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팀장 때문에 맘이 상해서 울었던 모양이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도 예전에 상사 때문에 힘들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나는 유독 직속 팀장님들과 마찰이 많았다. 뒤돌아보면 그때의 나에게도 문제가 많았는데, 그때 당시엔 이상한 팀장 만나 생고생하는 거라 생각했다.
한 번은 정말 만만치 않은 팀장님을 만났다. 누가 봐도 고집 있고 한 성격하는 분이셨다. 그 당시 나는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갔고 초등학생인 아이들 적응을 위해 한 시간 정도 근무시간을 줄여야겠다 생각했다. 팀장님께 사정을 이야기하고 9to6에서 10to5로 바꾸겠다 말씀드렸는데, 그 자리에서 나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 거절당했다. 바쁜 시즌에 팀원도 부족한 상황에서 그런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이다.
나는 너무나 화가 나고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맘 같아선 해외로 멀리 떠나고 싶었지만 정말 바쁜 시기라 그러진 못하고, 한국이지만 생소한 지역으로 템플스테이를 갔다.
고즈넉한 절에 있으면서도 내 마음은 팀장님에 대한 분노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이렇게 멀리 떠나왔는데도 내 마음은 그대로였다. 답답한 마음을 참을 수가 없어, 첫날 절에서 나를 맞아주신 스님께 차담을 요청했다. 스님은 흔쾌히 허락하셨다.
마침내 스님과 마주 앉은자리. 이제 스님께 모든 걸 털어놓으면 스님께서 팀장님을 호되게 혼내 주시겠지. 그리고 나를 위로해 주시겠지. 끓어오르는 내 마음을 스님의 위로로 잠재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모든 걸 털어놓았다.
"... 이러저러해서 너무 힘듭니다.."
가만히 듣고 계시던 스님이 처음 하신 말씀은 이거였다.
"그 팀장도 선생님 싫어해요."
헉! 순간, 뭔가에 꽝 얻어맞은 것처럼 머리가 멍했다. 이런, 팀장님도 날 싫어하실 거란 건 상상도 못했는데.
갑자기, 시야가 넓어지면서 팀장님의 입장이 이해가 갔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처럼 팀장님도 팀장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셨을 거다. 팀장님 입장에선 팀에서 연차 있는 선배가 팀 분위기 파악 못하는 걸로 보였을 거고, 아이들 적응을 돕는 방법이 여러가지가 있을건데 그것만 고집하는 것도 이상하게 보였을 수도 있다. 결정적으로, 팀장님이 내 의견을 무조건 따라줄 의무란 없는거였다. 순간, 모든 것이 명쾌해졌다.
'내가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뜻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팀장님이 절대악처럼 보이고 밉기만 했는데, 생각하나 돌려 팀장님을 이해하니 팀장님에 대한 분노와 미움이 눈 녹듯 사라졌다. 동시에, 마음 한 곳을 무겁게 짓누르던 돌덩이도 사라져 몸과 마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팀장님을 이해하고 나니 내 생각만 옳다 주장하고, 내 생각과 다른 팀장님을 나쁜 사람 취급하며 차갑게 대했던 것이 너무나 죄송스러웠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나는 너무나 편안하게 팀장님을 대했고, 미안했던 만큼 예의를 다했다. 팀에 피해가 가지 않게 반가나 연가로 아이들 적응을 도왔다.
그렇게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어느 날 팀 회식 자리에서 팀장님이 갑자기 내게 사과를 하셨다. 그때 허락해주지 못해 본인도 맘이 쓰이셨다 하셨고, 근무시간 조정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나는 용기 있게 사과해 주신 팀장님께 감동 받았고 감사했다. 그 후, 근무시간 조정할 일이 없어서 하진 않았지만 팀장님과 마음 편하게 근무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스님께서 내 생각에 사로 잡혀있는 나를 깨우쳐주지 않으셨다면, 난 영원히 그 팀장님을 증오하며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그 후 나는 '내가 옳다'는 생각에 빠지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이것만큼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옳다'는 생각에 빠져 스스로 괴로움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사람의 인지능력엔 한계가 있어 완벽한 판단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무수한 증거로 말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좁은 지식과 경험으로 내린 판단이 얼마나 옳은 것일 수 있을까.
쉽게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나도 예외는 아니라고.
이상한 팀장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한다면, 나도 그 팀장에게 이상한 팀원일 가능성도 있다는 걸 잊지 말길. 그리고, 한 번쯤 팀장 입장에서 나란 사람은 어떻게 보일지 생각해보길.
그럼, 나는 정말 항상 옳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