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한테도 안 받아본 그 귀한 걸, 세상에!
생일 당일, 남편과 데이트를 하러 이동 중에
사무실로 꽃 배달이 오고있다고 전화를 받았다.
남편은 옆에서 운전 중인데,
이런 로맨틱한 서프라이즈를 할 사람이 누가 있지?
오랜만에 미스테리에 빠진 내 마음은 이미 꽃밭에 가있었다.
사무실에서 동료가 보내준 인증샷 속에는
다발보다 나무에 가까운 꽃 한아름이 놓여있었다.
내 생애 받아본 가장 아름답고 박력 넘치는 꽃다발이었다.
카드엔 '내 영혼의 단짝'이라고 적혀있었다.
읽지 못하지만 아름다운 이탈리아 어도 함께.
지은이구나! 나의 중학교 동창 지은이.
우리는 한 번도 서로를 닭살스럽게 표현한 적이 없었고,
연락이나 만남의 빈도로 본다면 영혼의 단짝보다 반짝에 가까웠지만,
지은이가 썼다면 틀림없이 빈말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지은은 '언제 한 번 보자' 가 아니라
"오늘 만날래?"라며 데이트 신청을 하는 친구이기 때문이다.
작년 지은의 결혼식을 앞두고 우리가 만났을 때
나는 식장인 이탈리아까지 갈 수 없어(내 친구 스케일 보소)
축의금 봉투에 손편지를 넣어 건넸다.
그로부터 반 년 후, 나는 지은에게서 꽃 선물을 받는다.
우리는 빽빽한 글씨로, 수많은 꽃송이로,
너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를 고백했다.
그리고 쿨하게 헤어져 각자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그 고백은 유효기간이 평생이라 필요할 땐 언제고 꺼내볼 수 있는 넉넉함이 있었다.
친구가 보낸 꽃을 보고 또 본다.
세련된 꽃 취향이 이태리 어느 저택의 여주인이 보낸 선물 같기도 하고,
돈 많은 아저씨 애인이 꾸민 이벤트 같기도 해서
나는 감탄하면서도 자꾸 웃음이 났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면 친구가 바로 공감하고 헤헤 웃을 거란 걸 확신했다.
그녀가 진짜 웃겨서 웃을 때 내는 소리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