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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의 책수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by 단아한 숲길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밀러

◆곰출판

◆20211217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호기심을 자극하려고 지은 제목인가? 이런저런 물음표를 띄우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었어요. 처음에는 난해하다는 생각이 들다가 점점 빠져들었고 재미있게 읽던 중 끝부분에 가서는 띵한 충격을 받게 되는 책이었답니다.


전반적으로 구성이 특이해요. 저자가 매우 힘들었던 시절,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분류 과학자의 삶을 탐구하기 시작해요.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의 죽음, 그리고 천재지변 사고로 일생 동안 쌓아 올린 결과물이 엉망이 된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일어서서 자신의 꿈을 이뤄낸 사람이기 때문이었죠. 처음에는 존경과 감탄이었다가 점점 탄식과 경멸로 변화되는 과정이 잘 표현되어 있어요. 장르는 과학이지만 소설책 같은 스토리 때문에 읽을수록 빠져드는 책이랍니다. 소설로 치면 액자식 구조와 비슷한데 작가 자신의 삶과 데이비드의 삶이 교차를 이루고 있어 더욱 흥미롭습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


어린 시절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별을 매우 사랑했고 자연의 사소한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은 소년이었어요. 성장해서 만난 스승 아가시는 매사추세츠 페니키스 섬에서 자연을 관찰하고 분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지요. 아가시는 이때부터 데이비드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랍니다. 어떤 술이나 약보다 훨씬 나은 위안을 준다고 확신할 만큼 데이비드는 이 작업에 몰입했으며 어류 분류학을 시작한 계기가 되었거든요.


이후 지진으로 일생 동안 수고하여 모은 표본들이 모두 부서졌을 때조차 그는 무너지지 않았어요. 물고기의 이름표를 물고기 비늘 등에 직접 꿰매어 연구 결과의 상당 부분을 살려낸 일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요.


스텐포드 대학의 초대 학장을 지내기도 했으며 어류의 범주를 성립하고 완성에 공헌한 엄청난 인물이랍니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봐야만 보이는 불편한 진실도 있었어요. 스승 아가시의 영향을 받아 우생학을 옳다고 믿었기에 윤리적 과오를 저질렀다는 것,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잔인함과 오만함을 보이기도 했어요. (긍정적 착각에 기인한 자기 기만)


룰루 밀러가 파헤치지 않았다면 일반인들은 전혀 모른 채 묻혀버렸을 진실이 이 책을 통해 세상에 드러나게 된 것이지요.



<질서와 혼돈>


데이비드의 스승 아가시는 모든 종 하나하나가 "신의 생각"이며, 그 "생각들"을 올바른 순서로 배열하는 분류학의 작업은 창조주의 생각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라고 할 정도로 분류학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데이비드 역시 자신이 하는 일은 혼돈을 잠재우고 질서를 정립하는 일이라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작가는 말합니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계층구조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그림을, 자연의 "생명의 전체 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는 일이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려 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부끄러운 과학의 역사 - 우생학>


우생학은 유전 법칙을 응용하여 인간 종족의 개선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해요. 그러다보니 우수한 유전자는 지속하거나 개선하고, 열등한 유전 요소를 가지고 있는 인간은 더 이상 자녀를 생산할 수 없게 인위적으로 조정하겠다는움직임으로 이어진 것이죠. 보통 우생학 하면 나치를 떠올리지만, 사실 여러 나라에서 우생학으로 인해 잔인한 일들이 일어났었다고 해요. 이 책에 등장한 실제 피해자 애나와 메리도 수많은 희생자에 포함되어 있었죠.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도 암암리에 불임화 수용소가 운영되고 있었으며 어린 나이에 이유도 모른 채 끌려가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했던 애나와 메리. 이 부분을 읽다 보니 분노와 슬픔에 매몰되고 말았어요. 도덕성을 상실한 과학적 맹종의 위험성이 얼마나 큰지 알게 해 주는 사례가 아닐까요?



<마무리>


작가는 존재들을 특정한 범주로 묶어서 질서안에 편입시키는 것에 심각한 오류가 있듯 사람을 몇 가지 부류로 나누어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하나,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너는 중요하지 않아."라는 말의 굴레를 벗어나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민들레의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는 약초이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는 잡초에 불과한 것처럼 우리의 가치도 결국 인정하고 알아줄 때 빛나는 것임을 말해주고 있어요.



"과학적으로 좀 더 논리적인 일은 어류란 내내 우리의 망상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류"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최종적이 결론이겠지요. 독서모임에서 다룬 책, 오랜 시간 열띤 토론을 했음에도 여운이 남는 책이었습니다. 작가 자신도 쉽게 분류할 수 없는 양성애자임을 고백하면서 분류에 대한 문제점을 반영한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요즘 책에는 동성애나 양성애가 자주 등장하네요. 그만큼 동성애나 양성애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범주를 강요하며 편견으로 바라보지 말아 달라는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던지고 싶었던 것 같아요.

2020년 화제의 책이었고 여전히 인기가 많은 책이에요. 한 번쯤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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