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주-여수
독일 교포신문 3월 기고문입니다.
초고도로 연결된 세상에서 대학생들이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서 타국의 학문적 환경을 접할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은 중요하다. 학생들은 다양한 시각과 문화에 노출됨으로써 더 넓고 유연한 사고방식과 문제 해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되고, 인종과 국적이 다른 친구들과 상호 작용하고 낯선 학문적 접근과 의사소통에 참여함으로써 지적 경계를 넓히며, 다국적 기업에 취업을 하면 맞닥뜨리게 될 환경 적응력과 문화 간 이해가 필수인 상황을 미리 경험하고 대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학문적인 영역을 넘어서도 교환학생 프로그램에서 실질적인 경험을 하면서 배우는 것이 많은데 외국에서 생활하고 일하는 것 자체가 독립성, 유연성, 적응력, 회복 탄력성과 같은 필수적인 생활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외국인 학생들이 한국에 가면 새로운 대중교통 체계를 이해해야 할 것이요, 어설픈 한국어로 끊임없이 발생하는 일상적인 문제의 도전에 대처해야 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교실 밖에서도 끊임없이 정보를 얻고 활용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러한 경험은 개인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국제적 시각과 실력을 갖춘 졸업생으로 성장시켜 주기에 교환학생 경험을 가진 학생들은 경쟁적인 취업 시장에서도 눈에 띄는 후보자가 될 수 있다. 단순히 학점을 이수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학문적 경계를 넘어 전인간적인 교육, 즉 인격, 도덕, 사회적 기술, 문화 이해, 심리적 안녕 등과 같은 다양한 측면에 주의를 기울이는 교육을 경험하는 것이다. 인간적 가치, 공동체 참여, 문제 해결 능력, 리더십, 창의성, 협력 등의 능력을 더 큰 맥락에서 이해하게 되고 배운 것을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게 된다. 구체적으로 독일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는 학생들은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냈을까? 이번 기사에는 루르 보훔대학교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는 학생의 이야기를 담았다.
채식주의자로서의 여수와 광주 생활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피아 (Pia Marie Heyn)이고, 전남대학교에서 교환 학생으로 1년을 보냈습니다. 전남대학교에는 두 개의 캠퍼스가 있어서 가을 학기는 여수에서 보내고 봄 학기에는 광주에서 생활했습니다. 1년의 한국 생활에서 아름다운 여수와 매력 있는 광주를 반반씩 경험할 수 있었음은 정말 큰 행운이었습니다.
전남대 여수 캠퍼스는 광주 캠퍼스보다 작기에 교환 학생은 저를 포함하여 총 7명뿐이었습니다. 외국에서 온 학생의 수가 적다 보니 다른 교환 학생들과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어서 좋았고 더 많은 한국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습니다. 서울로 유학 간 친구들의 말을 들어보면 서울에는 교환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그들끼리 친교모임을 하느라 오히려 한국친구들을 사귀기가 쉽지 않다 하는데 저의 경우 한국 친구들과 함께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노래방도 자주 갔으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닷가에서 생일잔치를 해 봤습니다. 독일 중부에서 생활하던 나에게 바닷가에서의 생일잔치는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여수에서 케이블카도 타 봤는데 그때 보았던 여수의 야경은 평생 제 마음에 남을 것입니다.
여수 캠퍼스에서 공부할 때에는 일주일에 세 시간씩 네 번 있는 중급레벨의 집중 한국어 수업에 참여했었습니다. 그곳에서 배운 문법과 어휘의 대부분은 이미 독일에서 배운 것으로 새로운 내용은 많지 않았지만 백 퍼센트 한국어로 수업을 듣는 것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 해 전에 배운 내용을 한국어로만으로 반복해서 들으면서 정리가 되기도 했고 더 구체적인 한국어 문법설명을 듣다 보니 한국어 문법 구조를 이전보다 훨씬 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매주 두 번 "문화 수업"도 수강했었는데 이 역시 한국어로 진행되었고 읽기, 듣기, 말하기, 쓰기 모두를 골고루 강화시키는 수업이었기에 "정말 교환학생 오기를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수 캠퍼스에서의 한국어 공부는 이렇게 독일에서 접해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매우 만족스러웠지만 기숙사 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물론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은 재미있고 즐거움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늘 다른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은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한 저에게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습니다. 나만의 수면습관을 유지할 수 없어서 수면패턴이 흐트러지거나 잠을 제대로 잘 자지 못해 건강이 악화되기도 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학교 기숙사 식당에서는 식사를 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저는 채식주의자인데 기숙사 식당뿐 아니라 여수에서 채식메뉴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마트나 편의점에서 음식을 사서 조심스럽게 골라 먹거나 주변 식당에서 고기 없는 음식을 발굴해 가면서 먹었습니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익숙하게 채식을 할 수 있던 독일생활이 그리워져 많이 힘들었습니다.
