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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사만화 Dec 25. 2020

나이 든 고모는 섭섭한 게 많다

그 옛날 장녀의 이야기

나에게는 나이 든 고모가 있다. 칠십이 훌쩍 넘었지만 고운 외모에 민요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소녀 같은 사람. 3년 전인가. 회사 일로 고모의 집에 한 일주일 정도 머문 적이 있다. 고모부를 보내고 혼자 지내지 꽤 된 고모는 무료하고 적막한 일상을 보낸지 오래다. 그런 일상에 자식도 손녀도 아닌, 전혀 생뚱맞은 나란 인간의 등장은 고모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은 게 분명했다. 고모는 나를 데리고 용인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고모 소유의 부동산을 보여주고, 새로 분양받게 된 아파트의 분양 부지(그냥 황무지)도 소개하며 노년임에도 자신이 삶을 얼마나 잘 꾸려나가고 있는지 보여주며 조금 으쓱해하기도 했다.


나는 그런 고모가 좋았다.

이른 아침 찬송가를 부르는 소리.

화들짝 웃는 웃음 소리.

친구들에 비해 자신이 얼마나 탱글탱글한지 자랑하는 이야기들.

그리고 어느 한편으로 나와 닮은 외모까지.

나는 고모처럼 늙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단 한 가지만 빼면!


고모는 섭섭병 중기 환자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잘 하다가도 갑자기 친정 형제들에 대한 섭섭함을 늘어놓곤 했다. 우리 아버지는 그 레퍼토리의 단골 주연배우였다. 어쩌면 지금의 나보다 어렸을 테니, 그러한 일들이 그녀에게는 제법 큰 일이었을 것이다. 형제들을 위해 출가한 자신의 집을 담보 잡혀주고, 살림 밑천을 쪼개 형제들에게 나누고, 병이 든 부모까지 돌봤어야 했던 그녀의 서른즈음은 자의 반 타의 반 누구를 위한 삶으로 점철되어 있었으니. 그렇게 물심양면으로 챙겨준 형제들 중 명절 때 전화 한번 하는 이가 없다는 게 섭섭도 할 만하다.


형제별로 섭섭한 이유도 다르고 다양했다.

큰아버지의 경우, 얼마 전 큰댁에 방문해 이야기도 하고 하룻밤 자고 오고 싶다고 했는데 큰아버지가 거절을 해서였고, 우리 아버지는 그 옛날에 고모가 분양받은 아파트에 들어가서 헐값에 양도를 받은 게 괘씸 사유였다. 막내 고모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여러모로 자신이 키우다시피 했는데 자기 살기 바쁘다고 전화도 잘 안 한다는 게 섭섭 포인트다.


고모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옛날 장녀들의 인생은 값 없는 희생, 보상 없는 희생이었구나 싶다. 그게 한이 되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모는 그 옛날에 여직 머물러 있다. 내가 살포시 "고모에게는 고모의 자식과 손녀손주들이 있잖아."라고 해도 고모는 내가 모든 친정 형제들을 대표하는 양, 나에게 자신의 서사를 와장창 쏟아붓곤 했다. 어쩔 때는 고모가 나를 우리 아빠로 생각하고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아빠한테 전하라는 의중이 담긴) 그 이야기에는 나의 인생도 얽혀 있어 때로는 듣기 힘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한편으로는 아빠의 인생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다는 부분에 흥미를 느끼기도 했다. 어려서 몰랐던, 누구도 얘기해주지 않았던 유년기의 조각들을 퍼즐 맞추기 하는 재미랄까.


아빠의 경우 섭섭병이 전혀 없다. 후회 병은 가끔 찾아오기는 했지만. 아빠는 장녀였던 고모와 달리 크게 희생을 하며 살아오지 않았다. 갖고 싶은 것을 갖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때때마다 필요한 시험에 합격하며 원하는 위치에서 은퇴를 했다. 반면 엄마는 섭섭병에서 빼면 섭섭할 섭섭계의 슈퍼스타이다. 세남매를 키워내느라  젊은 시절을 다 바쳤고, 다 키우고 보니 이제 노년이 되어 있었다. 이제 인생에 있어 낙이란 교회 친구들과 아빠뿐인 여인. 그러니 아빠에게 섭섭한 게 많을 수밖에.


빠른 속도로 세계가 변해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나는 그다지 섭섭하게 없는 독고다이다. 내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코어이기 때문에 큰 희생을 해본 적도 없고, 할 용의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발전하는 일에만 집중하면 그만인 그런 인생을 현재까지 살고 있다. 그런데 만약 나도 누군가의 아내가 된다면, 엄마가 된다면 부득이한 희생으로 섭섭할 일들이 생기게 될까. 얼마 전에 출산한 친구가 홀로 육아를 하다가 아파트 40층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하지만 그러한 날들을 희생이라고 반추하며 섭섭의 에너지를 내뿜고 싶지는 않다.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에 등장하는 시선처럼 자신만의 길을 가고 싶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거뜬히 키우지만, 결코 어딘가에 섞이지 않는 단단한 고체 같은 여인이 되고 싶다. 그래서 말년의 인터뷰에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았노라, 라고 말하고 싶다. (말년에 누가 나 인터뷰를 해준다니 ㅋㅋ)


과거(현재도 그러려나), 장녀의 인생에 필수불가결했던 희생은 어떤 면에서 서글픈, 다이아몬드 같다. 너무 오래 묵혀둬서 단단하게 응고되어버린 광석 같은 눈물들. 그 눈물들을 보석으로 치환할 수 있다면 나는 나의 나이 든 고모에게 크고 반짝이는 다이아몬드가 알알이 박힌 목걸이를 선물해주고 싶다.


고모, 이제 섭섭한 거 잊고

고모 인생에 빛나는 순간들을

함께 추억해요.



*출판사 편집자로 종종 글을 쓰고 왕왕 영상 편집을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hYWeQvVA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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