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고스~레온, 9/8~9/14
까미노 길의 중간 부분엔 메세타 고원지대가 있다. 후기를 찾아보면 이 고원 지대를 통과하는 것에 200km 넘게 펼쳐진 밀밭을 지나쳐야 하는 과정이
단조롭고 지루하다는 평가가 많다. 그래서 다음 도시로 버스를 타고 건너뛰거나 자전거를 대여하여 이동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반면 어떤 이들은 이
구간이야말로 혼자 걸으며 사색하기 좋은 구간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어쨌든 가이드를 보면 10일 가까이 걸어서 통과하는 구간인데, 최근 일주일동안 조금 무리를 해서 이구간을 지나게 되었다.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걷다보니 적당히 쉴곳을 찾지 못해 계속 한두 마을씩 오버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론 하루에 30km에서 많게는 45km를 걷게 되었다. 그동안 괜찮았던 발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하고, 종아리 근육도 뭉쳐서 내가 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싸인이 오기 시작한다. 살과 살이 부딪히는 모든 부분은 살갗이 벚겨져 참기 어려운 통증이 오기도 한다. 하루 정도 쉬어가면 좋겠다 싶은데, 쉬더라도 이것저것 살 수 있는 규모있는 도시에서 쉬고 싶어, 오히려 더 빨리 걷게 되어 몸을 더 혹사시키게 한다.
어쨌든 비소식에 미리 밤을 세워 30km를 걸어 엘부르고에 아침에 도착했고, 그 덕분에 엘부르고에선 거의 24시간을 쉴 수 있었다. 평소 5-10유로 정도의 알베르게에 묶었었지만, 무려 45유로나 지불하고 욕조가 딸린 호스텔에서 휴식을 취했다. 몸이 어느 정도는 회복되어지는게 느껴졌고, 그 힘으로 35km를 더 걸어 산티아고 전 최대도시인 레온에 드디어 도착했다.
지난 일주일간의 여정을 되짚어보면, 밀밭과 포도나무, 해바라기가 끝없이 펼쳐져 처음보면 감탄할만한 멋있는 평원 지대이지만, 걷는 내내 반복되어 오히려 지루함이 느껴지는 길을 걸으면서 수많는 생각에 빠졌다. 까미노를 걷고 돌아가면, 어디로 이동할것인지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고...까미노 길과 인생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기도 하고, 미뤄왔던 기도를 하기도 하고, 때론 아무 의미없이 숫자를 세어가며 빨리 쉴곳만을 찾기도 하고 ... 나는 왜 걷고 있나라는 질문을 다시 해보기도 했다. 어느것 하나 답을 정하거나 깨달음이 있지도 않아, 오히려 목적지인 산티아고에 가까와 지는게 두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왜 이길을걷고 있을까? 걷는 일정은 오히려 여유가 있는데, 왜 이리 조급히 서두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