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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성국 Nov 06. 2021

꼰대란 무엇인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가치와 규범을 남에게 강요하는 사람을 우리는 꼰대라고 부른다. 요샌 그 사람의 나이와 상관없이 쓰이는 것 같다. 젊은 꼰대도 많다. 나이 많은 꼰대는 더 많다. 아무래도 삶을 오래 살았을수록 자신의 신념이 옳다고 믿는 근거가 많이 축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살인이나 강간 행위로 쾌락을 느끼며, 이것이 자기 삶의 가치라는 주장은 명백하게 잘못됐다. 거의 모든 사람이 동의할 것이다. 이처럼 어떤 가치관은 특별한 논증 없이도 명백하게 잘못됐다. 만약 명백하게 잘못된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이런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강력하게 속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명백하게 잘못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아닌 한, 타인의 가치관을 존중해줘야 한다. 옳은 삶의 방식이란 현재까지 진리로 규정된 바가 없다. 가치관은 진리가 아니라 믿음이다. 가치관은 유전자 및 살아왔던 경험 등이 결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지구 상의 사람 수만큼 다채롭다.




    우리는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의 자연인 같은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쨌든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규범은 어떻게 정해야 할까? 나의 규범을 강요하면 꼰대가 된다. 숙의를 거쳐 합의해야 마땅하다. 술자리를 예로 들어보겠다.


    서영신(가명)씨는 고등학생 시절 집안 어른께 주도酒道를 배웠다.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무지 복잡했다. 그가 배웠던 것을 생각나는 대로 나열해보겠다.


술은 스스로 따르는 게 아니다. 상대의 술잔이 비었으면 채워줘야 한다. 술을 따를 때 술병의 상표를 손으로 가려야 한다. 술병을 잡지 않은 손은 술병을 잡은 손의 팔 소매를 걷듯이 놓여야 한다. 술잔은 가득 채워야 한다. 술잔은 한 번에 다 비워야 한다. 윗사람과 건배할 때 나의 술잔은 높이를 낮게, 세기는 약하게 부딪혀야 한다. 윗사람이 술을 따라줬을 땐 술을 한 모금 마신 뒤에 술잔을 내려놔야 한다. 윗사람과 마실 땐 고개를 돌리고 마셔야 한다.


    당시에 영신은 이것이 누구와 술을 마시던지 항상 적용되는 보편적 규범이라고 믿었다. 그 어른께선 그보다 훨씬 오랫동안 술을 마셔보았을 것이고 그는 고등학생이었다. 그 어른의 주도가 의심해봐야 하는 규범이라고 여길 시야가 그에겐 없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본격적으로 음주를 시작했을 때, 동기나 선배들이 이러한 규범의 일부만 알고 있다는 걸 알았고, 그는 그가 알고 있는 규범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영신을 술 강권하는 꼰대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친구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지만, 그는 술을 강권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진 적은 없었다. 그의 잘못은 그가 옳다고 믿었던 규범이 보편적이라고 믿었던 이다.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 규범은 거의 없다.


    20대 중반이 되자 그는 공동의 규범 없이 술을 마셨다. 각자 알아서 마시는 것이 옳다는 게 그의 규범이었다. 남들이 어떻게 마시든 간에 그는 그의 잔에만, 그가 따라서, 먹고 싶은 방식으로, 먹고 싶은 만큼 먹었다. 그러나 가치와 규범에 대해 중립을 지키는 것이 옳다는 믿음 또한 규범이다. 가치에 대해 중립을 지키는 것은 중립이 아니라 현상유지를 지지하는 것이다. 공동의 규범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는 일종의 갈등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각자 알아서 자기 규범에 따라 행동하라는 건 갈등 상황 유지를 지지하는 것이 된다.


    그렇다고 우리는 사람 만나서 술을 마실 때마다, 마시기 전에 오늘 우리가 따라야 할 술자리의 규범을 합의해야 할까? 친구들이랑 규범을 합의하지 않고 술 마신다고 규범 차이에 의한 갈등이 생겼나? 그렇지는 않다. 규범의 차이가 현저하지 않은 경우,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규범이 형성될 것이다. 규범에 대한 믿음 차이가 현저한 경우에만 갈등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전통적인 규범을 따르는 연장자와 술을 마시는 경우가 그렇다. 외국인과 음주하는 경우도 그럴 수 있겠다. 이때 누군가 자기 규범을 강요한다면 꼰대가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다소 어색할지라도 공동의 규범을 합의하고 음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저함에 대한 모호함 등 어려운 점이 많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상대방의 규범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과, 합의하고자 하는 의지가 사회적으로 축적된다면,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꼰대 없는 세상. 더 권태롭겠지만 덜 불안한 세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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