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nkelvollkornbrot (딩켈폴콘브로트)
매일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은퇴한 우리 집 아저씨는 아침 댓바람부터 룰루랄라 빵을 구웠다. 오늘까지 방학이라 식탁에서 노트북을 켜고 밀린 일들을 하면서 게눈으로 남편을 훔쳐봤는데 드르륵드르륵 빵기계를 돌리면서 랄라 랄라 둘러보며 빵 안에 쏙쏙 박아 넣을 곡물들을 챙기고 있다. 부러움 반, 걱정 반이 섞인 한숨과 함께 나라도 어서 출근을 해서 엽전 한 냥이라도 더 벌어와야겠다 조용히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하던 일을 계속했다.
남편이 신나게 구운 빵은 딩켈폴콘브로트(Dinkelvollkornbrot)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독일빵이다. 합성어를 사랑하는 독일인들은 이름을 지을 때 좀 있어 보이게 길~~~ 게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데 딩켈-폴콘-브로트! 결국 빵!이지만 뭔가 많이 들어가 있음을 뽐내기 위해 이름이 길다.
먼저, 그 이름 속 딩켈이란 말의 정체는 고대 밀가루의 한 종류로 유럽에서 청동기 시대부터 재배해 오다 하얀 밀가루의 등장으로 한동안 사람들에게 외면당한 곡물이다.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라 흰 가루가 건강상의 이유로 의식 있는 자들에게 회피의 대상이 되면서 딩켈은 건강식품으로 떡상하며 현대인들에 의해 다시 불티나게 소비되고 있다. 딩켈 밀은 일반 밀가루에 비해 칼로리가 (아주 약간) 낮고 단백질 함유량이 약간, 아주 약간 높고 소화가 잘되는 데다가 식감이 쫄깃하여 맛있는 건강빵을 만드는 주요 밀가루로 추앙받게 되었다. 하얀 밀가루의 훌륭한 대체품인 딩켈 밀가루에 폴콘, 즉 통밀과 가지가지의 잡곡들이 왕창 들어간 빵(브로트)인 딩켈폴콘브로트는 독일에서 우리가 현미밥을 먹듯이 건강하게 식사를 잘 끝냈다고 만족감과 으스댐을 선사해 주는 빵이다.
딩켈밀과 통밀, 이스트를 섞어 물과 함께 반죽 기계에 넣어 드르륵드르륵 요란 뻑적지근한 소리를 내며 일분 정도 돌리면 반죽이 완성되는데 우리 집 반죽기계는 워낙 싸구려라 작동 시 소리가 아파트 전체를 다시 일으키는 것 같은 무시무시한 소리를 낸다. 창문이라도 열려 있으면 아마도 온 동네가 우리 집에서 빵 만드는 줄 알게 될 것이다. 어마무시한 소리를 1분간 견뎌내면 반죽이 준비되고 거기에 건강하다고 불리는 모든 종류의 씨앗을 투척하면 반죽 준비가 끝난다. 해바라기씨, 아마씨, 퀴노아, 호박씨 등을 반죽에 넣고 또 한 번 굉음을 내면서 반죽 기계에서 섞어준 후 빵틀에 안착시키면 된다.
살포시 빵틀에 얹은 후 붓으로 살살 쓸어서 모양을 잡아 주고 오븐에 넣으면 끝! 식탁에서 모든 과정을 게눈으로 지켜보던 나는 한 시간 남짓하는 시간 동안 구워지는 빵냄새를 맡으며 주린배를 잡고 어서 다 구워지길, 시간이 빨리 가길 기도하면 된다. 고소한 냄새가 오븐 틈새를 타고 나와 솔솔히 집안에 퍼지기 시작하면 아무래도 하기 싫은 일이 점점 더 하기 싫어지는 격렬한 감정과 싸워가며 빨리 빵이 구워져 나를 식사로 인도해 주길 하는 간절함이 절정에 달하게 된다.
드디어 오븐이 반가운 삡삡 소리를 토해낸다. 세상의 모든 기계음을 증오하기에 핸드폰 벨소리를 위시하여 모든 알람을 무음처리해 놓고 살지만 오븐이 다 되었다는 기계음만은 추앙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울림은 작품을 마쳤다는 오븐의 선언이자 혹여 작품이 잘못될까 꺼낼 때까지 절대 멈추지 않겠다는 책임감 넘치는 균형 잡힌 외침이다! 곧 나는 굶주린 배를 채우게 되고 다시 행복해질 것이라는 희망의 소리이기도 하다!
각설하고 어제 남은 린젠 수프에 마울타쉔을 넣어 재탕한 것에 겉바 속초의 고소한 딩켈폴콘브로트를 찍어먹었다. 수프는 하루 묵히면서 국물이 진해 지는 효과가 있어 재탕해서 먹으면 그윽함이 두 배가 된다. 여기에 방금 구운 빵을 적셔 먹으니 또 집에서 노는 남편이 한없이 사랑 스러워(?) 보였다.
아… 돈 벌어오는 엔지니어 남편이냐 은퇴하고 집에서 요리하느라 신난 남편이냐 둘 중에 고르라 하면 이 순간은 뒤도 안 돌아보고 은퇴하고 집에서 노는 요리사에게 한 표를 쿨하게 투척한다.
그러게 왜 나는 요것밖에 못 버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