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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현 Apr 13. 2021

매일 밤, 나는 내일의 숲을 꿈꾼다

동네산 아침 산책


늦은 밤에도 도시의 빛은 꺼지지 않는다. 그 덕분에 우리 집에선 한밤중에도 산이 보인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우리와 이웃 동네를 둘러싸고 있는 산. 봄나무의 색이라던가 허옇게 드러난 바위는 보이지 않아도 도시의 불빛을 등진 능선은 무서울 만큼 시커멓고 뚜렷하다.      


잠든 산의 그림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밤이 늦어도 계절은 숲에 머무르고 있겠지. 이 시간에도 저곳에 사람이 있을까. 숲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이렇듯 숲의 사정을 궁금해하며 잠든 다음 날엔 어김없이 아침부터 가방을 쌌다. 물, 간식을 간단히 챙겨 넣고 일출 시각을 기다렸다. 어두운 숲은 아무래도 영 무서워서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가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침의 숲에 도착했다. 축축한 아침의 흙길. 그 땅에서 스며 나오는 습기가 반짝이는 햇빛을 사방으로 굴절시켰다. 이리저리 퍼지는 따스한 봄빛 사이로 부드러운 바람이 지나간다. 새가 날아가고, 곤충이 말을 건넸다. 지난 밤을 무사히 잘 이겨낸 작은 식물이 광합성을 하려고 키를 잔뜩 높였다. 따뜻했다. 포근했다.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웠다. 밤을 이겨낸 숲의 분위기는 평화로웠다.


딱 한 시간만 걷고 가야지. 천천히 산책길에 올랐다. 이른 아침이라 생각했는데, 벌써 숲을 한 바퀴 돌고 돌아가는 사람도 있다. 오늘은 길이 좀 미끄럽네, 조심하소. 옆으로 지나가며 아침의 숲 친구를 슬쩍 걱정해주는 사람, 아이고 젊은 사람이 참 일찍도 나왔네 부지런하다며 마흔이 다되어가는 나를 소녀처럼 예뻐해 주는 어머님들도 만났다.     

 

30분 정도 걸어 정상에 도착했다. 나무 의자에 앉아 동네를 둘러싼 산 풍경을 눈에 담았다. 버스정류장이나 백화점 입구에선 느끼기 힘들지만, 확실히 우리 동네는 산에 둘러싸여 있다. 옆동네도 품고 있고, 자그마한 우리동네 풍경도 품고 있다. 사람이 사는 곳을 빙 둘러싼 산의 풍경은 아침 숲의 분위기만큼이나 안정적이다.


도심에서 좀 떨어진 숲에 왔는데도 저 밖에서 바지런히 출근 준비를 하는 사람들의 기운이 느껴진다. 마냥 차분할 줄만 알았던 공기도 조금 소란해지고 분주해졌다. 해도 뜰 만큼 뜬 것 같고. 낮은 숲에서 슬쩍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출근 풍경에 슬슬 마음이 급해졌다. 축축했던 땅은 어느새 거의 말랐고, 습기에 축 처져 있던 작은 풀들이 빳빳하게 고개를 들었다. 동네 황조롱이들이 몰려와 본격적으로 재잘대기 시작했고, 하늘을 비추던 태양은 순식간에 숲길 전체에 깊숙이 들어왔다. 이제 돌아갈 때가 됐다. 미루고 싶은 출근길에 떠밀리듯 몸을 실어야 할 때가 됐다.


오늘 하루도 한결같이 빛날 숲. 그곳을 등 뒤에 남겨뒀다. 내가 어디서 무얼하든 그곳은 늘 반짝일 것이다. 그 기분좋은 느낌을 간직한 채 하루, 이틀을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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