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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몬키 Feb 04. 2024

남+편 2부

외계+인 2부도 화이팅!


작년 1월, 남편은 화이트 칼라로서 은퇴를 선언하고 목수의 길을 선택했다. 학원 수료 이후 초목(초보목수의 줄임말로써 그 바닥에서 통용됨)으로 아장아장 걸음마를 뗐다. 너무 편한 신발을 신은 사람처럼 하루하루 행복해보여서, 저러다 성공이라도 해서 나를 호강시켜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런 벽이 있는데 말이야. 여기에서 저기까지 벽을 통과해서 가벽을 똑같은 라인에 세워야해. 넌 어떻게 할래?" 

"묻지 말고 그냥 말해. 그리고 빨리 말해."

"이게 어쩌고 저쩌고 기준점이이랑 지름이 어쩌고... 아! 여보 제발. 딱 여기까지만 들어줘. 다 끝나가!"


남편은 작업이 좀 잘됐다 싶은 날엔 그 썰을 나에게 '퀴즈' 형식으로 푸는데, 차라리 돈을 내고 들어달라고 했다면 우리는 조금 더 사이좋은 부부가 되었겠다. 나는 나대로 부자가 되고, 그이는 맘대로 실컷 떠들 수 있으니까. 그러나 결과적으로 같은 주머니를 찬 우리는 상대가 자신에게 관용과 사랑을 베풀기를 간곡히 바랄 뿐이다.


남편은 목공이란 예술이 아니라 기술이기에, 타고난 재능 보다는 머리가 좋아야 함을 거듭 강조한다. 정교하게 자르고 붙이고 뚝딱 거리는 게 전부가 아니라 얼마나 빠르게 방법을 찾고 계산하는 지가 몹시 중요하다고 말이다. 그러려면 좋은 스승(팀)을 만나 배워야 한단다. 애석하게도 몸 담았던 팀이 각자도생 모드로 찢어진 후 남편은 '날일'이라 불리는, 좋은 말로는 프로젝트 개념으로 일을 이어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매일 어떻게든 일을 구했고, 그의 표현대로 재구인율 높은 초목이 되었다. 우리가 돈이 없지 일머리가 없더냐? 부른 곳에서 또 부르고, 여기서 저기로 소개를 받으며, 초목의 실력도 몸값도 슬금슬금 올라갔다. (기대감 계속 상승 중.)


다양한 현장에서 다양한 오야지를 보며 배우고 익히던 '미스터 초목왕'에게 드디어 기회가 왔다! 이 바닥에서 고수로 불리는 대표님의 현장에 소개를 받은 것이다. 상당히 빡세고, 거친 언변의 소유자라는 소문마저 고수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밑바닥에서 시작한 가수지망생이 박진영을 만날 수 있는 기회 비스무리한 걸 얻었는데 욕이 대수고, 빡센 게 대수냐! 


남편은 출전을 앞두고 결연한 자세로 장비를 매만지고 있었다. 남편전문가인 내 눈엔 그가 긴장한 게 훤히 보였다. 표정만 봐도 알고, 말투만 들어도 딱 안다.


"여보. 이거 오디션 아니야. 그냥 수 많은 날일 현장 중 한 곳이고, 여보는 일하러 가는 거지, 뭘 보여주려고 가는 게 아니잖아. 늘 하던대로, 받는 삯보다 더 꼼꼼히 해주고 와."


"맞네. 여보 말이 맞아!"

그러면서도 나 역시 목수계 JYP를 만난다는 사실에 내심 기대가 됐다.


첫날 남편은 "나를 딱 보더니 '신발보면 알아, 임마 이거 좆밥이네'라고 했어"라며 가짜 욕을 먹어도 마냥 행복한 얼굴이었다.

이틀째 되는 날엔 '진짜' 욕을 먹어서 살짝 굳은 얼굴로 돌아왔다.

"오늘은 한소리 들었어. 근데 뭐, 괜찮아!" 

헤헤 웃었지만 고되어 보였다.


이런 날은 나도 남편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다 듣는다. 끊지 않고, 재촉하지 않고. 느린 속도도 꾹 참는다.

들어보니 그것은 일리가 있는 충고였는데 다만 대표의 투박한 표현이 곁들여져 살짝 아플만 했다. 특히 얼른 팀을 구해야 한다는 지적에는 마음이 착잡했다. 그걸 몰라서가 아니라, 마음처럼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 회한이랄까, 수많은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목공 학원 원장님의 짧아진 엄지 손가락부터 첫 번째 로 합류한 팀, 수 많은 지방 출장, 현장 용어, 남편이 첫 투입된 현장에서 외식하던 날, 분위기 좋던 두 번째 팀, 팀 해체, 날일, 오늘날의 좆밥까지... 남편이 보고 들은 모든 시간들이 내 안에 동기화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나도 함께 같이 신나고, 성장하고, 주눅들고, 긴장했기에 그가 느꼈을 모든 복잡한 감정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둘이만 두면 으르렁대지만, 고약한 남을 마주하면 같은 편이 되고마는 부부의 신기한 습성이었다.


오늘 남편은 "너라면 어쩔 거야?" 라고 퀴즈를 내지 않았지만, 나 역시 "그래서 어쩔 거야?"라고 물을 필요도 없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나도 남편과 똑같은 얼굴로 말할 뿐이었다.


"...근데 뭐, 괜찮네!" 



덧.


"니가 내 팀원도 아닌데, 내가 말라꼬 니를 알려주노? 니는 니 하던대로 해라!"고 말한 대표님은 다음 주에 또 남편을 불렀다. 남편은 더이상 결연하지 않고 나 또한 일체 기대하지 않는다. 목수가 연장 탓 하지 않듯이 미스터 초목왕은 상황 탓하지 않고 불러주면 가는 게 국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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