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니 쳉 '아시아 코미디언이 미국을 망치는 이유'를 보고 든 잡 생각
넷플릭스에서 로니 쳉의 스탠드업 코미디 쇼 '아시아 코미디언이 미국을 망치는 이유'를 보았다. 미리 알림은 해놨었지만 자꾸 대문짝만 하게 뜨는 얼굴이 부담스러워 찜한 콘텐츠에서 잠시 해지를 했다가 우연히 본 캡처가 흥미로워서 그대로 보게 되었는데, 이게 또 생각보다 재미있는 것이다.
초반부터 로니 쳉은 미국인을 계속 비꼬고 있다. 아시안인 나는 정말 너무 잘 알아듣겠는데! 알아듣지 못하는 것인지! 외면하는 것인지! 깔깔대고 웃는 미국인들에게 짜증이 났다. 그러다가 일본의 2차 대전 당시 아시아 국가에게 저지른 만행(한국인의 입장에선 피해 국가를 나열할 때 한국은 언급을 하지 않아 조금은 속상했지만)에 빗대어 ISIS를 얘기할 땐 웃지 못하는 대목은, 매우 통쾌했다. 이 곳에서 일본인들과 일본어로 일을 하면서 정말 어마어마한 차별과 괴롭힘을 당하고 겸사겸사 일을 그만두게 되었는데(이에 대해선 다음에 자세하게 쓸 예정이다), 그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정말 해맑게 딴 소리를 하는 서양인들에게 한 방 날려주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내가 그냥 한국에 있었다면 적당히 재미있었겠지만, 1 세계 국가에서 노동을 하면서 보니 좀 더 세세한 유머가 보여서 참 기분이 묘했다. 확실히 현지에 있으니 경험으로 알게 되는 부분이 있는 건 재미있긴 하다. 영화 '허슬러'를 관람했을 때 제니퍼 로페즈가 일을 그만두고 Old Navy(북미의 대표적인 저렴한 옷 가게)에서 일을 하던 부분이 어떤 의미인지 이젠 보였던 것처럼.
그리고 중국어를 발음할 때 한국어와 일본어와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이 확연히 느껴져 한국에 들어가면 중국어를 배워야겠다고 확실히 결심하게 되었다. 그전까진 성조와 한자가 싫다는 이유로 멀리했었던 내가 말이다! 이 곳에서 만난 중국어 구사자들이 모두 입을 모아 너는 일본어를 할 줄 아니 중국어도 같이 배워놓으라고 하던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 문화권도 다르고 언어 체계도 다른 영어보다는 적어도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인 중국어가 더 빠른 습득을 보일 거라는 건, 너무나도 자명한 이치 아닌가. 또한 이미 질려버린 영어를 제대로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게 이젠 더 빠르고 재밌을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지난달, 오로지 현지 친구를 사귀기 위해 일본어 학원 무료 트라이얼에 가서 본 현상과도 일맥상통하였다. 집주인분께 현지인들이 많을 거란 이야기를 듣고 가봤지만 정작 학생들은 전부 아시안들이었다. 물론 이 곳에서 학교를 나오거나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래도 나의 기대와는 달랐고, 가장 중요한 레벨이 맞지 않아서 등록은 하지 않았다. 가장 고급 과정인데도 JLPT N4 책으로 공부하더라! 아무리 내가 공부를 안 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3급을(현재 N3) 중 3 때, 그러니까 2003년에 따놓은 현 N1 보유자인데(레벨이 높을수록 숫자가 줄어든다)... 하지만 그 날 학원을 가본 건 참 좋은 경험이었다.
한국어를 외국인에게 가르치는 공부를 하고 있지만 정작 어떤 방식으로 실제적으로 적용하는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은데, 비록 일본어지만 교수 기법을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굉장히 재미있던 부분은 한자를 알고 있는 동아시아 문화권 사람들(싱가포르도 중국어를 쓴다고 하더라!)의 경우, 들어서는 그 단어를 모르지만 직접 칠판에 한자를 써주니 한자로 뜻을 바로 안다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인은 한자를 직접 쓰지 않으니 매우 불리하긴 하지만 그래도 타 언어권에 비해서 배우기는 굉장히 수월한 것이 중국어와 일본어인 것이다(비슷하거나 유추가 가능한 발음이 많음). 그러니 배우지 않으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솔직히 밴쿠버는 중국어만 잘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로 중국인이 많은 곳이니까! 1 세계 서양 국가에서 오히려 중국의 힘을 확실하게 경험하고 있다.
물론 현재 홍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중국인들이 홍콩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지는 연일 들려오는 소식을 통해 클릭 몇 번이면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중국어를 배우지 않을 이유는 되지 않는 게,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인지하고 홍콩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도 언어는 필요한 것이다.