광주에서 보내게 된 두 번째 학기에는 혼자 쓰는 스튜디오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그리고는 삶의 질이 한결 더 나아졌습니다. 독일에서 친구들이 방문하여 우리 집에서 머물며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고 광주에서의 삶은 여수에서보다 활기찼습니다. 교환 학생들이 많아서 더 많은 외국인 친구들이 생겼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아져서 바빠지고 생활에 활력은 더 생겼지만 여수의 친구들처럼 진심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오히려 적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즐거움 속에서 때때로 외로움을 느끼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은 광주냐 여수냐의 문제라기보다는 외국생활에서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지 싶습니다.
광주에서 좋았던 점은 채식을 하기가 훨씬 쉬워졌다는 것입니다. 거기서는 즐겨 찾는 음식점도 생겼고, 한 식당의 사장님께서는 저를 각별히 챙겨주셨습니다. 심지어 저희 부모님께서 방문하셨을 때 사장님께서는 공짜로 식사 대접을 해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했었는지 모릅니다. 한국의 어르신들은 너무나 따뜻하셔서 제가 광주에 있었을 때 기억에 남는 아름다운 순간들은 대부분 어른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봄 학기에는 영어로 진행하는 수업만 들었지만, 대분이 한국 문화와 관련된 수업이었습니다. 전통 음악, 한국 민속, 그리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배웠습니다. 수업은 매우 흥미진진했고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의 1년 동안 저는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고 한국 내 다양한 장소를 여행하며 한국어와 한국 문화, 무엇보다도 한국 사람들의 일상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었고 기회가 되면 꼭 다시 한국을 찾을 것입니다.
서울이 아니라 대구를 선택한 이유
저는 메렛 (Meret Kämper)이고 경북대학교에서 1년 동안 교환 학생으로 지냈습니다. 작문, 말하기, 읽기 등의 한국어 수업과 함께 한국 문화 수업을 수강했었는데요, 한국어 인증 시험인 토픽(TOPIK) 시험도 함께 준비했었습니다. 집중적으로 한국어 공부를 하다 보니 어려운 글을 읽는데도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한국어로 작문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는 과정이 정말로 보람 있고 재미있었습니다. 독일 대학에 있을 때에는 한국어에 대한 지식을 배우기는 했지만 스스로 읽고 쓰는 연습을 할 기회는 많지 않았거든요.
많은 학생들이 서울로 유학 가기를 원하는데 저는 처음부터 경북대학교가 가장 우선순위에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서울에는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한국어를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관광을 가는 것도 아니고 한국학을 전공하면서 한국에 가서 영어로만 말하다 오는 것은 유학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들어서 서울에 비해 외국인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대구를 유학지로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저의 선택은 틀렸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구에도 외국인 학생은 꽤 많았고 교환 학생 중 한국어를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혹은 영어가 편하기에 다들 영어로 소통했을 수도 있겠고요). 그래서 일단 같은 교환학생들과는 거리를 두면서 한국 친구들을 더 많이 사귀려고 애쓰고 시내를 다니면서 일상에서 한국어를 최대한 많이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식당, 카페, 박물관 등에서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때마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닥치는 대로 한국어로 소통하고자 애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열심히 한국어를 하는 것에 대해 칭찬을 많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노부부가 운영하시는 식당에서 밥을 먹으러 갔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 두 분께서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으셨어요. 저와 어떻게 의사소통을 해야 하나 생각하며 당황하신 것 같았습니다. 재빨리 한국어로 주문을 하자 두 분의 굳은 표정은 바로 인자하게 바뀌셨고 친절하게 응대해 주셨습니다. 짧은 한국어지만 제가 이렇게 한국어를 사용할 때마다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친절을 베풀어 주는 것에 늘 감동받았습니다.
