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잔치는 말보다 음식이지

지식의 향연에서 음식을 향유하다

by 혜운


세미나니 콜로키움이니 학회니 하는 모임들이 많다. 이런 데를 다닐 때 가장 기대되는 것은 단연 식사이다. 보통 이런 행사는 좋은 호텔이나 컨벤션 센터에서 열리므로 식사를 뷔페로 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좋은 호텔에서 할수록 식사의 질이 높아진다. 이런 식사자리에 참석하는 재미로 이런 행사에 오는 사람들도 많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런 행사에 나오는 것은 지식을 넓히는 기회가 될 뿐 아니라 밥도 먹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게다가 행사 내내 자유롭게 먹고 마실 수 있는 스낵류와 커피는 덤이다. 아주 우아한 장소에서 우아한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는 좋은 기회가 아니라 할 수 없다.


학술적이고 공부해야 하는 장소 이야기를 하면서 뷔페니 군것질 거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다소 부적절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엄연히 다른 법. 학술적이고 지적인 갈증을 채우는 것보다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것이 더 즐거운 걸 어쩌랴. 먹는 본능이 지적인 호기심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것과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세미나장에서 이루어지는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할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그에 관한 지식을 쌓아 놓은 것이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내용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울 경우도 있다. 이걸 어떻게 알았는가 하면 공부를 많이 했음에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져서 그렇다. 그런데 보통의 경우 그런 자리에서 내용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질문이나 토의를 할 때에도 내용에 관한 '이해'의 수준은 이미 도달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뭘 묻기가 미안하다. 좀 젊을 때는 내가 모른다는 것이 들통날까 봐 두려웠다면 요즘은 괜히 토의 분위기를 망칠까 싶어서 걱정돼서 그렇다.

세미나 사진(편집).jpg


그런데 이 지점에서 우리가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생겨난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회생활을 두루뭉술하게 해야 한다는 것은 불문율이다. 모난 돌이 정 맞고, 삐져나온 송곳은 뭉툭해진다. 사람 능력과 지적 수준이야 거기서 거기일진대 나댄다는 소리를 들으면 피곤하다. 이런 마인드가 학문적으로도 만연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내용에 핵심이 없고 질문에는 날카로움이 없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는 것처럼 수많은 화려한 ppt에 인상 깊은 내용이 없다. 질문인지 발표자에 대한 찬양인지 자기 자랑인지 모를 공허한 반응이 발표의 뒤를 잇는다. 지식을 공유하는 자리에서 핵심이 뭔지 모를 이야기만 주고받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될까? 청문회나 조사받는 자리라면 그럴 수 있겠지만 이런 의견은 뚜렷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네가 몰라서 이해를 못 하는 거야'라는 말이나, '과도한 비판으로 연구자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버리라'는 말은 결국 같은 말 같다. '닥치고 뷔페나 즐겨'.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방법'이란 말을 쓰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