여느 한국인과 같이 나 또한 중국인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좋지만은 않다. 생애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그것도 혼자 갔을 때 오사카성에서 기념품 메달에 메시지를 한 자 한 자 찍고 있을 때 우르르 몰려와서 굉장히 무례하게 내 물건을 건드리고 멋대로 굴었던 중국인들을 기억한다.
밴쿠버에서도 버스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중국어로 막 떠드는 중국인들을 마주치면 당황스럽고 조금은 짜증이 난다. 한국에서도 그러더니, 서양에서조차 동양인이면 다 중국어를 할 줄 안다고 생각하나 싶기도 하고.
또한 손님으로 마주하는 그들은 그다지 마주하고 싶은 편은 아니다. 물론 무엇이든 케바케, 사바사이긴 하지만 애석하게도 경험상 60%의 중국인 손님들은 무례하거나, 막무가내 거나, 다짜고짜였다. 정말 대하기 어려운 민족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나 자신이 중국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 어제 간 중국 식당에서 서버가 굉장히 무뚝뚝하길래 같이 간 지인과 이야기했는데 본인의 중국인 친구가 말하길 그것이 중국의 문화라고 하던 것이 본인도 인상 깊었다고 말하던 것처럼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 엄마는 내가 일본어학과에 가길 원했다.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어떻게든 큰 도움이 될 거란 생각에서였다. 뭐, 결국 가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다른 하나의 언어를 더 할 수 있다는 것은 양날의 검이라는 것을 이곳에서 철저히 느끼고 있다. 내가 일본어를 유창한 편으로 구사할 수 있기에 오히려 일본인들에게 차별을 받게 되는 것처럼. 그러나 한 편으론 제3의 언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로 부족한 영어 실력에도 불구하고 금전적인 걱정은 덜한 편이다.
그러나 내가 겪는 차별의 이야기를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하면 놀라거나 믿질 않는다. 그들이 영어를 사용해서 소통하는 일본인들은 항상 친절하거나 (영어를 못하기에)소극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일은 서로 싫어하는 만큼 서로 비슷하고 잘 통하는 부분도 많기에, 일본인들은 조용하고 깔끔하고 착하던데,라고 말하는 것이다. 일본인과 직접 마주 보고 장시간 대화를 한 건 이번이 처음이긴 한데, 나는 정말이지 그들에게서 학을 뗐다. 영어로 대화할 때는 보이지 않던 그들의 외국인 차별이 일본어를 하는 순간 확 나타난다. 정말 비상식적일 정도로 말이다. 무엇이든, 아는 만큼 보인다.
다운타운에 있는 밴쿠버 중앙 도서관에 가면 몇 층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시아의 문화에 대해 전시해 둔 공간이 있다. 한쪽은 일본, 한쪽은 중국의 복식과 문화를 작은 유리관 안에 전시해 두었는데(이해를 돕기 위해 발로 찍은 3년 된 폰카로 찍은 사진을 첨부한다) 이것을 보고 정말 속상하였다. 여기에도 우리의 설 자리는 없었으니까! 마치 끼인 둘째처럼 본국에서도 거대한 첫째 중국과 가장 늦게 문물을 받아들였던 막내 일본에게 치이던 한국이! 밴쿠버에서도 이렇게 치이고 있다! 이 곳엔 이렇게나 한국인이 많은데도 말이다!
결국 힘을 갖는다는 것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 국가의 잘 쓰인 언어로 전달이 되었을 때 시너지를 일으킨다. 인간은 편한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모국어로 된 글과 외국어로 된 글 중에 어떤 것을 읽고, 또 어떤 것이 쉽게 이해되겠는가. 해당 언어를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당연히 모국어를 읽게 되고, 또 눈에 바로 들어오기도 한다. 이걸 생각해보면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선 좋은 콘텐츠라는 무기를 가지고 그 나라의 언어로 공략을 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수많은 연예인들이 그 어렵다는 중국어를 굳이 배워 중국으로 진출하겠는가. 그만큼 큰 시장이고, 영향력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있다. 학교를 가거나, 뜨는 분야에 종사하거나, 기타 등등 많은 것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것은 역시 언어이다. 힘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언어를 알아야 문화가 이해되고 문화를 알아야 언어를 비로소 더 확실히 이해하게 되는 그 상호작용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흥미도 없었지만 그 난해함이 두려워서 배울 생각이 전혀 없던 중국어가 이 곳에 와서 보니 매력적이게 느껴진다. 그만큼 중국어의 영향력을 몸소 느꼈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생각보다 음식이 입맛에 너무나 잘 맞기도 하고!
- 캐나다 밴쿠버에서, 2019년 12월 19일 목요일 오전 4시 45분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