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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 Jun 20. 2023

[30대 대장암]1. 내가 암이라니?

1. 내가 암이라니?_진단

  제목 그대로다. 내가 암이라니?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지금 이 글은 대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한 후, 약 8개월 가량 지난 30대 여성이 쓰는 글이다. 내 인생에 암과 같은 중병이 한 번은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지금이 될 줄은 몰랐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지금 '살 만하며'(아니 살 만하다고 믿고 있으며) 사지멀쩡하게 이 글을 쓰고 있다. 암 걸렸다고 세상 끝난 거 아니며, 어쩌면 남은 인생을 조금 더 유쾌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간에 있었던 일을 조금 자세히 써 보기로 했다.

 



 나는 30대 극초반의 여성으로 살아오는 동안 이렇다 할 수술을 한 적은 없었고, 위도 대장도 건강하다고 믿고 있었다.  
 계속되는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 실패를 마주하면서, 잠시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진짜 멈출 거 같은 일이 일어나버렸다. 시험관 5차 시술을 앞두고, 계속 배꼽 위쪽 통증이 있어서 임신하면 여기가 아프면 안되니까 이걸 일단 해결하자는 요량으로 근처 내과를 갔다. ​​

2022.10.11. 인근 내과 방문
복부초음파 실시, 이거 뭔가 이상한데요? 큰병원 가세요!

2022년 10월의 어느 날,  근처 유명하다는 내과에 방문했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아파트 단톡방에서 여기가 정말 유명한 의사선생님이라고 해서 기다렸다. 한 2시간 기다렸던 거 같다. 병원 공기가 답답하고 싫었지만 명의가 명의인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며 기다렸다. 이렇게 유명한 내과는 점심시간이 2시간이나 된다. 오후 3시부터 한 2시간 기다려서 5시쯤에 겨우 선생님을 뵈었던 거 같다. 나이가 지긋하셨지만 눈빛이 매우 반짝이고 또렷하셨던 선생님.

선생님: 증상이 어떻게 되세요?


나: 배꼽 바로 위쪽에 위 경련 일어나듯이 간헐적으로 아픈데 최근에 그 횟수가 잦아졌고, 우측하복부에는 통증은 없는데 덩어리가 만져져요.


선생님: 덩어리? 만져볼까요?
           (만져본 이후) 초음파해봅시다.
            (초음파 이후) 이거 뭔가 이상한데. ct찍어보세요!

나: 그럼 위통증은 약은 따로 필요없나요?

선생님:  덩어리가 원인일 수 있어요. 큰병원 가세요.

이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심각할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약한 통증이겠거니 생각했고, 시험관 하는 데에 또 늦어지는 건 아닌가 싶어 약간 화가 나기까지 했다. 우선은 긴급하게 써주신 진료의뢰서와 복부초음파 씨디를 들고 지난 2월에 맹장수술을 받았던 대학병원으로 갔다.



2022.10.12. 대학병원 CT촬영
2022.10.17. CT 결과 들음
덩어리, 빈혈, 변비 - 대장암 의심되긴합니다.

 다음날 지체없이 대학병원을 예약했다. 원래 대학병원에서 CT촬영은 하루만에 안된다고했지만, 혹시 모르니 금식을 하고 갔다. 지난번 맹장수술할때 보셨던 선생님을 보고 조르고 졸라서 + 다행히 자리가 있어서 당일에 ct촬영을 했다.

선생님은 일단은 염증 같고, ct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자기 생각에는 암도 의심을 해봐야한다고 했다. 덩어리가 만져지는 것과, 빈혈(내 헤모글로빈 수치는 6.6이었다....성인여성의 절반..) 그리고 변의 형태변화(특히 변비)는 암 표지자라고 말을 했다.
 사실 그때 난 게실염이나 탈장 정도를 의심했는데, 17일에 나온 결과는 둘 다 아니고 대장의 한쪽 벽이 상당히 땅땅하게 굳어 있어서 덩어리가 만져지는 거라고 했다.
 좀 더 상세한 판단을 위해 대장내시경을 해보자고 하셨다. 대학병원에서 대장내시경을 하려면 거의 6개월은 기다려야하니까, 다른 인근 병원에 가서라도 빨리 해보는 게 좋다고 하셨다.
 병원을 미친듯이 찾아봤는데, 연말이라 빨리 되는 곳이 없었다.. ㅠ  아무리 빨라도 11월 초나 중순은 되어야.. 겨우겨우 찾아서 집 앞 조금 큰 내과로 가게 되었다. 진짜 다행이었다.

