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소문이 돌자 감사하게도 식사 약속을 잡자는 분들이 꽤 계셨습니다. 시국이 시국이고, 마지막엔 같은 부서 사람들과 더 많이 식사를 하고 싶어서 인사만 드리고 식사는 사양했었습니다. 그래도 거절할 수 없는 식사 제안은 오랫동안 모셨던 상사와의 저녁 약속이었습니다. 퇴직 전 몇 번 되지 않는 타 부서 사람과의 식사였지요. 그런데.. 그 식사가 큰 사건의 발단이 되었는데...
입사 1일 차, 월요일 아침에 전 직장에서 코로나 19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순간.. '와.. 큰일 났네..' 하면서 확진자와 밀접 접촉을 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스치더군요. 물론 입사 전에 코로나 19 검사를 받고 '음성'판정을 받아서 큰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뭐랄까.. 아주 작은 차이로 사고를 피한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사고는 다음날인 화요일 아침에 터졌습니다. 지난 수요일에 함께 식사를 했던 동기로부터 전화가 온 겁니다. "야.. 나 코로나 19 확진이야"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일단 동기에게 '니 잘못 아니야. 너무 걱정 말고 치료 잘 받아.'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내부 보고를 거쳐서 오늘 하루는 재택근무를 하기로 했습니다.
집으로 가는 도중 보건소에서 코로나 19 검진을 받고 빈방에 PC를 세팅하고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발 '밀접 접촉자'로 분류가 안되길, 검사 결과가 '음성'이길 기도했습니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듯.. 늦은 오후가 되자 강남구 보건소에서 자가격리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메시지를 받았고, 관할 보건소에서 자가격리 기간과 주의사항 등을 전화와 카톡으로 설명을 들었습니다. 아.. 나에게도 이런 일이..
회사에는 지금까지 진행경과와 함께 자가격리 기간을 보고하고 종료 시까지 재택근무를 하기로 했습니다. 다른 부서에서도 자가격리 케이스가 있었다면서 걱정 말라고 안심을 시켜줬고, 업무를 시작했더니 사실상 전혀 불편함이 없는 환경이라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이전 회사에서는 VPN, VDI를 별도로 신청하고 서면으로 결재를 받는 일도 꽤 있어서 재택근무가 어려웠거든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내 정보가 오픈되어 있고, 온라인으로 접속 가능한 상황이라 회사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파악하 수 있는 기회(?)가 될 거 같았습니다. 물론 면접관으로 참석하는데 문제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미안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은 막기가 어렵더군요. 확진자가 된 친구에게는 '너는 피해자야. 네 잘못은 없어. 너무 미안해하지 마.'라고 그렇게 말했던 저였지만.. 입사 2일 차에 인사업무 담당자가, 한참 바쁜 시기에 일주일 넘도록 자리를 비운다는 것을 알려야 할 때, '미안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란 어려웠습니다. 어떤 구성원도 '아쉬움'을 표현하지 않았음에도 말이죠. 그래서 식사를 할 때마다 친구에게 전화를 합니다. "너 잘못 아니야. 너 잘못 아니야. 너 잘못 아니야."라고 3번씩 말해줍니다. 친구와 제 자신을 위해서 말이죠.
사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아내입니다. 아침 식사는 알아서 챙겨 먹고, 저녁 식사는 항상 먹고 오는 남편의 삼시 세 끼를 챙겨야 하니까요. 그래서.. 자가격리 지원금은 50:50으로 나누기로 했습니다. 반대로 딸아이는 아버지 덕분(?)에 학교를 가지 않아서 '앗싸'했다는 후문이.. 누굴 닮았는지.. 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