한 번은 오래된 거리를 재현해 놓은 공간을 경험하기 위해 대구 문학관에도 찾아갔었는데 거기서 만난 사람들이 제게 관심을 보이셨어요. 어디서 왔냐고. 비록 저의 대답은 "독일에서 온 교환 학생입니다"로 아주 짧았지만 한국말을 잘한다고 많이 칭찬해 주셨고 그런 분들의 관심과 격려가 모이면서 저는 점점 더 한국어로 이야기하는데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반면에 어디를 가던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불편이 있었습니다. 슈퍼를 가든, 대중교통을 이용하든, 그냥 길을 걸을 때조차도 사람들이 너무 쳐다보니 불편하고 늘 피곤함을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 늘 지쳐하며 살았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런 시선에서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자유로워지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한국에서 체류기간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이 제게 영어로 말을 시키는 것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외국인이니 한국어를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베푸는 친절이 분명하였지만 제 마음은 한편에는 나를 단번에 한국어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그분들이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물론 저와 소통하고 싶기에 영어를 쓰시는 것이고 또 본인의 영어를 연습해 보기 위해 그러기도 했을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이제 조금 한국어가 편안해져서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큰데. 제 입장과 마음을 아실리 없는 처음 보는 분들은 계속해서 영어로 말을 시키셨고 이러한 일에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제 자신이 재미있다고 생각되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서 저는 저의 언어 정체성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는데 한국에서 얻은 많은 선물 중에 저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됨을 보람 있게 생각합니다.
대구에서 카페 마니아가 된 마렌
제 이름은 마렌 (Maren Hoffmann)이고 저 역시 대구 경북대학교에서 교환 학생으로 1년을 보냈습니다. 첫 학기에는 대부분 언어 수업을 들으면서 다른 나라에서 유학온 학생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는데요, 독일대학과 다른 수업 방식으로 한국 전문 교수님과 동료학생들과 네트워킹을 할 수 있어 드디어 학문적으로 국제적인 연결을 구축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습니다. 두 번째 학기부터는 전공 수업 모두를 한국어로 수강하기로 결정했는데 물론 처음에는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습니다. "한국어 음성학"이라는 수업에서는 심지어 한국어로 조별 발표까지 진행했는데, 저에게는 정말 크나큰 도전이었습니다.
대구에 있었기에 재미있었던 일은 사투리인데요, 제가 독일에 있었을 때에는 한국어 표준어만을 배웠기에 대구 사투리는 한국에 와서 처음 접했습니다. "일본 팝 문화"라는 수업을 수강했었는데 해당 교수님께서는 대구 사투리를 쓰셨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의 사투리는 정말 강력하여 심지어 대구 출신이 아닌 한국 학생들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알아듣지 못하는 부분이 많아서 힘들었지만 수업이 정말 재미있었기에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힘들게 힘들게 대구 사투리를 배워갔습니다. 귀 기울여 듣고 따라서 말하기를 꾸준하게 연습한 결과 사투리를 말하는 것이 늘지는 않았지만 학기말즈음에는 적어도 전보다 훨씬 더 많이 대구 사투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수업에서 저는 유일한 외국인이었는데 교수님께서도 저와 이야기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제 키가 너무 커서였을까요?) 어쨌든 저는 경북대에서 수강했던 모든 수업이 좋았고 누군가가 한국으로 유학을 간다면 경북대학교를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유학생활이 끝나고 독일로 돌아와서야 깨닫게 된 문화적 차이들도 있습니다. 독일로 돌아와서 기차를 타보니 독일 기차는 한국에 비해 너무 시끄럽습니다. 한국의 기차는 거의 소음이 없이 조용하거든요. 또한 갑자기 독일의 음식이 너무 짜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한국을 경험하고 와서 오히려 내 나라 독일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이 여러 가지가 생기면서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습니다. 그중 가장 많이 그리운 것이 "한국 카페의 편안함"이었습니다. 공부를 할 때나 학교 과제들의 마감 기한이 다가와 스트레스가 밀려올 때마다 저는 카페를 찾았었습니다. 왜냐하면 독일과 전혀 다른 한국의 카페 문화가 제게 마음의 안정과 아늑함을 안겨 주었었거든요.
