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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맹 Aug 02. 2024

독일에서 배우 하정우 따라 하기

독소 빼기

방학이다!

이 건조한 문장은 나에게 전혀 건조하지 않고 매우 의미 있고 촉촉하다. 남이 짜 놓은 시간표 안에서 바쁜 것이 아닌 내 시간표 안에서 내 맘 데로 바쁠 수 있는 시간이다.


특히 50의 방학은 남은 생애 직장이 없어도 내가 „“나 „“일 수 있게 만드는 길을 탐구하는 시간으로 써보련다. 단 현재 어떻게 탐구할지에 대한 계획은 없다- 다만 그 작업을 무작정 걷기에 맡겨보려고 한다. 두 달 동안 하정우 프로젝트를 도입해서.


사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마라톤 프로젝트에 도전하고 싶지만 근섬유 한가닥 제대로 못 갖춘 묵탱이 같은 몸뚱이로는 불가능하다. 딱 두 달 채 안 되는 방학에 기적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건 자기 계발서 한 권 만드는 계기는 되겠으나 나머지 인생을 차근차근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한 - 게다가 땡여름 한가운데에- 게으른 자에게는 어울리지도 않는, 작심삼일도 못해보고 끝날 비극이다.


걷는 건 아직 할 수 있고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으니 하정우 님 버전으로 시작한다. 언젠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발가락 끝에 걸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안고…


늘 더 나은, 더 완벽함을 추구하는 시스템에 치여 사는 완벽과 어마무시하게 거리가 먼 나는 이 시간을 내 맘대로 살면서 내 안으로 삶의 중심을 옮기는 기회를 삼으려 한다.


언젠가 은퇴했을 때 모든 삶의 타이틀을 다 내려놓고도 (엄마, 대학강사, 컨설턴트…) 내 몸뚱이 딱 하나만 믿고 살아야 할 (얼마 남지 않은) 그날을 위해 점점 더 비우고 가볍게, 하지만 몸뚱아리는 근육과 좋은 생각(맨날 하는 잡생각 말고)으로 잘 채워보려고 (쓰고 나니 너무 이상화시켰다) 한다.


그래서 오늘은 만보를 걸었고 (첫날이니까) 걸으면서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고 애썼다. 계속해서 챗바퀴도는 일 생각, 앞으로의 계획 등을 깨부수도 생각을 비우려고 애썼다. - 어젯밤 12시 마감을 앞두고 부랴부랴 넘긴 논문이 부끄럽고 맘에 걸려 계속 생각났지만, 잘해도 욕먹고 못해도 욕먹는데 이왕이면 뭉개고 욕먹는 거지 하며 쿨하게 나와 협상했다.


잡생각을 버리기는 쉽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강변 경치가 번잡한 내 마음을 아주 가끔씩 현실에 머물게 도와주었다.

무념무상으로 걷고 싶었지만 참선이나 명상과 담쌓고 속세에 찌들어 주변 사람에게 치어 살던 나에게 한방에 되는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에  잡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꾸는 연습을 해봤다.


1. 날씨가 흐리다- 사정없이 더울뻔한 여름에 20도에 시원한 바람까지 부니까 하정우 님 흉내라도 낼 수 있지 않은가…

2. 집에서 20분만 냅다 걸으면 라인강이 펼쳐진다. 청담동 펜트 하우스에 살았으면 집에서 한강이 보이니 안 나갔을 터인데 돈 안 들이고 힘으로만 애써서 얻는 것이 있어 좋다. 튼튼한 두 다리가 있어서 다행이다.

3. 전화가 왔다- 오래간 만에 반가운 지인께. 강변 벤치에 앉아 오래 수다 떨었다- 시상에 강변 벤치에 대낮에 수다 떨 기회가… 드러운 직장 사표 내고 절친이랑 허심탄회하게 자유를 찾은 불안한 마음을 토로하는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아. 좋.다.


만보 걸었다. 시작이 반이다. 앞으로 두 달 동안 계속해서 비우고 또 비워내리라. 머릿속 마음속 독소는 빼고 묵덩이 몸속은 얼기설기 근육섬유로 채워가리라. 이렇게 기록을 남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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