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은남편연구소 Jun 21. 2021

부부회화: 애 이야기만 하는 아내에 '당신은 어땠어?'

아이를 낳기 전에 몸이 힘들어서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고 아내는 이른바 '경력 보유 여성'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종종 아르바이트로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이른바 '전업주부'가 되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내의 시간은 온통 아이였고, 아내의 관심과 대화도 모두 아이였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아이가 학교에 갈 만큼 컸습니다. 이제 아내의 대화는 아이와 아이의 학교 생활, 아이 친구 그리고 아이 친구의 엄마로 확대되었습니다. 가끔씩(?) 집에 일찍 들어가서 아내에게 '오늘 어땠어요?'라고 물어보면 아내는 숨도 쉬지 않고 '은서가.. ', '슬이 엄마는..', '소윤이가..'라며 아이와 관련된 이야길 합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듣다가 아내에게 물어봅니다. '당신은 어땠어? 나는 당신 하루가 궁금한데..'라고 말이죠. 물론 아내가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도 앞서 이야기했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아내가 주어가 되어 이야기를 다 보면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내의 취향이나 사고방식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쑥쑥 커가는 아이 못지않게 아내의 변신도 놀랍습니다.


부부가 부모가 되는 것은 변신이 아니라 확장입니다. 즉 부부에게 부모 역할이 추가된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부부가 부모가 되면 부부라는 역할을 많이 축소시킵니다. 요즘 말로 '부캐'가 '본캐'를 장악한 셈이죠. 자녀가 자라는 동안에는 큰 문제가 아닙니다. 자녀는 부모라는 사람의 관심을 24시간 쏟아도 부족한 대상이기 때문이죠.


자녀가 장성해서 독립하고 나면 부모라는 부캐는 역할이 많이 줄어들게 됩니다.(가끔은 결혼한 자녀에게 영향력을 여전히 발휘해서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만..) 그리고 다시 본캐인 '부부'로 돌아와서 서로에게 신경을 쓰게 됩니다.


산술적으로 계산을 해도 100세 시대에 40세에 아이를 낳아 30년간 부모로 살았다가 다시 30년간 부부로 살아야 합니다. 젊은 시절 부부였다가 나이가 들어 부부로 돌아가는 셈이죠.  부모로만 살던 부부에겐 돌아갈 길이 멀지요. 아내가 좋아하는 것도, 남편의 로망도 젊은 시절의 그것과는 차이가 납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함께 경험한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부모로 살아간다는 것이 가치가 없다는 뜻도 아닙니다. 하지만 '부모'로 살아가면서 '부부'의 모습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부모가 되려고 결혼한 부부는 별로 없을 겁니다.


Small things often.


아내를 만난 지 3000일이 되는 날, 미니 장미 한대를 샀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부부회화: '그럴 리가' 보다 '그럴 수도 있겠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