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로 들어가면 또 할말이...쿨럭!
현재 내 직업은 콘텐츠 기획자인데
이 공간에 사부작거리는 사적인 글들을 '일'하듯 접근했다면
일단 글쓰기의 목적부터 고민했을 것이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몇 가지 전략을 세운 뒤
그것을 가장 잘 담아낼 컨셉트와 스토리텔링 형식들을 결정하고
대략의 목차도 만들어 꼭지 하나하나를 task 처리하듯 완성했을 거다.
현재 내가 가장 잘하는 거. 잘해서 돈까지 받고 있는 일이다.
근데 결과적으로 나는 나의 개인적인 글쓰기에서는 이 과정을 거듭, 처참하게 실패했다.
도무지 목적부터 진도가 안나가!
이대로 고민만 하다가는 아무 것도 쓰지 못하겠다는 중간 결론에,
일단 뭐라도 쓰는 바텀업의 방식을 취하기로 했다.
콘텐츠 기획자, 편집장, 에디터이기 이전에
나는 할말이 너무 많은 작가였고, 매일 토해내듯 내 이야기를 써내려가던 헤비 싸이월드 유저였다.
너무 오랜 시간을 목적성이 분명한 콘텐츠를 만들어서일까.
무엇을 쓸지 고민하는 것도, 잘 안 써지는 것도 어렵지만
지금 쓰는 이 글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란 의문이 들 때 가장 괴롭다.
이 생각이 들면 너무 창피하고 낯이 뜨거워 더는 쓰고 싶지 않아진다.
오늘도 그런 기분이 슬며시 들려는 즈음
친한 동생이 '언니 글 잘 읽었어. 나는 이런 이런 표현이 너무 좋았어'라고 알려주었다.
맞아. 나도 그런 걸 느낀 적 있어.
퇴근 길 지하철에서 어떤 구절을 읽다가 마음에 온수를 튼 것 마냥 엄청 따뜻해진 적이 있었어.
순식간에 기분이 몹시 상쾌한 적도 있었고,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 적도 있고,
코끝이 알싸해질 정도로 위로받기도 했어.
인생이 어딘가 그늘진 것 같을 때 그런 문장들이 어디선가 달려와 나를 꼭 안아주고 갔지.
그럼 이글은 세상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
나의 글쓰기의 목적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나는 내가 읽고 싶은 글을 쓰는 중이다.
아까 말한 그런 기분들을 선사할 수 있는 글들.
그런 글들은 은근 귀해서, 읽을 땐 남아있는 분량이 줄어드는 게 안타까웠다.
그래서 나는, 다정함과 다양함과 유머에 대한 이야기를 끝없이 읽고픈 나를 위해서 쓴다.
마음이 삐뚤해지고 세상에 토라질 때 '맞아, 나는 이런 걸 소중하게 여기지'라며 기운을 차리기 위해.
그 순간들을 잠자코 기다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서 쓴다.
어때.
답이 좀 됐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