     


   
2022.10.19. 대장내시경 실시
2022.10.22. 조직검사 결과
암 덩어리가 대장안팎으로 자라고 있어요

정말 운 좋게 찾았던 연제구의 한 내과.
선생님을 조르고 졸라서 최대한 빨리 해달라고 한 게 19일이었다. 그래서 17,18일은 대장내시경 준비하느라 바빴다. 대장내시경은 요새 알약을 먹을 수도 있다고 해서 알약으로 받아왔다. 오라팡이라는 알약인데, 한통에 28알이 들어있고, 비급여 35,000원이다.
 먹는 방법은 14알을 먼저 전날 저녁에 먹고, 물 1리터 이상을 마신 후, 남은 14알을 다음날 새벽에 먹고 또 물 1리터를 마시는 것이다.
 그리 어렵지 않네 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물 마시는게 좀 고역이었다. 물비린내가 나서 나중에는 토레타를 계속 먹었다. 화장실을 자주 가긴했는데, 덩어리변은 한번만 봤고 나머지는 전부 겨자색 물설사만 잔뜩..ㅋ

 그렇게 준비된 상태로 19일에 대장내시경을 했다. 내시경은 금방 끝났는데 결과를 들을때 선생님이 그림을 보며 설명해주시면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하셨다.

선생님: 항문에서부터 내시경을 했는데, 염증이 있는 부분에는 염증이 너무 커서 내시경이 안들어가서 맹장인근까지는 보질 못했어요.  지금 저쪽 부위에 종양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잔뜩 자라서 대장 벽을 막고 있어 대장구멍이 상당히 좁아졌어요. 이게 밖으로도 자라서 덩어리가 만져지는 거예요. 대장 구멍이 작아져서 내시경도 통과하지 못했고, 음식물도 그걸 통과하지 못해서 역류하다보니 위쪽 통증이 일어난 거예요.
 우선 그 부분 조직을 떼서 조직검사 의뢰했으니 결과 나오면 연락드리겠습니다.

(22일 결과 나온 후)

네 조직검사 결과 나왔구요. 예상대로 안 좋네요. 암입니다. 대장암. 의뢰서 써줄 테니 상급병원 가시고, 산정특례 등록도 하세요. ​

네?? 암이요??? cancer??? 제가요? 제가 대장암?

 남편이랑 같이 들었는데.. 믿을 수가 없었다. 차분하게 선생님한테 궁금한 거 질문을 했는데 나올때 갑자기 눈물이 왈칵 났다. 뭐지? 서울가야하나? 수술해야하나? 뭐지??? 조직검사가 잘못될 수는 없나? 별 생각이 다들었다.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열심히 찾아보고, 백병원에 내과의사를 사촌오빠로 둔 언니한테도 전화해서 물어봤다.  돌아오는 답은 모두 같았다.
 조직검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이것은 암이 맞으며, 수술을 해야한다는 것.


 남편을 쳐다봤다. 순간 남편이 타조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조는 다른 짐승을 피해 숨을 때 모래밭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는다고 한다. 그 큰 몸뚱아리가 다 숨겨지지 않았는데 얼굴을 파묻으면 숨었다고 생각한단다. 생각보다 너무 큰 소식이라 현실을 직시하고 싶지 않아하는 남편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한바탕 싸웠다. 둘 다 겁이 났고, 아무말이나 내뱉었다. "죽을 병은 아니잖아!"라는 그의 말이 가슴에 콕 박히면서, 정신이 좀 돌아왔다. 나까지 모래밭에 얼굴을 묻을 수가 없었다. 이래저래 다시 화해를 하고, 어쨌든 지금은 주말이니까 월요일에 대학병원 가서 확실한 이야기를 듣자고 마무리를 한 후 부동산 임장을 갔다. 근처의 돼지국밥집에 가서, 남자들의 최애메뉴인 수육백반을 한그릇 먹이고, 10월 말의 선선한 가을날을 즐기며 신축 아파트 구경을 갔다. 하늘은 높고 맑았고, 잔디는 푸르렀으며 신축아파트는 예뻤다. 모든 게 평화로워보였다.  

   



2022.10.24. 대학병원 대장암전문의 진료1
2022.10.25. 대학병원 대장암전문의 진료2
암 맞습니다. 수술로 대장암 절제를 해야합니다. 동일의견!