독일에서는 사람들이 혼자 카페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습니다. 카페에 가서 커피를 주문해 잠시 앉아 있을 수는 있겠으나 혼자서 카페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간다 하여도 최대 2시간 이상 머무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혼자 카페에 가서 느긋하게 마감시간 직전까지 머물러도 괜찮습니다. 아니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공부하는 학생들, 일하는 직장인들, 책 쓰는 작가들까지 카페를 찾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시험 기간에 카페에 가서 공부를 하기에 저도 한국 학생들처럼 해 보고 싶어 카페에서 과제를 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커피 향이 은은하게 나고 여기저기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와 음악이 잔잔히 깔린 카페에서 오히려 집이나 도서관 보다 집중이 더 잘되었습니다. 어려워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과제를 카페에서 깔끔하게 끝낼 수 있었습니다. 이 놀라운 경험을 한 후부터 저는 한국어 인증시험인 토픽 시험공부를 도서관이 아닌 캠퍼스 근처의 작은 카페에서 하게 되었고 그 결과는 대만족이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새로운 카페를 찾아보는 것도 커다란 즐거움이었습니다. 대구에는 멋진 카페들이 많고 한국 친구들 조차 대구에 좋은 카페가 너무 많아 놀랍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5미터마다 카페가 있고 계속해서 트렌디한 카페들이 더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제가 즐겨 찾는 카페들은 대형 카페보다는 작고 아늑한 곳이었는데요, 그중 제가 가장 좋아했던 카페는 어두운 갈색 의자가 있고 몇 가지 식물과 다양한 벽 장식이 있던 곳입니다. 대구 도심의 붐비는 거리와는 달리 그 카페를 들어서면 또 다른 세계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매우 조용하기에 바깥세상의 지나친 자극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조화로운 색깔 속의 아름다운 공간이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매우 좋아했었습니다. 작은 카페였기에 바리스타가 한 명, 케이크는 직접 만들어서 서빙되었는데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는 옥수수 타르트였습니다. 유럽에서는 옥수수가 주로 샐러드나 짭짤한 요리에 섞이지만 한국에서 옥수수는 디저트입니다.
한국 카페의 빵은 전통적인 독일 빵과 많이 다른데 그 비결은 짠맛에 있습니다. 한국 빵은 절대로 짠맛이 느껴지지 않지만 독일의 농축효모 빵은 일반적으로 짠맛이 나고 치즈로 덮여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늘 빵은 우리 집 가족 식사에서는 바비큐와 함께 먹는 안주 같은 음식이지만 한국에서 마늘빵은 커피와 함께 먹기도 합니다. 제가 처음 한국 카페에서 마늘 빵을 먹어보았을 때 짭짤한 빵이라 기대하고 먹었었는데 저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맛이었습니다. 달짝 지근하면서 마늘향이 확 풍기는 한국의 마늘빵. 사실 처음에는 조금 이상했었지만 한국을 떠날 즈음에는 정말로 좋아하게 됐습니다.
이곳저곳 경북 지역들의 카페를 다녀보면서 저만의 리스트들이 생겼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아늑한 카페는 양녕시의 작은 골목에 위치한 카페였고 경북대 캠퍼스 근처의 최고의 카페는 "foRest cafe"입니다. 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카페인데 남편분이 쿠키와 파운드케이크를 굽고 아내분께서 음료를 만드십니다. 그리고 손님의 얼굴을 기억해 주십니다. 독일로 돌아와서 가장 그리운 한국에서의 기억은 이 카페들에서 보냈던 평화롭고 아늑한 시간들입니다.
그래서 한국이 그리울 때마다 독일 카페에 가서 책을 읽습니다. 언젠가는 친구들과 함께 독일에서도 카페에서 공부할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