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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화 Jun 18. 2020

[수두자국]

2020.04.21


그러니까 이것은 전염(병)에 관한 짧은 글이다. 어릴 때 수두를 심하게 앓았던 나는 혓바닥이나 귓속에까지 붉은 반점으로 가득 찼는데 엄마가 칼라민 로션을 발라주다가 한숨을 푹푹 쉬었던 장면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끝없는 반점을 따라 길을 잃은 것 같은 엄마의 깊은 한 숨. 엄마는 포기하지 않고 길을 찾았지만 내 몸 곳곳에는 끝내 엄마가 찾지 못한 수두자국이 흉터로 남아있다. 그중에서도 이마에 움푹 파인 흉터는 기분에 따라 더 밉게 보이기도 하는데 이 흉터 때문에 엄마를 미워한 적은 없었다.


훗날 나도 딸아이가 수두에 걸려 핑크색 칼라민 로션을 발라주게 되었는데 그때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하나는 수두에는 여전히 칼라민 로션을 바른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기억 속의 엄마가 지금의 나보다 많이 어렸고 내 몸을 살피던 두 눈이 손전등처럼 밝았다는 것이다.


수두라는 전염병이 내 이마에 흉터를 남겼듯 엄마는 세상에 나라는 흉터를 남겼고 시간이 흘러 나도 내 딸을 통해 세상에 흉터를 남길 수 있게 됐다. 그러니까 엄마와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에 같은 흉터를 내게 된 것이다. 내 존재를 부정하고 싶었던 순간을 지나 나는 엄마가 되고 만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이다. 사랑의 숙주가 되는 전염병. 이것이야 말로 수두보다 더한 전염(병) 아닌가... 사랑 때문에 종종 길을 잃고 사랑에 기인한 흉터를 남기고 있는 내가 신기할 따름이다. 행복보다는 불행에 가까웠던 나의 과거 속에서 결코 전염되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삶을 나는 왜 따라 걷고 있는 걸까?


이 길에는 칼라민 로션 같은 약도 없어 보인다. 길을 잃더라도 그저 걸어야 할 뿐이다. 왜냐고 엄마에게 묻고 싶지만 눈물마저도 엄마에게 받았으니 우린 둘이서 울기만 할 것이다. 그리고 내 딸아이를 꼭 안으며 울음을 말리겠지. *이승우 [사랑의 생애] 첫 문장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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