 월요일에 남편이랑 대학병원에 갔다. 먼저 맹장수술 해주신 외과의사를 봤는데, 내시경결과 보자마자 암이 맞다하셨다. 대장을 절제해야하며, 자기는 간담췌 전문의이기 때문에 대장암전문의로 돌려주겠다했다.

 그러고만난 대장암전문의. 60대정도 돼 보이시는 인상좋은 선생님이셨다. 내시경결과, CT결과, 초음파 다 보시더니 암이 맞고, 절제술을 해야한다하셨다.
혹시 조직검사 결과가 잘못될 확률은 없나요? 하고 물으니, 그렇게 믿고싶겠지만 그럴확률은 0이고 수술해야한다고 하면서 수술날짜를 잡아주셨다. 당분간 먹는 거 조심하고 입원 및 수술 설명은 간호사에게 들으라셔 나왔다.

그래도 암인데.. 지방에서 해도 될까? 하는 고민이 없을 리가 없다. 일단 신촌세브란스와 부산의 다른 대학병원도 진료 예약을 했다. 삼성병원이나 서울대병원도 알아보았다. 그리고 열심히 대장암 수술에 관한 것도 검색..

그리고 아빠한테 전화..
아빠한테 가서 얼굴을 보고 말을 하고 싶었는데, 병원에서 생각보다 시간이 길어지고 도저히 시간이 안나서 전화를 드렸다. 회사 앞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절대 울지않기로 다짐하면서 전화를 걸었다. 암에 걸린 30대 딸이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다. 근데 이미 울고 있었다는 게 함정. 어쨌든 전화로는 우는 게 보이지 않으니까.
 일단.. 안심을 시켰다. 대장암이긴한데, 그리 심각지는 않은 거 같고 수술하면 낫겠더라.. 이렇게. 최대한 덤덤하고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 그리고 보험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서 빨리 이성을 찾을 수 있게 말을 했다.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다. 내가 걸려서 다행이라는.

엄마나 아빠가 걸렸으면 내가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보다 더 많이 울었을 거 같다. 그리고 그동안 임신이 안된 게 천운같다는 생각을 했다. 빈혈이 심하니까 피가 모자라서 착상이 안된거였는데, 행여라도 임신중에 알거나, 출산을 하고 나서 알게 되면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을까 싶었다. 찾아보면 다행인 요소들이 많았다.  

25일인 다음날 부산지역 다른 대학병원에 대장암전문의로 유명한 교수님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ct를 타병원에서 찍었기때문에 ct는 못보셨지만 내시경 조직검사 결과와 촉진을 해보신 후 암이 맞다고 하셨다. 잘라내야한다고. 그리고 이건 상당히 표준화된 수술이라 걱정안해도 된다고 하셨다.
 조금의 오차도 없는 동일한 의견을 듣자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오진은 아니겠구나 싶어서. ​​
  

   


      

2022.10.26.~ 회사에 알리기, 수혈, 입원준비

 이제 수술하기로 결심이 섰다.
나는 서울은 가지 않기로 했다. 어쩌면 이게 모험이 될 수도 있지만.. 가지 않기로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내 수술은 외과의사 입장에서는 간단한 편이다. 

     자르고 이어붙이기. 매우 표준화된 수술.
2. 나는 빈혈이 심해서 수혈을 받아야하고,

    자주 병원에 가야할지도 모른다. 서울 왔다갔다하면

    수술 하기도 전에 진이 빠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3. 대장구멍이 엄청 좁아져 있어서 음식 먹는 걸 조심해야하는데, 음식은 매일 먹기 때문에 잘못하다간 장이 막혀서 터질 수도 있다. 그럼 응급상황이 되는데 심각해진다.  그 전에 빠른 수술이 필요하다.


 신촌세브란스 한 번 가보나?하는 기대도 있었는데, 위 세가지 이유로 그냥 부산에서 하기로 했다. 어쩌면 내가 이 선택을 후회할 수도 있고, 이게 너무 큰 험이 될지도 모른다 하는 불안함도 있지만, 믿고 맡기기로! 의사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제대로 된 수술까지다. 그 이후는 내 몫이니 믿고 맡겨보자하는 생각이 들었다.

11일에 인근내과에 들른 후 2주만에 결정된 일들이다. 너무 놀랍지만 다행인요소도 많이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며 차근히 입원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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