 슬릭님께서는 메아리님에 대한 사랑과 경건한 마음을 담아 예배 식순처럼 음감회를 진행하신다고 하셨다. 다만 사랑이 넘쳐나 할 말이 너무나도 많았던 관계로 식순은 끝까지 진행되지 못하였기에, 다음 회차를 유튜브 라이브로 생중계해주셨다! 슬릭님은 사랑입니다♥
2집의 제목인 House on the rock은 '반석 위에 지은 집'이라는 뜻이다. 기독교인이라면 모를 수가 없을 모래 위의 집과 반석(기초를 잘 다진) 위의 집에 대한 비유를 듣자마자 어떤 느낌으로 이 앨범의 제목을 정하셨는지 왠지 모르게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왜 성경 구절에서 제목을 따오셨을까 했는데, 개척교회 목사님이신 아버지로 인해 어릴 적부터 교회에서 반주를 하셨다고(반주자셨던 건 알고 있었지만 집이 교회였다니)! 전형적인 목회자 집안 딸의 루트로 피아노를 시작하셨던 것이었다... 주변에 그런 이들이 좀 있는 편이라 그런지 메아리님의 실물을 보자마자 털털하고 성격 좋은 교회 연주자 언니 혹은 간사님 느낌이 들었는데 그것이 사실이었을 줄이야...
음감회 후 검색을 하다 미국 유학시절, 나이지리안 교회에서 반주를 하면서 음악적 자양분을 쌓았다(출처: 시리즈뮤직스페셜 [SPECIAL] '남메아리 밴드'의 출사표, 남메아리밴드 1집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6184456&memberNo=24373938&vType=VERTICAL)는 글을 보고 한국 교회와는 달랐던 밴쿠버 현지 교회에서 받았던 그 느낌이 떠올랐다. 분명 학교에서와는 또 다른, 많은 것들을 얻으셨으리라.
음감회가 진행될수록 피아노 한 대만으로 이렇게 꽉 찬 앨범을 만들어내는 그의 대단함에 소름이 끼쳤다.
포문을 여는 Amazing Grace(그래, 우리가 아는 그 곡을 모티브로 한 곡이다. 그냥 제목만 같을 거라고 아무 생각 없이 들었던 무지함을 반성했다.)부터 시작해 레코딩 당일에 연주가 되지 않아 아쉽게 사장되었다는 안타까운 곡들에 대한 이야기와(언젠가는 발매해주시겠지...!) 그로 인해 탄생한 Dusk 시리즈.
G키로 시작해서 끝엔 G#이 나와버리게 되었다는 듣다 보면 한없이 즐거움을 느끼며 내달리게 해주는 슬릭님 왈 걸스제너레이션, G_G. 위안부 할머님들을 생각하며 쓰셨다는 Blossom. 이 곡에 실린 보컬은 무려 남메아리님 본인이시라고...! 개인적으로 이 곡은 영상물의 OST로 쓰여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 미국에 공부하러 간 지 2주차, 비 오는 새벽녘 거실 셰어로 신세를 지게 된 지인의 카우치에서 마스터 키보드만 연결한 채로 서스테인 페달도 연결하지 않고 써 내려가셨다는 Being Lost.
듣기만 해도 사람을 즐겁게 해 주는 베이스 워킹의 Geri's Idea. 작고하신 재즈 피아니스트 Geri Allen의 베이스 워킹을 모티브로 쓰신 곡이라고 한다. 이 워킹은 캐럴에서 사용되었다고...!
She's Gotta Have It은 어느 날 넷플릭스에서 리메이크 영화를 본 후 원작을 찾아보시고 영감을 받아 쓰신 곡이라고 한다. 이 영화의 OST도 좋으니 들어보라고 하셔서 찾아보려고 한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곡, Your Blues. 며칠 전에 유튜브 뮤직으로 다운로드해 둔 곡들을 셔플 재생하다가 튀어나와 단숨에 귀를 사로잡아버린 무시무시한 블루스 곡이다. 휴 로리의 블루스 앨범인 Let them talk를 정말 미친 듯이 열심히 듣던 시절과, '대중음악의 이해'라는 교양 강의를 들으며 속절없이 블루스에 마음을 빼앗겼던 때와, 한 달 동안 매주 열심히 재즈 싱어 말로님의 재즈 역사 강의를 들으러 다니면서 '역시 블루스가 최고지...!' 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방에 있던 작은 브라운관 티비로 스페이스 공감을 매주 열심히 챙겨보며 미래를 꿈꾸던 10대 시절과 여기저기 공연장을 찾아다니며 음악을 듣던 20대 시절을 떠올리게 만든 하루였다. 요 근래 이렇게 가슴이 뛰었던 적이 과연 있기는 했었는가. 그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지쳐있던 내게 반짝이던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 무엇을 좋아했고, 무엇을 하고 싶었고, 무엇을 사랑했고, 무엇에 위로받았었는지 다시금 떠올리게 해 준 귀중한 시간이었다.
슬릭님의 남메아리 헌정곡을 기타 연주와 함께(!) 들으며 축도와 함께 음감회가 마무리되었고, 후다닥 달려 나가 소소한 취미인 공연장에서 시디 사기를 실천하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들어가 보니 사인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사인을 요청드리면서 주절거리니 메아리님께서! 감격스럽게도! 닉네임을 기억해주셔서 정말 깜짝 놀랐다! 반가워해주시면서 손도 잡아주셔서 어찌나 기뻤는지...! 뒤에 기다리는 분께 죄송해서(그런 것치곤 너무 떠들었지만) 인사를 드리고 슬릭님께 조심스레 사인을 요청드리며 가장 좋아하는 세 곡 얘기를 드리면서 TMI의 날개를 펼쳤다. 그동안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드디어 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즐거웠다. 그래도 나이를 먹었다고 비록 손은 떨었지만 어릴 때처럼 목소리를 덜덜 떨며 횡설수설은 안 해서 늙어감의 장점도 새삼 깨달았다.
사실 그동안 1집이 남메아리밴드의 1집인 줄 알고 있었어서(남메아리 1집과 밴드의 1집은 다른 앨범이었었는데...!!!) 메아리님께 1집과 이번 앨범이 다른 느낌이어서 어쩌고 하는 소리를 했는데(착각하면서 Back to basic 인가, 하는 생각도 하고...) 공연장을 나와 검색하다 보니 1집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집에 와서 헤드폰을 끼고 들은 1집에서 귀에 콕 박혀버린 곡도 소개해 보려고 한다. 이 곡도 듣다 보니 들은 기억이 있는 걸 보니 연주를 봤던가 들어놓고도 멍청하게도 잊고 있었던가 둘 중 하나겠지.
남메아리(Meari Nam) - Cohiba | TUNE UP with MNET
집에 와서 헤드폰으로 세 가지 앨범을 돌려 들으면서 감격하면서, 역시 괜찮은 리시버 하나는 꼭 품고 살아야 한다는 새삼스러운 교훈을 얻고, 구매한 CD에서 무손실 음원을 추출하여 들을 기쁨에 젖은 채로 이만 글을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