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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맹 Nov 05. 2023

두 달 남은 2023년

세상의 틀에 맞춰 살기 싫어 발버둥 쳐봤자…

지난여름 소파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핸드폰을 들고 신세한탄하는 글, K 마담과 독일 아저씨를 쓰면서 생각을 정리할 기회와 살아갈 힘을 얻었었다. 브런치에서 맞팔하며 서로의 세상을 들여다보는 문우도 생겨 작은 행복감까지 챙긴 것은 덤이다. 문우들의 정제된 글들을 읽으며 아~~ 나도 이렇게 잘 써서 올려야 하는데 하고 반성하는 마음이 여러 번 솟구쳤지만 정작 시간을 내서 글쓰기 공부를 한다거나 정기적으로 글을 써 올릴 상상만 해도 마음이 버거워졌다. 가볍게 살고 싶은데… 애쓰면서 살기 싫은데..


벌써 11월이다. 해가 가기 전에 무엇인가를 해내야 한다는 불안이 엄습한다. 아주 갑자기ㅎㅎㅎ. 두 달을 “아주 자알” 살아내서 별 볼 일 없었던 한 해를 훌륭한 한 해로 홀딱 바꾸는 방법은 없을까? 뒤 돌아볼 여유 없이 등 떠밀려 지내온 지난 열 달을 빈틈없이 잘 살은 남은 두 달로 퉁쳐서 2023년의 비리비리함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릴 방법? 각 잡고 책상 앞에 앉아 유튜브 글쓰기 강의를 이것저것 열어봤다. 두 달간 열심히 벼락치기 공부해서 업그레이드된 작가가 되기 위해!!!


한 시간 남짓 이 영상 저 영상을 보다 의문이 생겼다. 대체 유튜브로 어떻게 공부를 하지? 이 정보의 바다에서 내 수준과 입맛에 맞는 영상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영상의 시작 부분만 보다 멈추고 다른 것을 보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스크롤 바를 쓱쓱 밀어 영상을 대부분 넘겨가면서 모르던 것만 보고자 하니 정보가 산발적으로 모여 결국 시간만 낭비하게 되었다. 입맛과 수준에 딱 맞는 글쓰기 공부를 하려면 과외를 받아야 쓰겠더라. 마지막 2023년을 보람찬 해로 "쉽게" 마무리 지으려는 나의 허술한 계획은 이렇게 무산되게 생겼다. 왜 뭘 배우려 할 때마다 이런 일이 생길까. 한 술에 배부르려는 욕심과 시간 투자 없이 날로 먹으려는 도둑놈 심보의 콤보가 주범이고 무언가 배우는 것에 대해 간절하지 않아서 그렇겠다. 쯧쯧…


글쓰기 영상의 대부분은 글을 쓸 때 한우물을 파야 한다 조언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전문가로 봐줄 것이라고. 일리 있는 말이다. 그래야 생각도 글도 깊어질 테니. 그런데 어쩌랴, 실상 그럴 마음이 안 생긴다. 쓰고 싶은 것이 매번 훌러덩 바뀌기도 하고, 일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려고 글을 쓰는데 여기에서 까지 와서 뭐 남이 만들어 놓은 세상의 성공공식에 들어가려 발버둥 치기가 싫다. 그럼 글을 쓰면서 무엇을 해낼 생각을 하지 말고 (예를 들어 이렇게 한 해를 잘 마무리하는 도구로 사용하고자 하는 것처럼) 속 풀기에서 그치면 될 텐데 두 토끼를 잡으려니 이도 저도 안된다.


하여튼 욕심만 많고 무엇인가 제대로 하려는 의지는 약하다. 전문가의 조언을 휴지장처럼 받아들이고 핑계에 핑계를 더해 따르지 않으려는 나 같은 청개구리들이 많아서 자기 계발 서적들과 영상들이 승승장구하는 모양이다. 훌륭한 사람들이 아무리 좋은 조언을 주어도 꾸준히 무시하고 내 방식대로 살다가 가끔 삶에 변화가 필요하다 생각이 들 때만 왕창 책을 사서 보거나 영상들을 찾아보는,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에만 교회나 성당을 찾는, 신의 존재를 어렴풋이 믿지만 종교활동은 하기 싫어서 축일에만 교회 가는 사람이 나인 것이다… 믿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희생은 싫고 날로 먹고 싶은 것인지 아님 둘 다 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찌 되었든 대한민국이 자기 계발에 관한 지적 상아탑을 쌓는데 소비자로서 큰 기여를 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크으~~~ 자랑스럽다 ㅜㅜ


성공 관련 영상도 대부분 감상으로 끝난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하며 존경심과 부러움은 샘솟지만 따라 하자니 귀찮다. 아마도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이 싫지 않거나 그냥 게으른 사람인 거다. 뇌는 변화를 싫어하고 나는 뇌가 원하는 데로 살아주다가 올해도 요렇게 끝내버릴 모양이다. 뇌를 거스르는 뇌섹녀가 되기 위해 두 달간 해 낼 짜릿한 프로젝트에 대한 고민은 이렇게 쉽게 막을 내린다.

세상에 대한 나의 관심은 넓고 얄팍해서 한 가지를 꾸준히 파는 것이 무척 힘들고 지루하다. 여러 가지 분야에 관심이 있으면서 다 잘해야 미켈란젤로가 될 수 있는데 여러 가지에 얄팍한 관심만 있고 다 ~~ 그저 그렇게 해내는 질 낮은 나 같은 유형은 가치 없는 인간 취급을 하는 세상이 좀 야속하지만 어쩌겠는가. 브런치에서도 나의 전문 타이틀은 두 번 바뀌었다. 처음에 나를 교육전문가라고 하더니, 언젠가 미디어 전문가로 바뀌어 있더라. 다음에는 또 뭐라고 불리려나?. 변덕전문가?

나란 인간의 얄팍함은 좀 많이 아쉽지만 이런 변덕이 싫지만은 않다. 돈은 안되지만 늘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어 적당히 나를 괴롭혀 가며 심심하지 않게 잘 살아왔다. 다만 나이가 들면서 기동력이 떨어지고 있음은 불안하다. 2-30대에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지체 없이 실행해 냈었다. 내가 이 일에 적합한 사람인지 계획한 일이 시정성은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지 않고 바로 창살을 들어 내리꽂았다. 그리고 그 창살은 젊고 순수한 열정의 힘으로 원하는 곳에 콱하고 제대로 박혔었다. 그런데 이제는 창을 들기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아니 창을 들만한 아이디어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이것이 안정적인 생활(경제적인 안정이라기보다 짜인 틀에 안주하는) 때문인지 아님 세상에 신난 일은 이제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라고 스스로 쐐기를 박아버려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슬프다.


두 달간 해낼 보람 있는 프로젝트를 꿈꾸다가 두 달이 후딱 지나버릴 것 같다. 11, 12월 올해를 잘 마무리할 프로젝트를 만들기보다 나머지 반평생 인생을 잘 마무리할 고민이 더 어울리겠다. 세상에 등 떠밀려 조급해하지 말고 자기 계발 서적을 지금처럼 꾸준히 구입하고 글쓰기 영상을 클릭하다 멈추기를 반복하면서…


회색하늘 치적치적 비만 오는 독일의 겨울을 환하게 밝혀줄 크리스마스마켓을 뻔질나게 다니며 두 달간 내 마음속을 취재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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